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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진 러시아 대문호 '이반 투르게네프' ☞ 서양고전들



위 사진만 보면 얼핏 톨스토이처럼 보인다. 저 수염과 눈빛 포스때문에.. 물론 톨스토이 작품을 안 읽어봤더라도 우리는 그가 대문호라는 것은 안다. 학창시절 수험으로 배웠고 러시아의 대문호하면 톨스토이와 함께 도스토옙스키를 뽑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 둘보다 먼저 태어난 선배 작가가 있으니 바로 '이반 세르게예비치 투르게네프(Ivan Sergeyevich Turgenev, 1818~1883)'다.

나이를 비교해 보면은 톨스토이 1828년생, 도스토옙스키 1821년생, 투르게네프 1818년생으로 톨스토이보다 10살, 도스토옙스키보다 3살 많은 투르게네프다. 사실 그를 몰랐다. 하지만 이번 펭귄클래식에서 그의 유명한 작품 '첫사랑'을 읽으며 그를 알게됐는데 정리해 보면 이렇다.

1818년 모스크바에서 남서쪽으로 3백 마일 떨어진 아룔 현 출생으로, 포악하고 전제적이고 부유한 지주였던 어머니 밑에서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한마디로 어머니의 압제속에서 지냈지만 그래도 어머니는 아들 투르게네프를 사랑했다. 1827년에 가족 전체가 모스크바로 이주한 후 페테르부르크 대학에서 철학을 공부했고, 열여섯 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그의 아버지에 대한 추억은 아버지는 내 교육에는 전혀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지만, 한번도 나를 무시한 적은 없었다. 그는 나의 자유를 존중해 주었다고 회상한다.

열아홉 살 때 첫 번째 시집을 출간했으며, 참된 지식의 원천을 찾아 유럽에서 공부하고자 베를린 대학으로 떠났지만, 2년 후 다시 러시아로 돌아와서 모스크바 대학에서 학위를 받았다. 이렇게 유능한 상류층 자제가 받을 수 있는 전통적인 교육을 받으며 그는 자신을 서구주의자로 표명했고 낭만적 독일 이상주의에 흠뻑 취하며 러시아는 반드시 서유럽을 배워야 한다고 설파하기도 했다.

그래서 후에 그의 작품에는 서구의 자유주의 사상과 휴머니즘이 조화롭게 반영되어 있으며 그런 바탕은 유럽 여행에서 돌아오면서 그는 페테르부르크의 상류사회에서 멋쟁이 신사로, 이탈리아 풍과 바이런 풍의 주제를 다룬 낭만주의 이류 시인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즉, 폼이란 폼은 다 잡은 스타일..ㅎ 

암튼, 본격적으로 1840년대 투르게네프가 글을 쓰기 시작할 때는 아직 러시아 산문에서 이야기하기와 소설쓰기의 전통이 확립되지 않은 시기였고, 그는 이 전통의 놀라운 창시자이자 개혁자가 되었다. 물론 그 전에 뛰어난 운문을 선보인 '푸시킨'과 시적 환상에 사실주의를 투입시킨 '고골'이 있었다. 하지만 투르게네프는 좀 더 고전적이고 간결했다는 평이다. 이런 바탕은 어린 시절부터 객관적인 관찰자로 자라왔고, 무엇보다도 그런 관점에서 그의 작품은 구체화된 것이다. 대표작 <첫사랑>처럼 말이다.

이후 1843년 스페인 출신 가수였던 폴리나 가르시아 비아르도와 사랑에 빠졌는데, 유부녀였는데도 그녀와 그녀의 남편을 좇아 파리까지 따라가 그녀의 연인이 되었고 그녀와의 관계는 그의 일생에 큰 영향을 미쳤다. 특히 투르게네프는 비아르도의 유럽 순회공연을 쫓아다니며 꽤 오랫동안 파리에서 지내면서 그녀는 물론 그녀의 남편과 ‘가족의 친구’로 함께 지냈다.

그래서 파리의 문학 서클에서 그는 유명인사였고, 플로베르와 공쿠르 형제는 그의 친구였으며, 옥스퍼드 대학은 그에게 명예학위까지 수여했다. 하지만 이렇게 그녀때문에 푹빠져버린 외국 생활은 오랫동안 러시아를 버렸고 당시 러시아 비평가들은 이 사건을 절대로 용서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다보니 그는 러시아에서 추방되어 오랜 세월을 프랑스와 독일에서 보냈고 산업화 시기의 귀족이자 스포츠를 즐기는 남성, 그리고 시인으로서 독자들을 매료시키며 영국, 프랑스, 독일, 스페인 문학에 대한 광대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 또한 그는 괴테를 숭배했고 셰익스피어의 희곡을 번역하기도 했으며, 헨리 제임스는 '그의 훌륭한 지성'에 매료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세기 말이 다가오면서 톨스토이와 도스토옙스키라는 위대한 문학가들이 유럽에서 대단한 명성을 얻으면서 그의 명성을 대체하기 시작하자 그는 평가절하 되기도 했다.

하지만 1856년 이후에는 대부분 외국에서 생활하면서 유럽에서 큰 명성을 얻은 첫 번째 러시아 작가가 되었다. 특히 투르게네프는 러시아 산문의 거장 이상이었다. 동시에 비록 정치적인 견해를 확실히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스스로를 비정치적이라고 표현하기는 했지만, 그래서 긴급한 사회적 요구를 다루기보다는 그는 강한 신념 또는 도덕관을 갖으며 오래전에 사라진 전통의 러시아를 부활시키는 작품들을 선보였다. 그의 집필한 유명한 작품들은 열거해 보면 이렇다.

그가 집필한 여섯 권의 소설, 『루딘』(1856), 『귀족의 보금자리』(1859), 『전야』(1860), 『아버지와 아들』(1862), 『연기』(1867), 『처녀지』(1877)는 1830년대부터 1870년대 사이의 러시아인들의 삶을 투영하고 있다. 문학 에세이 및 회고록 이외에도 『시골에서의 한 달』과 같은 희곡, 단편소설, 중편소설 등을 썼다. 그중에서도 중편소설 『사냥꾼의 수기』와 절정기에 쓴 『첫사랑』(1860)은 가장 잘 알려진 작품이다. 1883년 파리 교외에서 병사했으며, 러시아에 묻혔다.  






덧글

  • 2ㄷ12 2010/03/10 11:08 # 삭제 답글

    당시에는 투르게네프를 더 춰줬습니다. 그러나 똘쓰또이와 도스토예프스키의 문학이 인류사 내내 다루어질 주제를 가졌지만 투르게네프는 당대한정 이였죠, 뿌쉬킨이나 레르몬도프 처럼 러시아 문학의 토대가 될수있는 시기도 아니었고 고골처럼 부정적이고 소심한 인간상을 다루는 시대소설도 아니였죠. 시기도 나빴고 상대도 안좋았지만 생애내에서는 굉장한 문호로 평가받았고 도스토예프스키와는 비교가 안될정도 였다 하죠
  • 엠엘강호 2010/03/10 11:34 #

    그래서 지금은 잊혀진 대문호가 아닌가 싶네요. 특히 그는 당시 19세기 러시아의 투쟁적인 움직에서 대해서는 한켠에서 좀 물러나 소위 서구 물좀 먹으면서 리얼리티를 강조한 산문 형식의 소설등이 주로 나오며 예술의 자율성을 강조하고 인간의 정신과 감정을 연결하는 유동적인 특징이 있다는 평이더군요.. 특히 이런것은 그의 대표작 <첫사랑> 작품에 많이 드러나는데..

    암튼, 말씀처럼 후에 나온 두명의 대문호에 가려지기 됐지만.. 당시에 그가 개척한 산문 문학은 러시아는 물론 유럽에서 큰 명성을 날렸고.. 그것은 바로 한눈에 반한 여자때문에 파리로 무작정 날아가면서 시작된 외국생활에서 그의 글빨과 지성이 빛을 보며 명성을 얻은게 아닌가 싶습니다. ㅎ
  • 일국지 2010/03/10 15:32 # 삭제 답글


    유명한 예술가는 두가지 타입이 있다고 합니다. 생애 잠깐 명성을 떨치는 타입과 사후에 명성을 떨치는 타입... 이 분은 명백히 전자네요.

    따지면 그 유명한 '지킬박사와 하이드'란 소설도 엄밀히 말해 '도리안 그레이의 초상'이란 작품의 후배격인데도 사람들은 지킬박사와 하이드를 추억할 뿐, 누구도 도리안 그레이를 회상하지 않는 것과 비슷한 격이랄까요(....)

  • 엠엘강호 2010/03/10 16:23 #

    그렇죠.. 당시 명성을 떨쳤던 타입이죠.. 하지만 후세에는 톨스토이와 도스토옙스키만이.. 특히 그는 두 대문호와는 다르게 그저 쇼규모 미세호를 그린 화가로, 유행에 맞지 않는 순수예술가로 오해받았지만.. 투르게네프 또한 예술의 지론을 이렇게 펼쳤답니다. "예술은 모든 종류의 목적을 다 짊어지고 가서는 안되고, 예술이 없다면 사람은 살고 싶지 않았을 수 있으며, 예술은 항상 인간의 참된 삶을 살아갈 것이다." 암튼, 뭐.. 유명세라는 다 그런것이지요..ㅎ
  • 아.. 2010/03/10 15:43 # 삭제 답글

    레핀의 투르게네프 초상화네요. 예전에 러시아 거장전 할 때 보았습니다.
    레핀이 초상화를 그린 사람이라는 것밖에 알지 못했었는데,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
  • 엠엘강호 2010/03/10 16:28 #

    네.. 19세기말 러시아 최고의 리얼리즘 화가이자 톨스토이와 함께 러시아 국민들이 국보로 여기는 예술가인 '일리야 레핀'의 작품입니다. 그리고, 지금 읽고 있는 펭클의 '첫사랑' 표지 그림도 레핀의 작품으로 <여름풍경(1879)>인데.. 그 그림의 여자가 책속의 여자주인공 '지나이다'를 보는듯 아주 매혹적으로 딱이라는 생각입니다. ㅎ
  • 들꽃향기 2010/03/10 16:52 # 답글

    개인적으로 투르게네프는 고딩시절에 신선한 문체로 다가왔던 사람입니다. 일허게 읽게 되니 반갑네요 ^^

    그나저나 엠엘강호님 블로그가 링크가 되어있는줄 알았는데, 안되어 있더군요;; 그래서 한동안 글을 안쓰시나 했습니다.ㄷㄷㄷ;;;

    각설하고 뒤늦게나마 링크 신고 드립니다. ^^
  • 엠엘강호 2010/03/10 17:27 #

    아하.. 고딩시절에 접하셨다니 문학청년이었군요.. 전 그때 알지도 못했는데 지금에서야..ㅎ 암튼, <첫사랑> 읽고 있는데.. 확실히 고전은 고전이네요.. 일반 소설하고는 틀린게 운치와 문체가 느껴집니다. 그리고 저 그래도 매일 1-2개씩 계속 포스팅하는데.. 안쓰다뇨.. 전 이미 들꽃향기님 링크되어 있었는데.. 암튼.. 링크 감솨요.. ^^
  • 들꽃향기 2010/03/10 17:31 #

    아아 죄송합니다. 사실 이글루 다루는게 익숙하질 않아서 링크기능을 제대로 이용 못하고, 몇몇 분들의 블로그를 제대로 링크하질 못한게 있었습니다. 그 가운데에서 실수한 것 같네요 ^^;;

    여튼간에 죄송합니다. ^^ 앞으로 좀 더 조심해야겠군요 ㄷㄷ
  • 엠엘강호 2010/03/10 17:48 #

    아닙니다. 무슨 죄송까지야.. 주인장 마음인데요.. 괜찮습니다. 개의치 마세요..^^
  • 박혜연 2010/06/06 22:31 # 삭제 답글

    투르게네프의 일생을 보니 부유한집안에서 태어났지만 아버지는 몰락한귀족이었고 어머니는 대지주였는데 아버지가 결혼했을당시 겨우 20대중반이었고 어머니는 30대초반을 넘겼는데 그 어머니는 얼마나 성격이 포악하고 외모까지도 추악했으니 사이가 좋을수없었죠! 그러나 아버지는 아들의 교육에는 무관심했지만 대신 자유로운삶을 존중해주었고 어머니는 비록 포악하고 군주같은여성이지만 그나마 세아들의 교육에 대해서는 굉장히 관심을 가졌다고!
  • 엠엘강호 2010/06/07 18:57 #

    네.. 투르게네프의 어린 시절 환경에 대해서 자세히 언급해 주셨네요.. 특히 어머니가 잘나가던 지주 출신때문인지 어머니의 압제속에 그늘이 있었지만 교육에 매진했고, 아버지는 그를 존중하는등 두 부모가 아들을 사랑했던거 맞습니다만.. 그늘을 벗어난 이후 성인이 된 투르게네프가 유럽으로 돌아다니는등 사고의 자유를 좇은 삶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 말도 안돼 2011/07/14 22:09 # 삭제 답글

    갑자기 항의하고 싶어지는군요.
    일국지님, 뚜르게네프가 무슨 생시에 잠깐 명성을 떨치는 작가인가요? 근거를 대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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