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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에 악마있다.." - 독재자들 학살뒤에 숨은 성정 ☞ 서양고전들



인간의 본성 깊숙히 내재된 악의 기운이 다른 감정과 복합적으로 부딪치며 폭발했을때 그들이 펼친 행위는 사회적 정치적으로 파장은 물론 인간사 세계사를 바꿀 정도로 엄청난 결과를 발휘한 것이 사실이다. 여기 <노크하는 악마>라는 책은 악마를 정신적, 심리학적 분석을 통해서 이미 15~17세기에 횡행했던 '마녀 사냥'의 수장격 '토르케마다' 라는 악의 화신을 엿봤다면..

이제는 악의 화신을 각개로 들어가서 악의 단면 코너에 소개된 근현대사의 굵직한 다섯 인물(위 그림)의 면면을 요약식으로 살펴보려 한다. 대신 그 인물들의 정치적 발자취나 그에 대한 해석의 나열이 아닌 그들이 광기를 부린 학살의 모습과 왜 이런 만행을 저지르게 된 정신상태의 바탕이 된 '성정'을 위주로 요약해 보겠다.

다소 틀릴 수도 있지만 많이 공감하실거라 보며 함 읽어보세요.. ㅎ





1. 로베스피에르(Robespierre, 1758~1794)

* 전 적 : 프랑스 혁명시절 급진파 자코뱅당 수장격으로 공포 정치를 편 인물.

* 학 살 : 프랑스 혁명의 과정에서 자신의 경쟁자에게 가차없이 권력을 빼앗고 숙청하며 심지어 15살 소녀부터 80살 노인까지 무고한 사람까지 처형하며 자코뱅 당이 정권을 쥐고 있을때 체포된 사람은 30만 명에 이르며 파리에서만 15,000명 체포, 권력잡은 49일동안 항소제가 폐지되어 무려 1,376명이 교수형에 처해졌다. 물론 처형당한 사람들 대부분은 반혁명적 무고한 시민이었다는 후문이다.

* 성 정 : 자신이 혁명의 상징이자 국민의지의 집행자라는 망상속에 배신자와 반혁명 분자들 숙청에 앞장서며.. 냉정한 이기주의자이자 교활한 전략가 스타일로 책상에 앉아 살인을 교사하는 독재자의 전형을 보여줌. 그가 존경했다는 루소를 '인류의 스승'이라 칭송하며 시신을 파리 판테온에 안치하는 기행을 보임. 그래서 루소의 <사회계약론>에 푹빠져 이상적 공산주의 사회에 대한 환상을 좇는 공포 정치를 펼쳤다는 평가다.

또한 이런 그와 함께 혁명에 동참한 외설적인 소설가 마르키드 사드(Sade)라는 인물이 있다. 그는 그 유명한 《소돔의 120일》이라는 작품으로 외설과 폭력을 주제로 한 소설가의 대명사로 불려지며 후에 그의 이름에서 유래한 사디즘(Sadism)은 가학적 음란성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에 굴욕과 괴롭힘을 통해서 욕구를 찾는 의미로 발전됐고, 그는 로베스피에르와 함께 처형을 당하기전 교수형은 면하고 파리의 샤랑통 정신병원에서 숨을 거뒀다. 

* 죽 음 : 1794년 7월 7일에 체포되고 단두대에 올라 자살 시도 실패후 중상입고 처형 당했다.





2. 아돌프 히틀러(Adolf Hitler,1889~1945)

* 전 적 : 독일 나치 정권의 총통으로 유대인 말살정책 홀로코스트를 펼친 인물.

* 학 살 : 그의 자서전 《나의 투쟁》에 나와 있듯이 그는 유대인을 인간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그래서, 유대인의 씨를 말리겠다고 선언후 1941년 10월부터 유대인들을 아우슈비츠에 강제 수용과 가스실등 집단 학살이 본격화됨. 1942년 1월 20일 반제에서 열린 회의에서 유대인 '마지막 해결(유럽의 모든 유대인을 학살시키기 위한 나치 정부의 계획을 뜻하는 말)'이라는 코드네임으로 1,100만 유대 유대인을 모조리 학살하고 이때 나치가 자행한 집한 학살 피해자는 적어도 600만 명이 이상이 넘는 전대미문의 기록을 남긴 홀로코스트(Holocaust).

* 성 정 : 자기중심적이고 냉정하지만 항상 기분이 들떠 있던 정치 선동가로 배우 기질이 강했고, 집단행동을 유발할 수 있는 화술이 뛰어났다. 허영심, 기만, 광신, 냉혹함, 감성적인 성격이 이해 할 수 없는 방식으로 복합적인 인물로 심리학적 용어로 설명하자면 반사회적 인격 장애와 자기 중심적 히스테리 증상을 보이는 냉정한 사회 부적합자.

더군다나 말년에 접어들면서 각성세 복용량이 초과되며 초기 파킨스병 증상이 겹쳐 그의 심리상태는 극도로 불안 장애를 일으켰다. 아직도 히틀러라는 인물 안에 깊숙이 뿌리박힌 악을 심리학적으로 충분히 설명하기 불가능하다고 함. 그러나 현재까지 진행된 신경 심리학적 두뇌 생리학의 연구 결과는 히틀러를 정신 병리학적으로 설명하는데 흥미로운 근거를 제시하고 있다고 한다.

* 죽 음 : 1945년 4월 30일 소련군이 베를린을 점령하기 직전 자신의 관저에서 설치된 벙커에서 권총으로 자살. 자살전에 이런 말도 남겼다고 한다. "우리에게 결코 항복은 없다. (.....) 비록 몰락하게 될지는 모르지만, 우리가 만든 세상을 함께 가져갈 것이다." 또한 마지막으로 남긴 정치적 선언문에 내용은 이렇다. "나는 한 나라를 이끌면서 인종법을 실행하기 위해 추종자들을 인도해야 했으며, 세상을 독으로 물게 하는 인종인 유대인을 말살할 책임이 있었다."





3. 이오시프 스탈린(Iosif Vissarionovich Stalin, 1879~1953)

* 전 적 : 히틀러의 최대 적으로 스스로 '강철 사나이(스탈린)'로 개명한 소련의 정치가이자 독재가.

* 학 살 : 스탈린 정권 아래 이른바 '계급의 적'에 대한 숙청작업으로 당내 반동분자들 뿐만 아니라 경제, 군사, 문화, 학문 전 분야에 걸친 대규로 숙청이 이루었졌다. 1936년 9월부터 1938년 11월 사이에 1,500만명이 처형되고 500만명이 시베리아 수용소에서 목숨을 잃으며 희생된 사람이 약 2천만명에 이른다. 이것은 전국민의 5퍼센트가 체포되었고 심지어 4천만 명이라는 통계도 있다. 레닌 시대에 설치된 '굴락(Gulag)'이라는 교도소 겸 강제 노동 수용소를 관리하고 독일군의 잠재적 협력자들을 시베리아 강제 수용소로 3천만명을 이송시켰다. 1941~51년에 음모론에 대한 환상에 사로잡혀 이번에 숙청 대상은 성직자, 유대인, 소수민족으로 1952년 '의사들의 음모'라는 사건으로 유대인 의사 6명이 무참히 처형당함.

* 성 정 : 히틀러와 대조적으로 내성적이고 속을 알 수 없는 스타일. 그는 자신의 집무실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으며 의심 많고 조심스런 성격의 소유자였다. 그래서 그는 공식 석상에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비행기 여행도 꺼렸다고 한다. 또한 신비주의를 조성해 자신이 민족의 아버지라는 신화를 만들려고 했다. 하지만 실제의 스탈린은 잔인한 독재자이자 권력욕에 사롭잡힌 교활하고 음흉한 인물로 나이가 들면 들수록 망상증의 경계를 넘나들 정도로 음모와 배신에 대한 공포에 사로잡혔다고 한다.

하지만 스탈린은 수많은 찬양가를 통해 '민중의 태양'이라고까지 불리며 위대한 지도자로 찬양받았고.. 그가 실행한 대규모 말살 정책과 공산주의 유토피아를 실현하기 위한 노력, 계급의 적과 반혁명분자를 제거한 행위는 소위 좌파 지식인들도 추종하는 이가 적지 않았다고 한다. 특히 마지막 대숙청 작업 이후로 스탈린에 대한 개인 숭배는 널리 전파되 서방의 좌파 지식인들마저 스탈린을 세상을 구원자로 여길 정도였고, 더 나아가 그가 자행한 잔혹 행위는 세계 대혁명을 위해 피할 수 없었다는 관용적인 태도를 보이게 했다.

* 죽 음 : 또 다른 숙청 작업을 모색하던중 1953년 3월 5일 심장 발작으로 갑작스럽게 죽음.





4. 마오쩌둥(Mao Zedong 毛泽东, 1893~1976)

* 전 적 : 중화인민공화국을 수립한 정치가이자 국가 주석으로 중국식 공산주의 혁명가 이른바 모택동.

* 학 살 : 마오쩌둥이 주도한 대학살은 5천만명이 넘는 희생자가 발생했다. 최근 조사로는 7천만명이 넘는다고 한다. 1945년 중국 공산당 당수가 된 그는 1946~48년에 있었던 내전에 승리를 거두고 1949년 10월1일 천안문 광장에서 중화인민공화국 건국을 선포하며 국가 주석이 됐다. 이후 1958~60년사이 대약진 운동이라는 이름로 산업화, 군사화, 농지의 강제 국유화를 의욕적으로 추진. 그런데, 대약진 운동이 실패로 돌아가자 나라 전체가 대기근에 시달리며 4~5천만명이 굶어 죽었다. 또한 그는 삶을 마감할때까지 1,500~2,000만명에 이르는 도시 주민을 농촌으로 강제 이주시키고, 반혁명분자 전용 교도소와 수용소에 전 국민의 2퍼센트에 해당하는 숫자가 체포되었다. 이때 그 곳에서 굶어죽거나 질병, 사형으로 죽은 사람의 수는 2천만명에 달했다.

* 정 치 : 1966~76년 문화대혁명 추진하는 과정에서 자신을 지지하는 대학생과 고등학생들로 구성된 준군사조직 홍위병이 휘두른 무법 폭력으로 7천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 밖에 그는 모든 문화재를 파괴하라고 명령하고 서적과 사찰을 불태워버렸으며, 자신의 찬양가인 <둥팡홍>을 제외한 모든 음악을 금지했다. 1968년 좌파 학생 운동 당시, 그는 좌파지식인들 사이에서 부르주아 계급을 향한 반제국주의 투쟁의 우상으로 섬겨졌고..

《모주석 어록》이라는 작고 붉은 책은 수 백만부가 발행되며 목까지 올라오는 그의 양복은 새로운 사고를 하는 사람의 상징으로 여겨졌으니.. 이런 그에 대한 개인 숭배는 그가 모범으로 삼은 스탈린 숭배를 뛰어넘었다. 오늘날까지 중국에는 마오쩌둥을 찬양하는 분위기가 지배적이며 그의 동상과 초상화는 그대로 보존되고 있다.

* 성 정 : 국가 주석이자 민중의 지도자 마오쩌둥은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했고, 냉정한 성격이었지만 한편으로는 유쾌하고 흥을 즐기는 사람이었다. 금욕주의자였던 히틀러나 스탈린과 달리 그는 사치와 방탕한 성생활을 즐겼다고 한다.

* 죽 음 : 심장발작으로 1976년 9월 9일 베이징에서 사망. 





5. 폴 포트(Pol Pot, 1928~ 1998)


* 전 적 : 폴 포트의 본명은 살로트 사(Saloth Sar) 캄보디아 공산당 지도자로 그 유명한 '킬링필드' 대학살의 주인공

* 학 살 : 1962년 캄보디아 당 서기장으로 선출된후 그는 공산주의 유격 부대 '크메르 루주'의 지원을 받아 캄보디아 전역으로 세력을 확장했다. 그가 이끈 크메르 루주 정권의 통치 기간에 목숨을 읽은 사람은 150만명이나 된다. 그중 절반은 형 집행에 의해, 나머지 절반은 킬링필드에서 강제 노동을 하다가 기아와 질병과 처형당해 죽었다. 1977년 공산주의 정권이 정점에 오르자 야만적 탄압은 극에 달했고, 한 마을 전체 한 가족이 말살되며 모든 문명의 혜택을 금지시켰다. 특히 그는 마오쩌둥의 문화대혁을 모범으로 삼아 지식인들을 탄압하고 고문해 죽음으로 몰아넣으며 교사 2만명 가운데 5천명이 살아남고, 6만 명이던 승려는 1천 명으로 줄었다.

크메르 루주군은 전국 곳곳에 강제 노동 수용소를 설치하고 밭에서 강제 노역자들은 모두 검은색 옷을 입게 했고, 하루 작업시간은 12시간 이상에 작업에 늦으면 태만죄로 처형시켜 버렸다. 이런 만행은 1978년까지 대대적인 숙청작업과 함께 수천명에 달하는 공산당원을 사형시켰다. 폴 포트의 공산 정권이 베트남군에 패할 때까지, 캄보디아에서 비참한 죽음을 당하는 것은 일상으로 크메르 루주군은 총알을 절약하기 위해서 사람들을 때리거나 목졸라 죽였다. 심지어 산 채로 화형에 처하며 어린아이들도 고문과 사형을 피해가지 못하고 군인이나 첩자로 이용했다. 특히 프놈펜의 한 비밀 교도소에는 15,000여명이 수감되었는데 그곳에서 살아나온 사람은 겨우 7명뿐이었다 한다.

1976년 9월, 마오쩌둥이 세상을 떠나자 폴 포트는 누군가에게 쫓긴다는 위협을 느끼기 시작하며 여러 차례 아무도 모르게 거처를 옮겨다니며 항상 독살에 대한 공포심에 사로잡혔다고 한다. 그가 이끈 독재 정부는 고문과 협박으로 점철되며 1978년에는 마침내 당 간부의 반 이상이 제거되었다. 결국, 1978년 베트남군이 캄보디아에 진격해 수도를 점령하자 크메르 루준군은 마지막까지 대항해 게릴라전을 펼쳤고 베트남의 타목 장군운 폴 포트를 총리 자리에서 해임하고 종신 가택 연금형을 지시했다.
 
* 성 정 : 마오쩌둥의 영향을 크게 받은 폴 포트는 편집광적 원칙주의자였고, 조용한 성격이었으나 뒤에서 모든 것을 조정하며 캄보디아 전역을 공포로 몰고 간 차갑고 무서운 인물이다. 그래도 한때는 학생들에게 사랑받고 친절하고 매력적인 선생님이었으며 프랑스 문학을 좋아하고 1번의 인물 '로베스피에르'를 존경했던 그는 어느 덧 인정사정 보지 않는 냉혹한 윈시 공산주의자로 변모한 것이다.

* 죽 음 :  1998년 폴 포트는 약물을 과다 복용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가 자살한 것은 미국으로 강제 압송되어 전범 재판에 부쳐지는 것이 두려웠기 때문이라고 추측이 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그가 독살되었다고 추측하기도 한다.


지금까지 18세기 인물 로베스피에를 빼고 20세기 근현대사를 장식한 독재자들 히틀러, 스탈린, 마오쩌둥, 폴 포트에 대해서 주로 학살의 흔적과 성정을 정리해 보았다. 이렇게 이들은 악의 화신이 되어 세상을 경악과 공포로 몰아넣은 독재자였다. 이들 네 사람의 손아귀에 명령권을 틀어쥐고 말살로 죽어나간 사람만해도 수천만명에 이르렀음을 알 수 있다. 이렇게 그들은 악의 화신으로 독재를 펼친 배경에는 정치적 상황과 맹신적인 추종자들이 그들을 비양심적이고 광신적이며 권력욕에 불타는 독재자로 만든 사실도 간과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그들 스스로 성정도 한 몫했으니.. 이 책 <노크하는 악마>의 저자이자 정신과 전문의, 심리학 교수인 '테오.R.파익'은 그들의 성정을 다시한번 이렇게 언급한다. 히틀러는 지나칠 정도로 자기 중심적 인물이었고, 스탈린은 교활하고 음흉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으며, 나르시스트 마오쩌둥은 권력에 굶주렸던 예측할 수 없고 복수심이 강한 지배자였으며 대중의 찬양을 즐겼다. 그리고 마지막 폴 포트는 고집이 세고 접근하기 어려운 내성적인 이론가였고 겉치레와 사치를 싫어했다고 적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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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오주르디 2010/02/09 23:25 # 삭제 답글

    잘 읽고 많은 생각하다가 갑니다. 좋은 내용, 좋은 글이네요.. 자주 들리도록 하겠습니다.
  • 엠엘강호 2010/02/10 01:20 #

    아.. 네.. 유익?하셨다니 다행입니다. 지금까지 그들의 행적을 좇은 이야기는 무수히 많았어도.. 그들의 성정까지 자세히 나온 책은 사실 드물었죠.. 이것 이외에도 정말 유용한 책입니다. 암튼, 종종 들러주세요.. ^^
  • 일국지 2010/02/10 00:49 # 삭제 답글


    스탈린의 경우 아내가 살아있을 땐 굉장히 유머를 즐기고 잘 웃는 사내였는데 아내가 죽은 이후로 성정이 확 바뀌었다고 합니다. 별명이 '회색'이었으니까요.

    루머에 의하면 스탈린의 부하가 죽을 각오하고 '지금 백만명에 이르는 사람이 (서기장 동무 때문에) 죽고 있습니다!' 충언하자 스탈린 왈 '백만명 아니야. 한 수백만명 될거야.' ㅎㄷㄷ

    히틀러가 죽인 사람보다 스탈린이 죽인 사람이 더 많다는 썰까지 나올 정도니까요;

  • 엠엘강호 2010/02/10 01:35 #

    음.. 그런 유머러스한 성정도 있었군요.. 그런데, 그는 첫 번째 부인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자신의 아들마저 처형할 정도로 냉혹한 독재자였다죠.. 특히 이 책 저자도 스탈린을 좀 까는 분위기인데.. 특히, 그를 16세기 러시아의 잔인한 지배자 이반 4세와 비교도 하고 있습니다.

    '잔인한 이반'이라는 별명을 가진 이반 4세 바실리예비치는 조심스럽고 의심많은 스탈린과 반대로 변덕스럽고 화를 잘 내는 성정으로 자신의 아들에게 폭력은 물론, 개를 풀어 왕실의 백작을 물게하고 자신의 7명의 부인이 죽고나자 점점 괴팍해지면서 가족도 처치하고 고문과 죽는 모습을 즐겼다고 합니다. 특히 '오프리치니나(Opritschnina)'라는 군대를 만들어 귀족과 주교, 시민 수천 명을 살해하고 그들의 재산을 몰수하고 몇주만에 학살로 3만 명이나 죽였다는 전설의 군주.. 아마도 스탈린의 룰모델일지도 모르죠..

    암튼, 그런면에서 스탈린과 히틀러 둘을 비교하는 책이나 이야기도 많긴 합니다. 아마도 학살 개념은 스탈린이 더 하지 않을까요.. 히틀러는 지상 목표였던 유대인에게만 집중했으니 말이죠.. -_
  • 자기도 2010/08/23 01:32 # 삭제

    엠엘강호//히틀러는 공산주의자를 증오했기때문에 슬라브인들도 혐오했죠...
  • LVP 2010/02/10 01:20 # 답글

    그러게 인성교육과 정신건강도 중요하다는 삶의 도시락(?)를 증명해주는 사례이근영.... (!?!?)
  • 엠엘강호 2010/02/10 01:38 #

    그럼요.. 이유없는 살인이 이 세상 존재하지 않듯이.. 이런 대학살의 이면에 숨은 악마적 기질에 대한 고찰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사회적, 정치적 행위에는 모두 이유가 있는 것이죠.. 고로 삶의 도시락을 잘 챙기라는 엄중한 사례일지도 모릅니다..ㅎ
  • LVP 2010/02/10 05:19 #

    그리고 까먹고 말씀안드릴뻔했는데, 링크 걸어뒀습니다 'ㅅ'
  • 엠엘강호 2010/02/10 09:26 #

    아.. 네.. 감솨요.. 그런데, 링크도 신고인가 보네요.. 'ㅅ'
  • 태리 2010/02/10 08:27 # 답글

    마오 보니 갑자기 생각나는 거. '발자크와 소녀재봉사'란 영화인데(원작은 '발자크와 바느질하는 중국소녀'란 책) 그게 주인공인 소년 2명이 1970년대 초반에 사천 봉황산 골짝으로 하방내려가는 걸로 시작하거든요. 봉황산 올라가는 그들의 전경 위로 흘러나오는 노래-"우리는 마오 주석의 홍위병~♬초원에서 천안문으로 왔네. 끝없는 깃발은 바다를 이루고~~ 위대한 영도자 마오주석께서는 우리를 이끄시네~' 뭐 이렇거든요. 참.. 영화의 내용과 대비되어 그 아이러니랄지..
    근데 문제는 그 노래가 의외로 상당히 중독성 있다는 거-.- 들을 땐 그냥 들었는데 나중엔 막 머리에서 뱅뱅 돌아요;;(단순한 멜로디의 세뇌효과랄까) 아.. 보통들 그런 세뇌효과를 거쳐 그들의 첨병이 되곤 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다른 독재자들은 그래도 자국에서 비판을 많이 받는 편인데 마오는 아직도 국민들 대다수가 부르는 호칭이 '마오 주석'이고, 평가가 좋다니.. 왠지 그렇습니다.
    참, 로베스피에르는 몇년전에 엄청 두껍게 나온 그의 전기를 보면 또 다른 면에서 그를 볼 수 있을 것도 같아요. 문체가 좀 어렵고 딱딱해서 다 읽진 못했습니다만..ㅠㅠ
  • 엠엘강호 2010/02/10 09:36 #

    네.. 맞습니다. 이책 저자도 마오는 체계적이면서도 과장된 지도자 숭배 문화를 형성시켰다고 말하면서.. 심지어 서유럽 국가에서도 마오를 숭배하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지금 러시아가 스탈린이즘에서 눈을 돌린 반면에 대조적으로 중국에서는 아직도 마오에 대한 정치적 평가가 객관적으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로베스피에르 이분이 문제는 바로 프랑스 대혁명 이후에 공공 안전을 위해서 설립된 공안위원회를 자신이 접수하면서 혁명재판소까지 그의 손아귀에서 조정되면서 그는 그 재판소를 반대파 숙청의 도구로 사용했다는 점입니다. 그러면서 지롱드파를 숙청하는등 그의 측근 생쥐스트가 이끌던 공안위원회는 테러 수단으로 전락해고, 그때 자코뱅 당의 공포 정치 아래 15,000명이 사형에 처해졌다 합니다. 암튼, 시기만 다를뿐 이분도 만만치 않더군요.. -_
  • 이준님 2010/02/10 17:55 # 답글

    1. 마오 주석 연간에 노래나 여흥은 거의 금지 되었죠.-물론 자기는 방에서 혼자 했다는- 연극이나 경극도 금지되었고 (패왕별희라는 영화에서 이때의 수모가 그대로 묘사됩니다. 참고로 감독이 그때 홍위병이었다능) 혁명가극도 안되는 특이한 형식의 극만 상영되지요. 그때 유명한게 "기습 백호단"이라는 괴작인데. 어떤 나라 전쟁 당시 중국 인민의용군 용사들이 그 나라 민간인들에게 차카게 대하고 적국 사령부를 발라먹고 미국 군사고문을 생포하는 알흠다운 내용입지요.(개뻥 과장이 많았지만 상황은 나름 맞다는게 공포입니다.)
  • 엠엘강호 2010/02/10 18:11 #

    이글에 이준님이 왜 감수를 안하나 했습니다.. ㅎ
    역시 마오 주석이 자신만의 여흥을 제대로 즐겼군요.. 그러면서 인민들한테는 신격화했으니..
    그런 그를 추종하는 젊은 용사들도 만만치 않았고..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드는 알흠다운 풍경입니다.
  • 이준님 2010/02/10 18:00 # 답글

    2. 스탈린의 아들의 경우는 독일군에게 생포되서 포로수용소에서 철조망에 일부러 접근하다가 사살된게 맞습니다. 보통 생포된 소련군의 가족은 수용소행 --;;;이라서 며느리를 한동안 감옥에 처넣기도 했지요. 스탈린의 다른 아들들은 좀 개망나니가 많았는데. "아버지가 죽은뒤의 숙청 공포"때문에 발광했다고 보는게 맞습니다.

    3. 캄보디아건은 참가국 거의 전원이 죄를 지었다고 할 정도입니다. 참고로 중국이 꿈꾸는 농업사회주의를 100% 구현한곳이 바로 캄보디아였고 그래서 서방의 마오주의자들이 캄보디아 혁명을 찬양했다는것도 개그이지요. 하기야 우리나라의 이XX교수 같은 경우는 대단히 민망하게 마오를 찬양했으니까요.(90년대 공개적으로 그때의 오류를 자인했지만요.)
  • 엠엘강호 2010/02/10 18:21 #

    음.. 스탈린이 첫째 아들 처형말고 그런 일화도 있군요..
    그런데, 나머지 아들들은 아버지 포스를 못따라갔으니.. 스탈린 자체가 워낙 ㅎㄷㄷ..

    그리고 '폴 포트'를 보면은 한때 프랑스 문학 공부하며 로베스피에르를 존경하고 후에는 마오를 룰모델 삼으며 살인 독재를 부렸는데.. 정말 달래 킬링필드가 아니라는 생각이 드네요.. 78년에 잡혀서 죽기전 98년까지 20년동안 그는 뭐하고 지냈는지.. 그나저나 우리나 모 교수는 누구랍니까..
  • 백범 2010/02/10 18:59 #

    그랬군요. 얼마전 이름을 바꾸고 미국인가 어디에 도피중이었던 스탈린의 증손자가 언론에 보도된적이 있었는데... 흠...
  • 어릿광대 2010/02/12 19:41 # 답글

    독재자들이 죽이거나 감금등등 한 사람들의 수가 ㅎㄷㄷ급이군요;;
    근데 폴 포트가 한때 존경받던 선생님이었는데 독재자로 된거보면 이건 뭐 ㄷㄷ
  • 엠엘강호 2010/02/12 19:52 #

    뭐.. 근현대사를 장식한 굵직한 인물들답게 ㅎㄷㄷ하죠.. 인간이 아닌 악마의 화신들이라 이 책은 말합니다. 그들로 인해 죽은이들이 수천만명이나 됐으니 말이죠.. 그리고, 폴 포트는 한때 문학 선생님이었던 그가 캄보디아 공산당에 가입하면서 성정이 변했죠.. 그러면서 마오를 모델로 캄보디아를 공포와 잔혹으로 몰고간 킬링필드의 주인공..
  • 자기도 2010/08/23 01:37 # 삭제

    스탈린도 성직자/시인 지망생이었다더군요.
  • 알고싶어요 2010/11/10 17:47 # 답글

    너무 재미있게 잘 읽고 갑니다. 프랑스 혁명을 읽다가 파도 타고 파도 타다 보니 여기까지 왔네요. 마무리를 짓게 만드는 재미난 글이었습니다. 감사해요.
  • 엠엘강호 2010/11/10 18:45 #

    아하.. 그러신가요.. 재밌게 읽으셨다니 뿌듯한데요.. 당시에 이 글 정리하느라 시간 좀 걸렸는데..
    아무튼 도움이 되셨다니 다행입니다. 즐거운 하루 되세요~~
  • 2015/04/29 16:21 # 삭제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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