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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대의 마녀 사냥꾼 종교재판장 '토르케마다' ☞ 서양고전들




이 육덕진 살점의 페이스를 보시라.. 벌써부터 포스가 느껴지지 않는가.. 역사적으로 종교재판이 횡행하던 15~17세기 스페인이 낳은 아니 희대가 낳은 전 세계를 통틀어 마녀만을 전문적으로 골라 만여명을 죽인 사람.. 이후 이 분의 함자 '토르케마다'는 '박해자'라는 의미로 쓰이게 된다. 사실, 지금 읽고 있는 책 '노크하는 악마'를 통해서 이분을 처음 알게 됐다. 정말 유용한 책이 아닐 수 없다. '내 안의 악마적 이야기'를 펼친 개론서, 분석서 같은 것인데..

처음 악의 기원부터해서 악의 화신, 악의 단면, 살인자 유형, 악의 배경, 악의 유혹등 인간사, 세계사에 존재한 모든 악에 대한 총집합체 같은 책이다. 그래서 '악의 화신'편에 나온는 내용으로 신앙의 적으로 몰린 마녀 사냥편에 나온 이분에 대해서 간단히 정리를 해보면 이렇다. 그런데 정리전에 이미지 구하기 힘들었는데 찾아보니 디스커버리 악마 열전에 떡하니 나오신 분..

먼저 생몰년은 1420~1498년. 원래 중세시대 마녀 사냥은 처음에는 국가기관이 맡았는데 15~17세기 들어서는 종교 재판을 통해서 마녀와 마법 행위에 대해 법적 처벌이 시작됐고, 중세 시대에는 이단, 악마 신봉주의, 마녀를 근절하는것이 교회 정치의 지상 최대의 목표였다. 그래서 마녀 사냥과 심판은 고발, 체포, 추궁, 소송, 재판의 과정을 거쳤고, 15세기 중반부터는 공개 마녀 재판으로 화형을시켜 화룡점정을 찍는것이 유행이 되었다.

그리고,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실과 무관하더라도 자백을 가장 확실한 증거라 생각해 피고의 자백을 받아내고자 모든 수단이 동원됐다는 사실이다. 각종 고문이 나올 수 밖에 없는 이유다. 그래서 여기서 앞장선 이들이 종교 재판관들이었는데.. 여기서 단연 독보적이고 악명높은 인물이 바로 토마스 데 토르케마다(Thomas de Torquemada)였다

보통 종교 재판관들은 대부분 도미니크 수도회 소속으로 그 역시 그 소속으로 당시 1500년무렵 유럽에서 손꼽히는 최고의 권력자였다. 그는 스페인 국왕 부부의 고해 신부이기도 했으며 국내 정치뿐만 아니라 외교 정책에도 영향력을 행사했다. 1492년 스페인에서는 토르케마다의 주도로 대규모 유대인 추방령이 내려졌고, 이는 이미 1478년 스페인에 거주하던 유대인들에 대한 추방 판결이 한차례 있었는데 이것은 수백년이 지나서 나치의 유대인 집단 학살 처럼 '혈통의 순수성'이라는 명목 아래 추방이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는 종료 재판관장으로 재직한 18년 동안 마녀 또는 이단 죄로 처형된 사람만 무려 8천명에서 1만 명 이상에 이른다고 한다. 특히, 폭력의 이론가이자 실천가였던 그는 1484년 종교재판장으로 임명되고 나서 이단과 마녀에 대한 교황의 지시와 이단 심판에 관련된 모든 사항을 정리한 종교 재판 법령집을 편찬하기도 했다. 또한 이단 심판과 마녀 사냥은 그들 재산 불리기에 쏠쏠한 수입원이었다. 당연히 몰수된 재산이 그들 주머니로 들어갔고 화형에 처해지는 것을 막아달라는 뇌물도 있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15세기 토르케마다를 통해서 본격적으로 정식으로 시작된 마녀 사냥은 이후에 더 극에 달하며 신앙의 적 '사탄'으로 내몰려 유럽에서만 수만명의 목숨을 앗아갔다고 한다. 자백을 받기 위한 각종 추악한 고문(손발톱 뽑기, 불로 발바닥 지지기, 관절을 잡아당기거나 비틀기, 몸에 뜨거운 액체 떨어트리기, 잠 안재우기, 여자는 인두로 가슴을 지기거나 유방을 절단하는등)부터 시작된 마녀 사냥은 심지어 무고한 사람까지 고발되는 해프닝도 비일비재했다고 한다.

암튼, '노크하는 악마'를 읽으면서 악의 화신편 '마녀 사냥'에서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프랑스 구국소녀 '잔다르크' 언급도 있지만.. 그전에 토르케마다로 일기 시작한 마녀사냥은 그를 종교재판소의 공포, 종교적 편협함, 잔인한 광기와 동의어로 쓰이게 만들었으니.. 어찌보면 인간 본성에 내재된 악마적 기질의 제대로 된 발현이 아닌가 싶다. 토르케마다여......



덧글

  • 루시엔 2010/02/08 20:59 # 답글

    15~17세기 들어서는 종교 재판을 통해서 마녀와 마법 행위에 대해 법적 처벌이 시작됐고, 중세 시대에는 이단, 악마 신봉주의, 마녀를 근절하는것이 교회 정치의 지상 최대의 목표였다. 그래서 마녀 사냥과 심판은 고발, 체포, 추궁, 소송, 재판의 과정을 거쳤고, 15세기 중반부터는 공개 마녀 재판으로 화형을시켜 화룡점정을 찍는것이 유행이 되었다.


    <-학자마다 논의가 다를 수 있습니다만, 보통 중세란 것은 5시기 이후에서 르네상스 이전을
    가르키는 말인데, 르네상스 시기 또한 논란의 여지가 있을 수 있으나 그 기원을 15세기
    정도로 보는 것이 정론입니다. 여기에서 쓰인 '중세'라는 말의 쓰임을 잘못되어 있습니다.
    위키 백과의 '중세'와 '마녀사냥'키워드만 검색해 보셔도 많은 오류를 보실 수 있으실 듯 합니다.


  • 엠엘강호 2010/02/08 21:07 #

    네.. 그래서 15세기 전후로 르네상스 시대전이 보통 우리가 부르는 중세시대로 저도 알고 있습니다. 저기서 중세 시대에는 마녀등 사탄에 대한 처벌이 간혹 있었지만 본격격적으로 활성화 된 것이 15세기 이후라고 적고 있습니다. 무슨 오류를 말씀하시는 건지요..
  • 루시엔 2010/02/08 23:10 #

    ??? 적은 것만 보시면 15세기 이후=중세, 종교 재판의 시기
    라고 생각하시는 것처럼 전달되어서요.

    '15~17세기 들어서(생략)<시작되었다>'라는 부분이 특히요.

    +그리고 위키에 의하자면, 적어도 15세기 이전에 교회는 마녀사냥엔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네요. 제네바 종교재판소가 마녀 혐의로 기소된
    두 여성에게 '우리 법정에서 판결할 일이 아닌듯;;'하면서 빠꾸시킨걸 봐도..
    교회는 이단에게 더 관심이 있었지요. 20세기까지 종교재판소가 교황청 부서로 살아남아 있던 것만 봐도..

    (지금도 이름만 바꾼 기관이 살아남아 있긴 합니다..고문은 안해요+ㅅ+/)
  • 엠엘강호 2010/02/08 23:25 #

    아.. 결국, 어구의 지적이었나요..
    제가 어디에서 15세기 이후를 중세라고 언급했는지요.. 아직도 이해가 잘.. -_

    그리고, 위키는 그렇게 적고 있다지만.. 적어도 이책은 '악마'에 대한 분석서이다보니.. 특히 마녀사냥편에서는 15세기 이전 중세 시대에도 아니 기독교 발생 이전에도 악마들 처단이 있었고.. 또 중세 시대에 몇년도에 누가 어떻게 했는지 기록하며 다 열거하고 있습니다. 물론, 중세 이후 15-17세기가 아주 많이 시행됐음은 당연하고요.. 이후 종교 개혁을 거치면서 1793년 포전에서 한 여인의 마녀죄 사형이후 유럽에서 공식적인 마녀 재판은 종지부를 찍었다고 이야기합니다.

    즉, 지금이야 마녀는 우리네 판타지등에 등장하는 신비한 인물로 그려졌지만 당시에는 이단, 사탄, 신앙의 적으로 '마녀'를 처단하는 일이 비일비재했음을 부인하지 못합니다. 물론, 그 과정에서 갖가지 고문은 두말하면 잔소리겠죠.. >.<

    ps : 주제 넘습니다만.. 이책 '노크하는 악마' 나중에 함 읽어보셨으면 합니다.
  • 밋첼™ 2010/02/08 21:47 # 삭제 답글

    생각만 해도 무시무시 하군요. 자백이 증거라고 하여 고문을 한다니..
    과연.. 그가 고문을 당했다면 그 자백을 안했을지.. 문득 궁금해 집니다.

    자신의 재산 불리기를 위해 남을 죽이는 행위.. 현실에서도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는 일이군요..
  • 엠엘강호 2010/02/08 22:13 #

    네.. 무시무시하죠.. 그리고 다른 어떤 범행 단서보다도 중요하게 여긴것은 마녀 재판대에 오른 피고인이 사형되는것은 처음부터 정해져 있음에도 피고의 자백을 받는것이 처형 즉 화형의 최종목표였습니다.

    여기서 화형의 의미는 1150년부터 '죄인의 불순한 영혼을 정화해 구원받게 한다는 명목'으로 공개 화형이 시행되었다고 적고 있습니다. 이후에는 1484년 교황 인노첸시오 8세때에는 이 마녀사냥을 합법화? 하기 위해서 각종 법률 규정에 '마녀교서'까지 내려 마녀 사냥을 공식적으로 인정했다고 합니다. 물론, 그 중심에는 저 인물 '토르케마다'가 있었고요..

    암튼, 이런 명목으로 죽어나간 이가 한둘이 아니었으니.. 그 속에는 멀쩡한 인간도 꽤 있었고, 또 죄를 면하기 위해서 각종 비리는 명약관화한일.. 바로 惡의 역사가 아니겠습니까..
  • 일국지 2010/02/09 01:43 # 삭제 답글


    마녀재판이라곤 해도 사실 직접적으로 학살을 당한 쪽은 실제로 흑마법을 시전한 용자보다도 교회의 부패와 타락상을 비판했던 지식인들, 나이를 먹어 정신이 오락가락하게 된 노인들(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그리고 장애인들이었지요.

    우생학에 근간을 둔 정치적인 학살이기도 했는데... 실제로 죄를 자복하면 의외로 벌금형이나 성지순례형으로 끝나는 경우도 많았답니다. 예를 들어서 한때 눈이 멀어 악마를 섬겼다, 이제서야 참된 주님을 만났다... 이런 식으로요.

    다만 위에 언급된 노인분들, 장애인분들, 교회에 비판적인 지식인들은 자신을 제대로 변명하지 못하거나 굽히지 않았기 때문에 결국 비극을 면치 못했던 것이겠지요(...)

  • 엠엘강호 2010/02/09 02:06 #

    그렇죠.. 제가 여기서 얘기한 마녀가 사실 액면 그대로의 마녀는 아니죠.. 물론, 당시에는 마녀라는 존재 어떤 무형에 대한 교회에 대항하는 신앙의 적, 사탄으로 간주하며 그런 이단아들을 처리하기 위한 방편인 것이고요..

    그래서 유럽사에 종교재판으로 '마녀'라는 명목하에 수만명이 죽어나갔지만 그 속에는 무고한 사람도 꽤 있었고, 그렇게 언급한 많은 기록들과 함께 이런 것이 중세와 18세기까지 유럽의 악의 역사를 관통하는 화신이라 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근대에 들어와서는 더 했다는 사실.. -_
  • 들꽃향기 2010/02/09 15:34 # 답글

    재미있는것은 저 톨케마다의 부작용 때문인지, 아님 다른 우너인 때문인지 정작 스페인에서는 마녀사냥과 이교도 탄압의 추세가 줄어가고, 역으로 독일에서 유행이 늘었다는 괴담이...ㄷㄷ
  • 엠엘강호 2010/02/09 16:39 #

    네.. 토르케마다에서 본격화된 마녀사냥이 이후에 불이 붙었지만 반대하고 악마는 없다고 주창한 이들 학자와 세력도 꽤 있었다고 전합니다. 이후 종교개혁으로 많이 잦아들었는데.. 그리고, 이 책 저자가 독일 사람인데 고해성사인지 몰라도.. 중세 시대에는 독일도 마녀 사냥이 만만치 않았다고 언급합니다. 들꽃향기님 쪽집게.. ㄷ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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