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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동여지도에는 왜 독도(우산도)가 빠졌을까? ☞ 북스앤리뷰

<고산자>를 읽으며 역사 문학의 진수를 맛보고 있는데.. 일반 소설하고 틀린 점이 있어 재미감은 떨어지지만 진중함속에 각종 문학적인 표현과 고어(古語)나 처음듣는 우리말들이 많이 나오며 읽은이로 하여금 고개를 들게 만든다. 암튼, 중간 이후에 보면 김정호가 대동여지도를 만들고 다시한번 전국을 주유천하하면서 당대의 실학자 혜강 최한기, 오주거사 이규경, 위당 신헌 그리고 김삿갓으로 알려진 난고 김병연과 고산자 김정호 이렇게 다섯이서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나온다. 여기서 바로 지도 편찬에 있어 대마도와 독도(우산도)가 왜 빠졌냐가 화두가 되는데.. 먼저 주유천하하며 풍랑시인, 풍찬노숙의 대명사 난고 김병연이 술에 취하자 먼저 대마도가 우리 조선 영토가 아니냐며 무심코 화두를 던진다. 그러자 다들 표정이 뭥미?

그러면서 난고는 새로 그렸다는 대동여지도에 대마도가 있냐 없냐며.. 내가 본 동국팔도여지도나 해동지도나 여러 조선 전도엔 대마도가 다 조선 땅으로 나와 있어서 묻는 거라며 농포자 정상기 선생의 동국지도는 또 어떠냐며 작렬한다. 그러자 다들 취했다며 손사레를 치는데.. 오주거사 이규명은 성종때 편찬한 <동국여지승람>에 대마도를 경상도 동래현으로 못박아 놓은것을 읽어봤다고 얘기한다. 그러면서 조선 건국초 세종때 대마도 정벌로 조선 영토로 귀속한 것과 세조때도 그렇고 웬만한 지도에 대마도를 우리 땅으로 그려넣는건 당연한 일이 되었던 과거를 얘기한다. 하지만 이에 혜강은 지원군으로 나서 말한다.

지도는 어디까지나 사실을 기반으로 삼는 객관적 사실이 중요하다. 감정에 따르거나 정치적 판단을 앞세우면 그 지도는 필연적으로 오류를 불러오게 된다. 무조건 국토를 넓게 잡아 문제가 있는 곳을 모조리 내 강토로 잡아넣는 것이 지도를 그리는 사람들의 애국이 아니다 청담공론을 배척하고 실사구시의 자세가 가장 필요하 것이 지리학이자 지도 제작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김삿갓 난고는 그래도 감정을 운운하자.. 김정호가 말문을 연다.

나는 이용후생의 정신으로 실제 생활에서 사용하기 위한 지도를 그리고자 했다. 지도란 사람살이의 흥망은 물론이고 목숨줄이 달려있는 것이고 대마도가 역사적으로 우리 강토냐 아니냐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심정적으로는 나도 대마도를 우리 땅이라 하고 싶지만 인문학적 이상이나 정치적인 목적, 판단은 제 소임이 아니기에 기존것을 답습할 수는 없는 것이다. 즉, 비변사나 규장각 관리라면 당대의 정치적 이념이나 전략에 따라 국토를 달리 정해 그럴 수 있겠으나 고산자는 객관성을 엄격히 유지할 수 있는 위치에서 정치적 판단이 뚜렷하지 않은 곳을 지도에서 우선 제외한 것은 올바른 처사라는 것이다. 이것은 간도 문제와도 일맥상통한 부분으로 얘기한다.

그런데, 여기서 위당 신헌이 우산도(독도)는 대동여지도에 표기가 되어 있냐며 화두를 던진다. 그러자 김정호는 우산도는 울릉도에서 동으로 너무 멀리 떨어져 있는데다가 워낙 작은 무인도라서 뺐다고 하자.. 위당이 작은 섬이라고 빼다니 정치적인 판단을 해야 할 땅이냐며 반문한다. 더군다나 우산도는 울릉도와 모자관계로 삼국시대 신라때부터 조선 실록까지 기록되어 있는 우리 국토였는데 어찌 뺄수 있냐며 다그친다. 이에 코너에 몰린 김정호는 말한다.

물론, 우산도를 직접 보고자 배를 띄웠으나 풍랑으로 가보지 못했다. 그러면서 지도의 생명은 축척의 정확성이다. 정상기의 동국지도가 필사본 채색지도인 것과 달리 대동여지도는 대량으로 찍어낼 수 있는 목판본이다. 엄연히 내 국토요 눈으로 확인한 땅이라 할 지라도 수천 개에 이르는 모든 섬을 어찌 모두 새겨넣겠는가.. 물론, 우산도가 우리의 영토라는 것을 의심한 적은 없다. 그러면서 자신이 본 어떤 지도의 필사본의 경우 울릉도 옆에 우산도가 바짝 붙어 있는데 이는 명백히 축척을 잘못 표기했다는 것이다. 거리상으로 두 섬의 거리는 이백여 리 가까이 떨어져 있는 섬인게 확실한데.. 그 많은 지도들이 그 거리를 무시하고 그리고 있다는 것을 지적한다.

그러면서 자신이 우산도를 대동여지도에서 뺀 것은 제일 큰 현실적인 이유가 바로 판각 때문이라고 한다. 즉, 대동여지도가 목판본 지도라는 걸 염두에 두고 설명을 하면 이렇다. 대동여지도는 아래위와 좌우로 접는 분첩절첩식이다. 전 국토를 남북으로 백이십 리 간격으로 나누어, 접으며 하나의 서책이 되도록 고안하고, 때에 따라선 그 서책에서도 필요한 첩과 절을 빼내어 간편히 휴대할 수 있게 한 것은, 지도의 효율성을 최우선으로 고려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울릉도는 열다섯번째 첩의 가장 오른쪽 절로 배치된바, 만약 우산도를 새기려면 울릉도에서 우산도가 이백 리는 안된다고 쳐도 최소한 팔십 리 간격의 절이 두 세 개가 더 필요해진다. 그중에서도 두 절은 바다뿐이다. 그렇다고 해서 축척을 무시하고 다른 지도들이 그렇듯 울릉도에 바짝 붙여서 그릴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러니 새기는 것도 불편하거니와.. 아무것도 없는 빈 목판을 끼워맞춰 지도를 찍어내는 것도 여간 불편하게 아니다. 더구나 우산도는 사람이 살지 않는 섬이다.

즉, 이야기의 요지는 바로 이거다. 고산자 김선호 선생의 대동여지도를 그릴때 모토가 바로 사람살이를 이롭게 하자는 것으로 이것이 목판본으로 제작되다 보니 사람이 살지 않는 작은 섬까지 빼놓지 않고 모두 새겨놓을 수 없는 문제가 있었다. 더군다나 대동여지도는 펼쳐놓으면 동서로 대략 스물두 척이나 되는데다 목판만 해도 앞뒤를 다 이용한다 해도 육십이 넘는다. 이렇게 판각 자체의 어려움 때문에 그가 스스로 그렸던 동여도에 수록된 지명을 대동여지도에서 오히려 오천여 곳이나 뺀것도 그렇거니와 그러저러한 제작과정의 어려움이나 효용성 때문에 우산도를 뺐다는 것이다.

물론, 우산도를 뺀것은 잘 한 일은 아니라 하지만 그런 효용성 문제로 다 새겨넣지 못한 김정호의 마음에 아픔이 있었다고 반추를 해본다. 물론, 판각의 불편함 때문이나 목판본 문제라는 설명이 지도 제작로서 당당한 변명이 될 수는 없는 것이지만 당시 목판본의 한계는 김정호 능력밖의 문제라는 것이다. 그래서 뺀 것이지만 우산도에 대한 충정만은 우리 백성 못지 않았다며 말한다. 결국, 어떻게 보면 우리 땅 독도가 우리 지도의 고전인 대동여지도에 왜 빠졌을까 하는 의문이 풀리는 것인데.. 답은 독도까지 그렸다면 옆으로 더 퍼져서 규모가 더 커지는 효율성 문제로 삭제 크리였다는 것이다. ㅎ





덧글

  • ㅇㅅㅇ 2009/11/20 18:49 # 삭제 답글

    실제로 저 시대 일본과의 해양분계보다 중국과의 분쟁이 화두가 되었을것 같은데..
  • 엠엘강호 2009/11/21 02:20 #

    일본과의 문제보다가 아니라.. 그것은 기본으로 침략과 노략질로 골머리를 앓은 19세기 상황이었고.. 중국과의 지리학적인 문제는 백두산을 둘러싼 두만강, 압록강 유역에 대한 문제였던 동시에.. 그 중심에는 간도가 있었다는거죠.. 물론, 김정호는 그 간도를 그냥 그려낸 차원이 아닌 답사를 통한 별도의 지도를 만들려는 노력을 했다는 내력이 있었다는 겁니다.

    즉, 당시 일본과 중국에 둘러싸인 정국에서 저만큼 휘둘리지 않고 실사구시에 임한 그의 아집이 대단한겁니다. 학문적인 성과전에 열정이 없으면 이룰수 없는 업적인거죠.. 우리 후세가 그것을 알았으면 합니다. 외세를 논하기전에.. 이런 분쟁의 화두로 논할때마다 아전인수격에 패자적인 암습에 쌓이며.. 어떻게 보면 답답하기도 하고.. 하지만 고산자 김정호만큼은 그것을 배제했기에 대단한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선조를 대하는 우리의 자세입니다. 일본이나 중국넘이 아니라면..
  • 24567 2010/04/16 11:36 # 삭제

    아~~그렇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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