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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산풍우정> 명장 원숭환은 역적이었나? ☞ 중국역사물


오늘(26일) 나온 강산풍우정 24화 마지막 씬..

물론, 아니라고 본다. 여기 극중에서는 명과 청의 전쟁중 환관 노사가 청에 포로로 잡혀갔다가 살아 돌아오면서 청 군영에서 들은 얘기를 숭정에게 전하면서 원숭환의 내통을 알게 됐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건 여담이지만.. 김용 작품중 예전에 읽은 '벽혈검'이 있다. 여기서 기본 줄거리의 뼈대가 명말청초를 배경으로 하면서 주인공 원승지의 아버지로 원숭환이 나오고 명나라 명장인데 역적으로 몰려 어울하게 죽은 아비를 슬퍼하며 명에 대한 복수심을 키우는 장면이 나온다.

이런 원숭환(袁崇煥)은 어떤 인물이었을까? 대충 귀동냥으로 알고 있는것 중에.. 매번 청에게 수세에 몰리던 명군이 현실감각이 뛰어난 원숭환을 중용하고 외국에서 홍이대포를 사다가 청의 누르하치 후금군 10만의 기병을 대포로 보내버리며 이때 여파로 청태조 누르하치도 저 세상으로 갔다는 이야기.. 이후 원숭환은 총사령관에 임명되었고 이후에도 적의 공격으로부터 수도 북경을 보호하는 것을 확고한 원칙으로 정하는등 명의 대군을 성밖으로 유인해내려는 적의 속내를 간파한 전략가적 스타일로 냉철함을 유지한 인물이라는 평이다. 이렇게 원숭환의 활약 덕분에 명의 방어선은 실로 오랜만에 안정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원숭환이 적의 동향을 파악하기 위해 누르하치의 장례식에 조문사절을 보내고, 그의 아들 홍타이지(皇太極)의 즉위식에도 축하사절을 보냈다고 한다. 그런데, 이것이 역적으로 몰린 화근이 되고 말았다는 것이다. 결국 분열의 조짐은 북경에서 나타나고 있었으니.. 병사(兵事)를 모르는 조정 신료들은 적의 사소한 도발을 일부러 무시했던 원숭환에게 "적과 내통하여 싸움을 회피한다"고 비난을 퍼붓고.. "적국 국왕의 즉위식에 축하사절을 보낸 것이 그 확실한 증거"라며 아우성을 친다.

결국, 돌아가는 정세파악등 대국을 볼 줄 몰랐던 숭정 황제는 원숭환을 소환하기에 이르고.. 결국, 1630년 원숭환은 북경의 시장 바닥에서 능지처참에 처해진다. 이때 청태종 황태극 홍타이시는 피 한방울 흘리지 않고 큰산 하나를 제거했다며 엄청 좋아했다는 후문이다. 이후 명나라의 명운은 나락으로 떨어졌음은 물론이거니와 원숭환 제거후 같이 활약했던 오삼계가 명의 동북 요동지역의 군권의 총사령관에 오르게 된다. 물론 오삼계가 청의 침공을 능란하게 막아내는등 고군분투하지만 이자성의 난으로 숭정제가 자결하면서 결국 청태종의 팔기군을 산해관에 들여보내며 명의 멸망을 자초한다.

암튼, 이렇듯 충신이자 명장이 모함등 역적으로 몰리고 나면 국운 말에 답이 없는게 다반사인데..
원숭환을 어떻게 보시는지?

덧글

  • 천하귀남 2009/11/26 15:41 # 답글

    이순신 장군과 겹쳐 보이는군요.
  • 엠엘강호 2009/11/26 15:47 #

    그런가요.. 시기도 비슷한데.. 그래도 우리 장군님과 좀 틀리지 않을까요..ㅎ
  • 消爪耗牙 2009/11/26 17:55 # 답글

    고기
    (...)
  • 엠엘강호 2009/11/26 17:58 #

    하지만 사슴고기였다는 후문이.. 왕승은이 대신들보고 먹으라고 시킨것은..ㅎ
  • 아문 2009/11/26 18:00 # 삭제 답글

    전 숭정제의 판단이 옳았다는 쪽입니다.

    원숭환이 청나라와 내통했다는 죄상은 분명 사실이 아니겠지만,

    위충현을 척살한 숭정제에게 명조 최대의 군사력을 가진 지휘관이, 자기 사람이 아닌, 위충현 사람일지도 모른다라는 것에 위협을 느낄 이유는 충분하다는 생각과,

    원숭환이 죽은 이후에도 숭정제가 죽을때까지 청군이 장성을 넘어오지 못하도록 막아낸 것은 틀림이 없기 때문이죠 즉, 최고지휘관을 갈아치운 것이 숭정제의 판단착오가 되지는 않는다는 뜻입니다. 명은 청에게 망한게 아니라 농민반란으로 망했죠 물론 간간히 장성을 돌아 들어오긴 했지만 그건 원숭환이 살아 있었을 때도 마찬가지였고, 원숭환이 신뢰를 잃은 원인 중의 하나이기도 하고요

    또한 원숭환은 모문룡을, (분명 그의 죄가 명백하다고 해도) 그것을 황제의 지시 없이 멋대로 처단한 것은 대역죄입니다. 원숭환에게 상방검이 있었다고는 해도 모문룡 역시 상방검 보유자거든요 사후 보고를 했다고는 하나, 사형시킬 이유는 되죠

    이외에도 원숭환의 군사적 능력에 의심을 갖는 분들도 계신데, 그건 제가 다룰 부분이 아니고, 알기 힘든 부분입니다. 원숭환의 대포에 맞아 누르하치가 죽었다는 '설'이고 8개월의 시차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 엠엘강호 2009/11/26 18:13 #

    음.. 수긍이 가네요.. 특히 그가 위충현쪽 사람이었다는것이.. 물론, 원숭환이 없었다 하더라도 명군이 나름 방어를 했지만 역시 이자성의 반란 발생이 타격이 큰것 같군요.. 모문룡을 보고도 없이 주살하는 사건도 크긴컸고.. 이래저래 원숭환 총독이 당시 숭정제와는 코드가 분명 안맞았다 봅니다.

    수세에 몰릴때 그를 중용하며 아낌없이 지원을 하더니만.. 결국에 서서히 신뢰감이 멀어지며 역모죄로.. 그 역모에는 분면 反 원숭환이 있었을 거고.. 그리고 원숭환의 대포에 맞아 누르하치가 곧바로 죽었다는 것보다 그 전투로 크게 피해를 잃고 다쳐서 얼마있다 죽은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 쿠쿠 2009/11/26 18:37 # 답글

    국운이 다하면 어떤 짓도 무용이지요. 원숭환이 역적인가... 숭정도 그저 자리만 지킨 황제가 아니니 이유가 있었지 않나 생각합니다. 그저 멍청하게 죽이고싶어 죽인건 아니겠지요. 하지만 그 결과가 국망에 일조한 것은 분명해 보이고... 역적인가 아닌가는 판단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 엠엘강호 2009/11/26 19:01 #

    물론 역사의 한 단면에서 차지하는 역적이냐 아니냐의 논란을 이자리에서 얘기할려는 것은 아니고요.. 더군다나, 숭정제가 그냥 흐리멍텅한 군주가 아닌것도 알고 있습니다. 마지막에 자결할 정도로 그도 명나라 국운에 맞서 노력을 많이 했죠.. 다만, 저런 원숭환의 참수형이 저물어가는 국운에 일조를 했으니.. 이때부터 오삼계의 야심도 부풀어 오르는등..

    암튼, 원숭환이 역적이든 아니든.. 그래도 모함세력은 있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것을 왕승은은 교묘히 이용을 한 것 같고.. 왕승은 이넘이 참 대단한게.. 숭정제에 항상 붙어서 간신인지 충신인지 이중적으로 행동 하는거 보면 숭정제도 매번 혼내면서도 꽤 총예를 했었다죠..ㅎ
  • 함부르거 2009/11/26 19:39 # 답글

    모문룡 처형이 결정타였다고 봅니다.
    실제야 어쨌던 숭정제가 보기엔 모문룡이 충신이었으니 말입니다.
  • 엠엘강호 2009/11/26 20:06 #

    먼저 모문룡이 하급장교로 요동에 부임하던 시절 그쪽에서 비합법적인 무역을 행하면서 누르하치의 후방을 교란시키는 임무였고.. 그때 공을 사주해서 북경의 조정에서 그의 전과가 크게 확대 보고돼 높은 평가를 받으며 숭정제 눈에 확..ㅎ 하지만, 그때 모문룡은 압록강 하구의 가도일대에서 밀수품 거래등 조정에 뇌물공세를 펼치는등.. 이것을 당시 영원성의 원숭환은 그대로 방치할 수 없어 12가지 참형의 죄를 물어 그를 잡아들여 주살시켰고.. 대신 그의 부하들은 살려주었는데.. 이넘들이 홍타시에게 투항했죠..

    이에 숭정제는 원숭환의 독단적인 월권 행동에 분개하며 멀리했고.. 이것을 홍타시측에서 이간책으로 의심 많은 숭정제를 말려들게 하면서 주위에 원숭환을 두둔하는 세력보다 비난하는 세력이 많아 지면서 소환당해 참형크리.. 즉, 말씀처럼 원숭환이 모문룡을 독단으로 처단한 사건이 큰 계기가 된 것은 맞는것 같습니다.

  • 들꽃향기 2009/11/26 21:54 # 답글

    원숭환이 모문룡을 죽인것은 당시에는 월권행위였지만, 그래도 저는 원숭환의 군사적 재능 자체만 놓고 본다면 그가 장기적인 전략의 소유자였다고 봅니다.

    첫째로는 사실상 청군을 산해관까지 끌어들이면 패배한 샘이나 나름 없다는 점을 분명히 인식하고, 산해관에 이르기까지의 여정의 중간방어지대로서 영원위(금주)를 축성하고 송산- 탑산등을 요새화하여 종심방어를 구축했다는 점입니다.

    둘째로는 당시 명의 군사체제, 즉 다수의 병사를 요동-요서의 국경지대와는 관련이 없는 남방에서 끌어와 유지비는 많이 들면서도 병사들의 지키려는 사기는 부족한 상황에서, 초기 위소제의 장점에 착안해서 '요(遼)지역은 요(遼)인으로 지킨다.'라는 전략을 세우고 둔전을 만들어 국방비를 어느 정도 절감하면서도 양병을 양성할 수 있었다는 점입니다.

    즉, 명의 주요 방어체계였던 9변진 체계에서...그 중 하나였던 요동의 함락 이후 무리해서라도 요동을 탈환해야 할 것인가, 역으로 산해관까지 후퇴해야 할 것인가 등의 문제로 우왕좌왕하던 당시의 명 조정에 '어떤 방어전략을 세워야 할지'의 틀을 제시해 준 것은 원숭환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물론 원숭환 개인이 죽은 후에도 명이 상당히 효율적인 방어를 해낸 것이 사실이지만, 그 효율적인 방어의 가드라인을 마련한 것은 원숭환이었다고 보고 싶네요.

    이러한 전략 하에서 원숭환의 부하인 조대수 등은 오히려 반격을 가해서 광녕위 등을 탈환해내기도 했죠, 또한 그의 후임이 된 홍승주 역시 금주-송산의 전투에서 조정의 출격독촉이 있기 전까지는 원숭환 전략의 틀을 고수하고 상당한 전과를 올리고 있었습니다.

    오히려 우리나라에서는 '홍이포'라는 점만 알려져 그의 전략이 가지고 있던 장기적 안목이 결여된체, 무기(그것도 서양의 기술이라는 이미지와 결합된)의 우수함으로 이겼다는 단선적인 시각이 주를 이룬다는 것이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 엠엘강호 2009/11/26 22:01 #

    음.. 왜 원숭환이 명장인지 제대로 분석하신 덧글이네요.. 제가 추천드린 들꽃향기님 다우신데요..ㅎ 저도 알기론 냉철하면서도 현실 감각이 뛰어난 전략들을 많이 펼친 명장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냥 대포 한방에 누르하치를 이긴 장군이 아니라.. 역시 이런 원숭환이 있었기에 그나마 명나라가 버틴것인데.. 그가 참수되고 나서 홍타이시는 쾌재를 불렀다니 참 아이러니 하죠..

    그나저나 혹시 들꽃향기님 아래 한무제의 두영과 전분에 어떻게 보시는지요?
  • 들꽃향기 2009/11/26 22:03 #

    사실 두영과 전분에 대해서는 잘 모릅니다. 아니 사실은 당 시대 이전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늅늅이라서요. 엉엉 ㅠㅠ

    그리고 말씀에 감사드립니다. ^^
  • 엠엘강호 2009/11/26 22:10 #

    아.. 그래요.. 전 기원전 고대쪽 먼애기를 더 좋아해서요..
    그런데, 한무제쪽에는 유철과 장공주, 두태후와의 유학 충돌이나 승상 두영과 전분에 대해서도 감수? 좀 받을려는데 덧글이 없어서.. 누구 아시는분 없나요? -_
  • 이준님 2009/11/27 09:01 # 답글

    원숭환이 처형한 모문룡의 경우는 후방교란을 명목으로 "조선"에도 상당히 해를 끼쳤죠.(실록에 보면 모문룡이 과연 인간인가하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당연히 후금-명 사이에서 위태롭게 줄타기 하는(그리고 쿠데타로 인해서 정통성을 의심받았던 조선정부로서는 모문룡에게 상당히 뜯겼습니다.-심지어 모문룡 수하의 병사들이 조선 처자들을 납치해서 놀고 인신매매단에게 팔아먹었다는거 믿어지십니까?) 원숭환으로서는 이런 부류의 인간을 처단하는게 당연한 일이었지요.

    ps: 원숭환이 능지처참+참형정도로 아시는데 실제로는 3천도 능지(정확하게는 2840도내지는 3010도) 형이었습니다. 말 그대로 2~3일간 깎아 죽이는 거지요.구경하던 아이들이 그 살점을 약으로 냠냠했다는 이야기도 있지요.
  • 엠엘강호 2009/11/27 10:35 #

    음.. 모문룡이 아주 몹쓸넘이군요.. 요동에서도 비합적 탈세하고 챙기더니.. 우리 조선에 와서도.. 이런 신발..-_ 원숭환이 아주 잘 죽였네요.. 12가 죄목을 들어 처단한것이.. 그걸 가지고 숭정제가 월권행위라고 난리법석을 쳤으니..

    그리고 <강산풍우정>에서도.. 왕승은이 참형을 앞둔 원숭환에게 그러죠.. 당신은 그냥 능지처참이 아니라 삼천번을 베고 깍아서 죽인다고.. 그냥 단박에 죽이지 않는다며 애처로워했죠.. 결국, 그 살점을 접시에 담아 대신들 먹으라고 돌렸는데.. 후에 알고 봤더니 사슴고기였다는 헤프닝.. 암튼, 처참하게 죽인거 맞을겁니다.
  • 짝은언니 2009/11/28 01:23 # 삭제

    모문룡이 악인이라고 해도 그걸 원숭환이 처단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가 아닐까요?

    당시 원숭환에게 측결처분권을 의미하는 상방보검이 있었다고는 하지만 모문룡 역시 상방보검을 가진 정1품직인 좌도독이었습니다. 정1품의 좌도독을 지금으로 비유하자면 해군참모총장쯤 될까요 그런 사람을 설사 죄상이 확실하다고 해도 마음대로 죽여버립니까 죄상이 확실하다면 먼저 하옥시킨 다음에 상주해서 황제에게 모문룡을 죽여야 한다고 주장해도 늦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원숭환은 그냥 죽여버리죠 명백한 반역행위입니다 그런데도 사건이 벌어진 후에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원숭환이 늦게 죽은 것은 그가 손에 명조 최대의 병력을 갖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 엠엘강호 2009/11/28 02:31 #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는 아니라고 봅니다. 같은 급이라도.. 모문룡의 죄상은 확실한거 아닌가요.. 사료만 봐도.. 요동에서 한 작태나.. 이준님이 애기한 조선에서 개망니 짓이나.. 어찌됐든 숭정제 눈에 든 충신?을 죽인게 마뜩지 않아서 하는 작태는 바로 아전인수격이죠.. 원숭환은 다수가 역적이 아니란게 정설입니다.

    분명히 음해세력이 있는건 지금도 호사가들도 인정할 정도로 내막이 있었다는 겁니다. 그 이면에는 모문룡 사건에 대한 이래저래 잣대를 대는거고.. 그러면서 그 중심에서 오삼계는 암중모색을 했다는 겁니다. 화두는 모문룡이지만.. 종국엔.. 명나라 스스로 자초한거라 봅니다. 그게 내분이든 외분이든 말이죠.. 모문룡 사건은 지나가는 버스일뿐.. 하지만 원숭환의 죽음은 지금도 화두라는거.. 그리고, 화두는 아무나 언급이 되진 않죠..
  • 장규리 2009/12/05 22:39 # 삭제 답글

    전략적으로 청나라(후금)에게 모문룡은 제2전선이었습니다. 모문룡이 조선에 끼친 행태가
    어떠했던 간에 모문룡은 후금의 측.후방을 위협하는 게릴라전을 펼치고 있었습니다.
    그런 모문룡을 자의로 죽인 것은 숭정제 주유검에게는 상당히 불손하고 비전략적(?)행위였습니다.
    또한 원숭환이 황태극의 청군을 잘 방어한 것은 어떻게 보면, 평범한 장수 누구라고 할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영원성이라는 성에서 공성만하면 되는 것이었죠. <전쟁론>에 보면 공자의 공격한계정점 까지만 지킨다면 방자는 다시 유리한 고지를 점령할 수 있게 됩니다. 거기다가 화포 까지 있었으니..... 쯥... 원숭환 보다는 오히려 사르후 전투에서 엄청난 활약을 한 누르하치가 더 뛰어난 장수라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 장규리 2009/12/05 22:42 # 삭제 답글

    오히려 누르하치가 샤르후 전투에서 보여준 그 작전 구상은 내선작선에 의한 각개격파라는 측면에서 나폴레옹을 떠올리게 합니다.
    원숭환은 그냥 성에서 화약무기를 가지고 청군을 막기만 하면 됐었죠.... 이건 뭐 그냥 평범한 장수라면 누구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은...
  • 도라에몽 2010/01/15 01:31 # 삭제 답글

    원숭환이 그냥 성에서 화약무기를 가지고 청군을 막기만 하면 됬다..라 하셨는데
    거기엔 약간의 문제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당시 부패할 대로 부패한 명나라 조정이 그에게 어떤 방침을 정해주거나 한것도 아닌데
    자력으로 (당시 기병이었던)후금 대군을 막을 방법으로 홍이대포를 준비하고 후금 대군을 격파해냈다는 것은 다른 장수들보다 좀 더 뛰어났다는 증거가 아닐까요?
    또한 장규리 님의 말대로라면 후금 대군한테 박살났던 다른 명 장수들도 그냥 성 들어가서 포나 쏘고 있었으면 될 것인데 왜 박살이 났을까요? 그런 준비를 못 했기 때문 아닙니까? 전쟁에서 가장 중요한 단계는 전쟁을 미리 준비하는 겁니다.
    실제 우리 나라도 7년 전쟁 당시 부원수 신각과 전 의조참의이자 의병군 대장 이정암이
    미리 전쟁 준비를 해놔서 500명 의병군으로 5000명 왜병을 격파하기도 했죠
  • 도라에몽 2010/01/15 01:34 # 삭제 답글

    그리고 모문룡 같은 경우에는 위충현이 물고기밥이 되자마자 청한테 사절을 보내(원숭환이 누르하치 박살낸 후)친교를 맺자고 했습니다. 그런 그를 제 2전선이라고 할 수 있었을까요? 만약 원숭환이 모문룡 제거를 하지 않았더라면 그가 명 제거의 앞잡이가 될 수도 있었을 텐데요?

  • 헐헐헐 2017/10/09 02:55 # 삭제 답글

    장규리 같은 사람이 가장 어리석다고 생각합니다.
    성에서 화약무기를 가지고 청군을 막기만 하면 된다고요? 그것도 최전선에서요? 영원지역이 뚫리면 바로 베이징까지는 무혈입성인데요? 누구나 할 수 있다고요? 전쟁이 어린애 장난입니까? 자신의 목숨을 걸고, 나라의 국운을 걸고, 민족의 운명을 걸고 벌이는 처참한 참극입니다.
    물론, 전쟁을 승리로 이끄는 것은 혼자만의 공이 아닙니다. 모든 것들이 유기적으로 잘 연결되어 움직여야 승리할 수 있는거죠. 그 중심이 원숭환 입니다. 그 시스템을 구축한 것이 원숭환 이라구요. 그리고, 전쟁에서 가장 중요한 것. 그건 보급입니다. 원숭환은 부임하자마자 그 보급체계를 정비하여 강병들을 양성한 겁니다.
    모문룡이 후금의 후방을 위협하는 게릴라전을 펼치고 있었다고요? 조선왕조실록 안 읽어봤죠?
    조선의 평안도에서 모문룡은 '모강도'로 통할만큼 조선의 평안도를 약탈하고 조정에 무리한 조공을 요구하며 그렇게 삥 뜯어낸 재물들은 그 시기 명나라 최고 권력자인 내시 위충현 및 위충현을 위시한 엄당 인물들에게 바쳐졌습니다. 심지어 조선에서 명나라로 향하는 동지사 일행을 구금하여 조공으로 바칠 재물을 강탈하기 까지 했습니다. 이에 인조는 모문룡의 횡포를 보다 못해 가도를 공격까지 하려 했습니다.
    모문룡은 분명 수군 운용과 포격전에 유능했지만 그 방면보다는 자신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인물입니다. 그런데 그가 왜 상방보검을 받았냐구요? 그가 바로 위충현의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명나라의 부정부패는 조선을 아득히 초월하고 있었으며 모든 보고는 위충현을 거쳐서 올라갔기 때문에 모문룡이 계속 공적을 올리는 것처럼 조작할 수 있었던 겁니다.
    모문룡은 단 한번도 후금과 전투를 하지 않았으며 2000명의 병력을 이끌고도 20명의 후금기병을 보자 바로 도망쳤습니다. 그리고 보고서는 늘 무수한 전공을 올린 것처럼 허위보고를 올렸고 그 보고는 위충현에 의해 정식으로 인정받는 보고가 되어 유능한 장군으로 포장이 된 것입니다.
    단 한번도 패하지 않았던 누르하치가 15만으로 일컫는 대군을 이끌고 2만의 군사가 지키는 영원성을 포위합니다. 그 영원성도 존재하지 않았던 성을 원숭환이 부임해서 건설한 것입니다. 위충현이 임명한 무능한 총사령관 고제는 누르하치가 진격한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산해곡으로 전군을 이끌고 도망치고 원숭환 홀로 아무런 보급없이 영원성에 주둔하고 있는 2만의 병력으로 이틀만에 누르하치가 퇴각하게 만듭니다. 이게 아무나 가능하다고요? 그럼 원숭환에게 패하기 이전의 누르하치에게 패배한 장수들도 성에 틀어박혀 포나 쏘고 있으면 되었을텐데 왜 패했을까요. 영원성 전투 이후, 위충현이 임명한 고제는 바로 해임되고 원숭환이 요서지역의 총사령관이 되며 상방보검을 하사받습니다. 뇌물이나 바치고 노략질이나 해대는 모문룡 따위와는 격이 다르다는 겁니다.
    그리고 아버지 누르하치보다 뛰어났으면 뛰어났지 그보다 떨어지지 않은 홍타이지마저 영원성 리턴매치에서 원숭환에게 또 패배합니다.
    누르하치가 사르후 전투에서 명나라와 조선의 연합군을 각개격파 한거요? 그거 아들인 홍타이지가 원숭환에게 똑같이 당합니다. 영원성 리턴매치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금주 지역과 영원 지역을 왔다갔다 하기만 하다가 계속 격파만 당하고 패해요. 후금군은 원숭환이 살아있는 동안, 아니 원숭환이 처형된 14년 후 명나라 황제인 숭정제가 병크를 저지르기 전까지 요서지방을 돌파해내지 못합니다.
    명나라 군대는 원숭환이 등장하기 이전까지 계속해서 후금군에게 패했으며 지속적으로 땅을 잃어 요동지방은 모두 후금에게 넘어갔으며 원숭환이 등장하여 견벽거수 전략으로 후금군의 진격을 막아내고 전쟁이 교착상태에 빠지게 만들어 후금을 조급하게 만들어 버립니다.
    평야에서의 전투가 전쟁의 전부가 아닙니다. 명나라는 보병 중심이고, 여진족은 기병중심인데 평야에서 맞붙으면 당연히 기병이 보병을 손쉽게 박살내죠. 분명 총체적인 병력숫자 우위는 명나라에게 있었지만 편제에서 열세였기 때문에 원숭환은 그 단점을 알고 직접적인 전투를 피하고 후금이 열세인 상황에서 전투를 하도록 계속 유도한 겁니다. 또한 후금국은 재물은 풍부했지만 유목민족에다가 북부 내륙의 척박한 땅에 위치하여 식량이 부족한데 그 문제를 명나라와의 교역으로 해결해 왔으나 전쟁으로 교역이 끊기면서 식량부족에 시달리게 됩니다. 분명히 명나라의 경제상황은 후금보다 월등히 좋은 상황이므로 원숭환은 수비적인 지구전을 채택한 것이고 후금군이 스스로 지치게 만들어 버리는 겁니다.
    착각에 빠지지 않고 자국이 가진 장단점, 적국이 가진 장단점을 정확히 파악하여 그에 맞는 전술을 제대로 구사하여 승리를 하거나 승리를 하지 못하더라도 패하지 않는 것. 그걸 실행해 내는 장수야 말로 명장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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