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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레옹이 워털루 전투에서 패한건 치질때문? ☞ 서양고전들



10년의 집권끝에 계속된 전쟁으로 인한 고통속에 막판 오스트리아-러시아 연합군에 패하면서 파리에서 추방당해 1815년 6월 저 먼 이국땅 엘바섬으로 망명간 나펠레옹.. 하지만 절치부심 와신상담끝에 프랑스로 돌아와 백일천하를 누리나 싶더니.. 급기야 마지막이 되버린 나폴레옹이 이끈 프랑스군이 영국, 프로이센 연합군이 이끈 벨기에 남동부 지역에서 벌인 역사적인 워털루(Waterloo)전투.. 여기서 나폴레옹은 패하며 그의 시대는 막을 내리고 만다. 여기서 전투의 세세한 전략을 얘기하려는 것은 아니고.. 역사 뒷담화로 쓰는 것이니 믿거나 말거나임을 유념해 주시길..

우선, 나폴레옹은 움직이는 종합병동이었다고 한다. 특히 그의 초상화들을 찬찬히 훑어보면 한 손을 상의에 넣고 심각한 표정을 짓는 모습이 많다. 좋게 보면 중요한 전략을 앞둔 영웅의 고민을 표현한 것처럼 보이는 그림들이지만.. 이것은 그가 어떤 전술이나 전략적 판단을 내리기 전에 고뇌하는 모습이 아니라는 얘기다. 즉, 나폴레옹은 만성 위궤양을 앓아서 늘 쓰린 속을 손으로 어루만졌다고 한다. 위궤양 정도에서 멈췄다면 고뇌하는 영웅의 모습으로 각인될 수 있을텐데.. 나중에는 증상이 악화되어 변비까기 걸렸다니 딱하다.

그런데, 이넘의 변비로 끝나면 그나마 영웅의 체통은 지킬수 있었을텐데.. 변비가 심각해져 결국 치질에 걸리고 만 것이다. 뭐.. 일반 범인(凡人)이라면 단순히 운이 나쁜 환자로 끝날 문제였지만 그는 바로 황제였다. 더구나 치질이 악화되어 최악의 상태로 돌변된 시기가 바로 워털루 전투 전날 밤이었다고 한다. 정말? 암튼, 자신과 프랑스와 유럽의 운명을 걸고 싸워야 할 워털루 전투가 벌어지기 전날 밤 상황은 이렇게 그려진다.

나폴레옹은 치질과 위궤양의 고통으로 막사에서 뒹굴더니 결국 주치의를 불러 약 처방을 부탁했는데.. 주치의는 고통을 잃게 하려고 아편을 대량으로 처방하고 만다. 덕분에 그는 그날밤 푹 잘 수 있었지만 다음날이 고비였다. 아편의 후유증 때문에 몽롱한 상태로 전투를 지휘하게 된 나폴레옹.. 승패는 명약관화로 프랑스군 패배였다. 물론, 사가들은 워털루 전투의 패인을 프로이센 군이 등장하여 나폴레옹이 배후를 위협받았기 때문이라는 애기도 있고, 또 프로이센은 전투가 끝날 무렵 어느 정도 승패가 결정된 상황에서 등장했다고도 얘기한다.

이렇게 나폴레옹은 예비 병력을 돌려야 했고, 배후의 위협으로 군이 동요하기 했지만, 나폴레옹을 침몰시킨 주력군은 프랑스군 정면에 있던 월링턴 장군의 영국군이었다. 나폴레옹의 거듭된 파상 공격을 끝까지 버텨낸 영국군이 있었기에 워털루 전투에서 연합군이 이긴 것으로 볼 수 있는데.. 여기서 또 하나의 숨은 공로자는 있다면 바로 전날밤 앓았던 치질이 되겠다. 믿거나 말거나 말이다.
 
암튼, 워털루 전투 패배후 실각한 나폴레옹은 미국으로 갈 결심을 하는 그는 엑스 섬에 머물며 탈출을 도모한다. 하지만 해상에는 영국해군이 버티고, 육로는 루이 18세에 의해 봉쇄된 채 나폴레옹은 영국에게 투항할 것을 결심한다. 결국, 세인트 헬레나 섬으로 귀향을 가는 나폴레옹.. 그곳에서 영국의 음모 속에 버티며 살았지만 그곳에서 1821년 5월 5일 오후 5시 49분 생을 마감한다.

그런데, 흔히 독살되었다고도 알려져 있는데.. 나폴레옹의 사인은 만성 위궤양에 따른 위암이라고 한다. 위암은 나폴레옹 가의 가족력이기도 했다니.. 그래서 조금전에 끝난 CNTV 마지막 8부에서도 나폴레옹은 그렇게 서서히 죽고 말았다. 어린 시절을 회상하며.........

덧글

  • 들꽃향기 2009/11/26 23:19 # 답글

    에릭 두르슈미트의 '아집과 실패의 전쟁사' 책에서는 이질로 적고 있더군요. 결국 치질이나 이질이나 결론은 나폴레옹이 피*을 쌌다는 증세 하나만은 공유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도주)
  • 엠엘강호 2009/11/26 23:24 #

    음.. 이질설도 있군요.. 갑자기 백윤식 대사가 생각나네요.. "그러다 피X 싼다.." ㅎ
    암튼.. 이래저래 영웅의 말로치곤 참 거시기 하네요.. 만성 위궤양이었다니..
  • nopi 2009/11/26 23:21 # 삭제 답글

    엄청난 스트레스가 되었겠는데요 (...)
  • 엠엘강호 2009/11/26 23:28 #

    그렇겠죠.. 전날밤 그렇게 심하게 앓았으면 말 안장에도 못 앉았을텐데 말이죠..ㅎ
    사실 이기기 힘든 전투였고.. 더군다나 아편까지 심히 하신후라.. 몽롱해져서리..
    오늘 TV에서 헬레나 섬 유배되어 침대에서 숨을 거두는 장면은 심금이 좀 싸해지더군요.. -_

  • 행인1 2009/11/26 23:33 # 답글

    1970년 작 영화 워털루에서도 나폴레옹이 병과 통증으로 판단력이 흐려지는 모습을 은근히 암시하고 있죠.
  • 엠엘강호 2009/11/26 23:38 #

    음.. 그렇군요.. 자기 몸관리는 꽝인건 같은데.. 이게 그냥 낭설은 아니었군요.
  • LVP 2009/11/26 23:45 # 답글

    거 그러게 쾌변신 앞에선 누구나 평등합니...(!?!?)
  • 엠엘강호 2009/11/26 23:47 #

    그쵸 이런 점에서 역시 신은 공평하다는.. 루저계의 영웅도 한낱 피X 앞에선 좌절크리...
  • 이준님 2009/11/27 08:53 # 답글

    나폴레옹 독살설은 70년대말에 나온 유일한 학설입니다.(그나마 신빙성도 없는데 의외로 책은 대단히 재밌습니다.) 그 학설이 있다는 걸 알았던게 소싯적 잡지 "어께동무"였죠 --;;;(나이 드러난다) 다만 독살설과 그 반박을 통해서 알수 있었던건 나폴레옹이 유배때 처한 환경이 대단히 어려웠다는 것이었습니다.

    일반적인 나폴레옹의 사인은 영국에서 발표한데로 만성 위궤양-암으로 변이된-이라고 보는게 낫습니다.

    말년의 나폴레옹은 상당히 비대했습니다. 70년대 영-소-이태리 합작영화 "워털루"에 나오는 뚱땡이 아저씨 로드 슈타이거가 이 연기를 리얼하게 했지요. 위인전 버젼으로 보면 상당히 다르지만요.

    영국에서는 웰링턴의 불굴의 의지. 독일에서는 블뤼허의 때맞춘 도착. 벨기에에서는 영국군 휘하의 외국인 부대의 벨기에 장성의 충언(!)에 의한 승리로 가르치고 있지요. ^^, 사실 복합적인 요인인게 맞고 워털루에서 나폴레옹이 이겼다고 해도 다시 한번 유럽을 정복하는 건 어려웠을겁니다.(웰링턴의 신임하는 고참병 부대는 전부 미국과의 군사 대립때문에 아메리카 대륙에 파병된 상태였죠. 유럽 각국의 병력 동원도 안된 상태였고)
  • 엠엘강호 2009/11/27 10:45 #

    음.. 독살설은 70년대에 나온거군요.. 그걸 소시적에 '어깨동무'로 접하셨다니 혹시 소년동아나 소년중앙은 아니셨는지..혹은 다달학습..ㅎ 암튼, 유배지에서 환경이 꽤 안좋았다 하더군요.. 영국의 감시하에 주치의도 보내버리는등.. 결국 만성 위궤양에 의한 위암이 사인인게 맞겠군요..

    그리고, 말년에는 비대했군요.. 그럼 말 그대로 짜리몽땅 스타일.. ㅎ '워털루'라는 영화에서 리얼하게 연기했다.. 이런건 어디가야 볼 수 있나요.. 이준님.. ㅎ 그리고, 워털루 전투야 나폴레옹에겐 역부족이 아니었나 싶네요.. 엘바섬에서 나와서 꾸린 그 정도의 군대가지고 연합군을 이길 수가 없었겠죠.. 이래저래 나폴레옹에게는 어두운 그림자가 서서히 다가오고 있었다는 느낌이 듭니다.
  • 이준님 2009/11/27 08:54 # 답글

    개그하나: 나폴레옹이 침대에서 죽어가는 걸 장엄하게 그린 단편을 식민시절의 "조선인"이 썼습니다. 예. 모밀꽃 필 무렵으로 유명한 이효석이 바로 그 당사자이지요.(흑역사)
  • 엠엘강호 2009/11/27 10:47 #

    그래요.. 이효석이 별걸 다 썼군요.. ㅎ 여기 8부작에서 마지막 모습은 장엄까지는 아니고 잔잔하게 그렸는데.. 마지막 대사가 "아미"였습니다. 그러면서 그가 묻힌 박물관의 관을 보여주었죠..
  • Wishsong 2009/11/27 09:31 # 답글

    국방일보였던가... 어느 장병 정신용 교육자료에서는 "한 명의 병사가 소집시간에 제대로 나오지 못해 한 소대가 움직이지 못했고, 한 소대가 움직이지 못하자...." 이렇게 꼬리를 물고 물어 결국 군이 제때에 이동을 못해서 워털루에서 패했다! 라고 나온 적이 있었습니다(...)
  • 엠엘강호 2009/11/27 10:49 #

    국방용으로는 제대로 된 교육인데요.. ㅎ 사실 워털루 전투에 임한 당시 프랑스군은 나폴레옹이 엘바에서 망명뒤 나와서 꾸린 군대라 연합군을 이기기에 벅차지 않았나 봅니다.
  • nighthammer 2009/11/27 12:24 # 답글

    나폴레옹이 속이 안좋았다는 거야 옛날부터 잘 알려져 있었죠.
    몬티 영감님의 '전쟁의 역사' 를 보니까 거의 상식 취급이더군요.

    그 상황에서도 워털루 전투가 승리 직전까지 갔다는 게 참 대단합니다.
  • 엠엘강호 2009/11/27 12:40 #

    가쉽거리로 치부하기엔 그만큼 그의 병리들이 심했다는 반증이겠죠.. 그러면서도 마지막 전투에서 악전고투한 나폴레옹도 대단한건 사실입니다. 내 사전에 불가능은 없었으니..
  • zert 2009/11/27 17:26 # 답글

    <아집과 실패의 전쟁사>에서도 나폴레옹의 판단 미스에 대한 설명 중 당시 치질을 앓고 있었다는 묘사를 하더군요. 물론 순전히 치질 때문에 졌다! 이런 논지는 아닙니다^^;;
  • 엠엘강호 2009/11/27 17:40 #

    덕후분들이 읽으신 책들을 통해서 계속 낭설이 아닌 확증으로 가는군요..ㅎ 물론 치질 한방때문에 안드로 간건 아니지만 얼마나 고생했을꼬.. 암튼, 이 포스팅이 뭥미가 되지는 않겠네요.. 그런데 웬지 책 제목이 끌리네요 '아집'이면 나폴레옹이 빠질 수 없으니.. 막판에 외무장관 탈레랑 말만 좀 들었어도 말이죠.. 존 말코비치가 다리절며 속삭이는 말투등이 생각나네요.. ㅎ
  • zert 2009/11/28 22:34 # 답글

    하틴의 뿔, 아쟁쿠르, 보어, 크림 전쟁, 타넨베르크 전투 등등

    과거 전쟁사에서 지휘관의 아집이나 무지, 편견으로 인해서 발생한 해프닝을, 그리고 그것으로 인해 대패한 전투를 중심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제가 세계전쟁사에 박식한 게 아니라 얼마나 객관적일지는 검증하지는 못했는데 볼 만한 책인 것 같습니다^^;;
  • 엠엘강호 2009/11/28 23:04 #

    음.. 그렇군요.. 그래서 말씀하신 <아집과 실패의 전쟁사> 살펴봤더니 목차들이 흥미롭네요..

    1. 원칙에 대한 무관심 - 하틴의 뿔 전투, 1187년 7월 4일(십자군 전쟁)
    2. 승리에 대한 집착 - 아쟁쿠르 전투, 1415년 10월 25일(백년 전쟁)
    3. 콤플렉스와 자신감 부재 - 카란세베스 전투, 1788년 9월 20일
    4. 열정의 책임감의 상실 - 워털루 전투, 1815년 6월 18일(나폴레옹 전쟁)
    5. 커뮤니케이션의 부재 - 발라클라바 전투, 1854년 10월 25일(크림 전쟁)
    6. 실패에 대한 감정적 대응 - 쾨니히그래츠 전투, 1866년 7월 3일(보불 전쟁)
    7. 기술 발전에 대한 무지 - 스피온 콥, 1900년 1월 24일(보어 전쟁)
    8. 사적 감정에 대한 집착 - 타넨베르크 전투, 1914년 8월 28일(제1차 세계대전)
    9. 정보에 대한 긴장감의 결여 - 탕가 전투, 1914년 11월 5일(제1차 세계대전)
    10. 시대의 흐름에 대한 무관심 - 아라스 전투, 1940년 5월 21일(제2차 세계대전)

    방금전 중고로 질렀습니다. 추천 감사합니다. ^^
  • 이준님 2009/11/30 08:16 #

    글세요. 전 이책 자체를 그렇게 높게 평가하지는 않습니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상식선에서 끼워 맞춘경우가 무척 많습니다. 그래서 고고학내지는 문서학으로 새롭게 발견되고 연구된 최근성과는 거이 반영하지 않는 경우가 태반이지요. 그냥 이런 전투가 있었다 정도만 아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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