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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산 허균은 조선중기 사회의 이단아였다? └ 사극관련들




허균하면 생각나는 홍길동전, 홍길동전하면 허균.. 아니면 아직도 홍경래와 홍국영을 헷갈리듯 허균과 허준을 헷갈려 하는 사람이 없지 않아 있다. ㅎ 이미 포스팅 했지만 조선초 사회의 매월당 김시습이 이단아 였다면 조선 중기를 대표하는 이단아라면 허균이 아닐까 싶다. 이런 모습은 예전 사극 '천둥소리'에서 최재성이 허균으로 분연하며 그의 일대기를 잘 그린 작품이었다. 또한 팩션 역사소설 '왕의 밀실'에서 광해군의 오른팔?로 교산 대감 허균이 활약한 그림도 생각이 난다.

암튼, 김시습이 세조의 독단으로 단종 폐위와 사육신의 처형으로 주유천하로 칩거하며 수많은 시문집과 불후의 미학적 한문소설 '금오신화'를 남겼다면 그는 후세에 최초의 국문 소설인 '홍길동전'을 남겼다. 그래서 펭클판 '홍길동전'을 읽고 있는데.. 그는 김시습처럼 주유천하하지 않았고 양반 출신임에도 시대에 맞서서 금기를 깨뜨리는 이상주의를 외친 인물이었으니 그의 생애와 내력을 좀더 살펴보면 이렇다.

허균(許筠, 1569~1618)은 초당 허엽(許曄)의 3남 3녀 중 후처 김씨 소생으로 태어났다. 그는 조선시대 중기 광해군때 활약한 문신, 소설가, 사상가, 정치가로서 본관은 양천(陽川)이며, 자는 단보(端甫)이고, 호는 교산(蛟山)·성수(惺 )·백월거사(白月居士)이다. 고려 때부터 대대로 문장가를 배출한 집안의 후예로서 화담 서경덕의 수제자였던 아버지, 맏형 성, 작은형 봉, 누이 난설헌까지 아울러 오문장가라고 불렸다. 그 또한 다섯 살 때 글을 배우기 시작하고 아홉 살 때 시를 지어 '그 재주가 위험할 정도'라는 평을 받았다.

작은형의 벗이자 서얼 출신이었던 손곡 이달의 문하생이 되어 사상과 학문적으로 큰 영향을 받는 한편 신분 차별 문제에도 일찍 눈뜨게 된다. 서얼이어서 과거에 응시하지 못했던 스승의 한을 달래고자 <손곡산인전>을 짓기도 했다. 1589년 생원시에 합격하고 후에 외교를 담당하는 벼슬을 얻어 국내외를 오가며 새로운 문화와 문물을 접해 식견을 넓혔다.

이를 기반으로 당면한 현실의 부조리를 지적하고 앞으로 다가올 재난을 예견하고 이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면서 정치 사상가로서의 모습과 개혁가로서의 면모를 다지게 된다. 이렇게 허균은 유교 집안에서 태어나 유학을 공부하고 과거에 합격하여 여러 관직을 두루 거쳤다. 그러나 그는 예교(禮敎)에 얽매에 있던 당시의 폐쇄된 사회에 한계를 느끼고 새로운 변화를 모색하기도 하며 이단으로 지목되어 배척받던 불교와 도교에도 깊은 관심을 가졌다.

특히 불교에 심취하여 출가를 결심하기도 했고, 도교의 양생술(養生術)과 신선사상을 동경하여 이에 몰두한 적도 있었고, 중국 사행(使行)길에서 접한 서양의 선교사를 통해 천주교 기도문을 얻어 와서 이를 탐독한 일도 있다고 한다. 이렇게 자유분방하고 규범에 얽매이지 않는 행동을 때문에 여러 차례 탄핵을 받아 파직을 당했다. 한때는 당시의 집권 세력인 대북파의 일원으로 활동했으나 마지막에는 역적모의를 주도했다는 죄목으로 참형에 처하게 됐다.

하지만 그는 조정에서 관직 생활을 하는 동안 국가 재정 정비를 위해서는 정부 기구 통폐합을 해 쓸데없는 기구 및 관료를 없애야 한다고 주장하는가 하면.. 외부로부터 침략을 당한 역사적인 원인과 지정학적인 조건을 분석하고 국경의 지형을 관찰한 것을 바탕으로 여진족의 침입의 예견한 뒤 그에 대한 대비책 마련을 촉구하는 한편, 조선의 국방력 강화를 위해서는 양반과 천인을 막론하고 군에 예속시켜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기도 했다.

하지만 이렇게 정치적 주장이 파격적이기도 했거니와 평소 생활에서도 기생과 놀거나 승려와 교유하는 등 유교 규범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분방한 행동을 하여 그가 키운 적이 많았기에 관직에 있는 동안 여섯 차례나 파직을 당했고, 마지막 파직을 전후해 <성소부부고>(1611), <한정록>(1618)등 많은 작품을 저작하였다. 가장 널리 알려진 <홍길동전>역시 이 시기인 1612년경 저술된 것으로 추측된다.

결국, 말년에 당쟁의 회오리에 휘말려 인목대비 폐모론에 앞장서다가 거사 계획이 탄로나 1618년 음력 8월 24일.. 저잣거리에서 사지가 잘리는 극형인 능지처참을 받고 쉰 살의 길지 않은 생을 마감했다.





덧글

  • 어릿광대 2010/02/24 19:23 # 답글

    그러고보니 kbs프라임에서 천둥소리 방영해줘서 봤는데 마지막회에서 광해군과 허균의 마음속대화(?)가 인상적이었죠
    kbs2에서 했을때는 가끔가다 봤는데 그게 지금 그렇게 후회되더라고요;;
  • 엠엘강호 2010/02/24 19:30 #

    네.. 저도 작년 초인가 재작년인가 kbsprime에서 닥본사했던 사극이었습니다. ㅎ 거기서 광해군 지금은 작고하신 김주승씨와 허균의 최재성 그리고 허균의 스승 이달 정동환 선생, 허난설헌 하다솜등이 인상적이었죠.. 마지막회도 그런 그림이었던것 같은데.. 암튼, 제 생각에는 허균은 불꽃처럼 살다가 남자라는 느낌이 많습니다. ㅎ
  • 초효 2010/02/24 20:24 # 답글

    우리나라 천주교신자 1호십니다.(영세는 못 받은 모양이지만...)
  • 엠엘강호 2010/02/24 20:32 #

    시대상으로 보면 그렇겠죠.. 사극 '천둥소리'에서도 지인들과 골방에 모여서 막 설파하더군요..ㅎ
  • 일국지 2010/02/26 08:42 # 삭제 답글


    따지면 홍길동전의 배경을 조선시대 최고의 태평성대로 알려진 '세종시대'로 잡은 것도 파격이라면 파격이 아닐까요(...) 실제 홍길동은 조선시대 최악의 임금으로 알려진 연산군 시대 때 활동한 인물인데 말입니다.

    허균의 반역설에 대해서도 여러가지 말이 많던데 말입니다(...)
  • 엠엘강호 2010/02/26 09:46 #

    네.. 맞습니다. 이야기의 배경은 세종시대이고.. 실제 홍길동은 연산군때 강도행각을 벌인 인물로 처형됐다고 조선왕조실록에 기록이 되어 있죠.. 허균의 반역설은 서자 출신등과 함께 한게 화근이 되지 않나 싶습니다. 실제 그들이 인목대비 폐모론을 앞장섰으니 말이죠..
  • 이준님 2010/02/26 15:24 # 답글

    1. 실제 홍길동은 아시다시피 연산군 연간의 도둑이지요. 일설에는 "홍길동은 잡았던 기록은 있는데 처형된 기록은 부실하니 탈출해서 오끼나와에 갔다.."고 하는데 연산의 유쾌한 행각상 박살은 기본이겠지요.(신봉승 선생의 소설에는 능지처참+ 미세 분해처리되서 사라집니다. --;;) 하기야 신봉승 선생의 소설에는 연산의 서모 귀인들을 나체 토막살인하는 것도 리얼하게 그리니까요. 덜덜덜

    2. 허균은 천주교 신자 1위라는 측면이 너무 강조되었고 이단아라는 점이 너무 강조되었습니다만 인목대비 관련 사건때 보면 대단히 추한 모습도 꽤나 보여주지요. 역모도 역모가 아니라는 정치적 음모라는 설도 나올 정도였습니다. 실록 자체에서도 도깨비니 귀신이나 운운 이야기까지 나올 정도로 극단적인 비난을 받았습니다.(우리식으로 말하면 공식 역사서에 정치인 아무개 개XX 인간말종. 개종자.. 이런 칭호를 받는거나 같습니다.)

    3. 80년대 드라마 조선왕조 5백년에서는 수사반장 악역 전문배우인 김주영씨가 허균을 맡았습니다. 이 "허균"은 임진왜란때부터 활약하는 걸로 그리는데 왜란의 참화에서 가족을 잃고 사회체제에 불만을 가져서 임채무 강항과 함께 사회변혁을 꿈꾸는 쾌남아로 나오지요. 후속작인 회천문(이희도 광해군에 유인촌 인조가 나오는)이 외압으로 조기 종영되는 바람에 허균의 활약이 이후에는 흐지부지 되었지만요.
  • 엠엘강호 2010/02/26 15:46 #

    하지만 여기 작품해설에서 실존 인물 홍길동의 처형기록이 있다고 언급합니다. 내용인즉.. 형조에서 아뢰기를, "백정인 춘재, 영부, 길동 등이 강화의 민가를 위협하여 강도질한 죄는 곧바로 사형에 처해 마땅합니다."하니 그대로 따랐다. - 조선왕조실록, 성종 1년 7월

    허균에 인목대비 폐비건은 주체적보다는 서자들과 끼어든 느낌으로 정치적 음모설이 나올만 하겠죠.. 조선왕조 오백년에서도 나왔군요.. 뭐.. 허균 정도면 안나올 수가 없겠죠.. 전 '천둥소리'에서 최재성이 각인되어 있어서요.. ㅎ
  • 곧은나무 2010/02/27 21:27 #

    성종 1년에 사형 당한 길동이 연산군 시절에 활동할 수는 없겠죠.
  • 엠엘강호 2010/02/27 21:59 #

    아.. 그렇게 되네요..ㅎ 그런데, 연산군때 기록도 있는데.. 제가 지금 책이 없어서 참고해서 적을 수가 없네요.. 암튼, 연산군 연간에 도적은 맞습니다. 성종 기록을 제가 잘못 적을 수도 있고요..
  • 곧은나무 2010/02/28 00:12 #

    실록에는 잡힌 기록은 있으나, 죽은 기록은 없는 게 맞습니다.

    인용하신 기록도 성종 1년에 나오는 기록이 맞고요.

    그러니까 전혀 다른 사람에 대한 기록이죠.

    연산군 시절 홍길동의 활동 무대도 강화도는 아니었구요.
  • 일국지 2010/03/10 15:50 # 삭제 답글


    지금 보니까 홍길동이 단순힌 도적치고는 카리스마가 있었던 모양이네요.

    당상관 차림의 관복을 입고 당당하게 관아로 들어갔으며 그 위세가 어찌나 대단했던지 고을 수령조차도 고개를 숙이고 맞이했다고 합니다.

    다만 의적하고는 거리가 먼 인물이었는지 선조시대 전까지만 해도 '이런 홍길동 같은 놈!'이란 욕까지 있었던 모양이군요(...)

  • 엠엘강호 2010/03/10 16:15 #

    단순이 도적, 의적뿐만이 아니라 허균의 이상실현의 자화상이자 아바타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즉, 그를 통해서 당시 조선시대에 대한 여러가지 비판의식이 충분히 녹아든 작품이라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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