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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무제의 승상들중 두영과 전분 이야기.. ☞ 중국역사물



한무제 유철 50여년의 재위시절 총 13명의 승상이 거쳐갔다고 한다. 순서대로는 위관-두영-허창-전분-설택-공손홍-이채-장청적-조주-석경-공손하-유굴모-전천추가 그들이다. 그런데, 이들중에 한무제 치세 초반에 친근하게 눈에 띄는 인물이 있다. 바로 위기후 두영(竇嬰)과 무안후 전분(田蚡)이다. 먼저 첫번째 승상 위관(衛綰)은 한경제 말기에 승상을 지내고 한무제때 초대 승상에 오른 인물로 유철이 황태자 시절 그는 태부로 유철에게 유학과 문학을 가르쳤던 인물이다.

그 다음 두번째 승상이 두영이다. 두영은 경제의 어머니 효문황후 두태후의 먼 조카벌 되는 두씨 일족중 군계일학이었다. 오초칠국의 난을 진압할때 대장군으로 공을 세운후 위기후에 봉해지고 율비의 소생 유영이 황태자 시절 태부를 지냈으나.. 그들이 장공주의 모략으로 물러나자 그도 잠시 칩거에 들어갔다. 하지만 한무제 시절 위관에 이어 승상에 올랐는데 유학을 무지 싫어했던 두태후와 마찰로 유자세력이 한때 철수하는 수모를 겪으며 파면되었다. 즉, 그는 승상에 오른지 1년도 안돼 집안의 어른에 의해서 자리에서 내려온 것이다. 이후 승상은 허창.. 이 인물은 두태후가 임명한 인물로 두태후의 꼭두각시 노릇만 했다. 태황태후 두태후가 죽으면서 그도 자리에서 물러난다.

그 다음이 얘기하고자 하는 인물 전분(위그림)이다. 이 인물이 누구인가 하면 바로 한경제의 황후이자 한무제의 어머니 왕황후의 이복동생 전분이다. 즉, 한무제의 외삼촌 되시겠다. 극에서도 얼마나 누이한테 살갑게 구는지.. 한때 태위직에서 두태후에 의해서 물러났다가 두태후가 세상을 떠난후 결국 승상의 자리에 오르더니만 안하무인이 장난이 아니었다. 어떠했냐 하면은..

비록 유학과 문학을 애호한다고는 하지만, 태생이 좋지 않은 탓인지 매우 천박하게 생긴 용모였다. 그런 주제에 터무니없이 거들먹거리며 젠체하기를 좋아하는 성격이었다. "천자는 아직 젊고 지방의 여러 제후왕들 중에는 불령(不逞)한 무리들이 없지 않으므로, 황제를 보필하는 우리 신하된 자들이 위엄을 갖추지 않으면 안된다"고 작렬하면서.. 거대한 저택을 짓고 첩실의 부인이 100명을 넘었으며 이곳저곳에 전지(田地)를 사들였다. 간혹 자기 형이 찾아와도 자신이 늘 상좌에 앉으며 자신의 대한제국의 재상이기에 사적인 관계때문에 공적인 지위를 욕보여서는 안된다는 이유였단다.

이렇게 한무제 못지 않은 권세를 자랑한 외척 세력 전분에 대해서 한무제는 비야냥과 특유의 개그로 일관했다는 믿거나 말거나 일화가 있다. 가령 전분이 공장(工匠) 관아의 터를 마련해서 건물 증축해야 한다고 하면.. 외삼촌아~ 기왕이면 병기고를 헐어서 그 자리에다 지으라는 개드립과.. 인사 문제에 관한 상주(上奏)로 항상 밤늦게까지 걸리면서 진저리가 난 한무제는.. 외삼촌이 하는 관리 임명은 그 정도면 됐고 나도 이제 관리들도 임명해 보자며 코웃음을 쳤단다.

하지만, 이 외삼촌 재상 전분 역시 4년뒤인 무제 나이 26에 세상을 뜨고 만다. 전분의 옛 동료이자 선배인 두태후의 조가였던 두영과 불화를 일으켜 상대를 무리하게 죽음으로 몰아넣었는데.. 그 원령의 앙갚음으로 인해 죽었다는 것이 당시 항간에 떠도는 소문이었다. 암튼, 한무제 주변을 에워싸고 있던 근친 세력들은 이로써 자취를 감취게 되면서 무제 스스로 자신의 정치적 능력과 군사적 수완을 종횡무진 활약해도 좋은 시기가 이때부터 발휘되기 시작했다는 이야기다. 그넘의 외척세력들은 동서고금을 통틀어 왜 다들 그 모양인지..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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