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드센스 본문 상단 광고

 

링컨의 집권시절 미공개 사진과 '암살의 추억' ☞ 서양고전들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밑바닥에서 시작해 미국 대통령에 올라 노예 해방을 이끈 입지전적인 인물 에이브러햄 링컨.. 그의 "유년 시절은 범상치 않았다"는 포스팅으로 이미 고난과 역경을 뒤돌아보며 아버지에게서는 이야기꾼의 자질을 어머니에게서는 교육적 소양을 키우며 자란 링컨.. 물론, 그 속에서 억압된 노동의 가치속에 새로운 이념 형성에 도움을 준 것을 예상할 수 있고, 이것은 20대에 정치에 입문하고 대통령이 되면서 노예 해방을 이끌며 미국을 하나로 이끄는 전초였음에는 이견이 없다.

이에 그가 대통령 4년여간 집권시절을(1861~1865) 사진을 통해서 그의 업적?을 간단히 정리해 보고자 한다. 물론, 해당 책 <뱀파이어 헌터, 에이브러햄 링컨>에 수록된 사진들로 모두 진짜 기록들이다. 사진 출처의 주소는 이와 같다.  http://www.al-vh.com/xe/?mid=image




링컨은 생전에 네 명의 아들을 두었다. 먼저, 링컨의 첫사랑은 '앤'이었는데 그녀는 병에 걸려 죽어서 링컨은 가슴 아파했고.. 그의 정식 부인은 그의 부인은 '메리 토드'로 1842년에 결혼했다. 그들은 연령순으로 로버트, 에디(에드워드), 윌리, 태드를 낳았다. 앞에 로버트와 에디는 몇년 간격으로 낳았고.. 뒤에 두명은 세월이 지난 뒤에 낳았다. 그런데, 둘째 에디가 결핵으로 세살때 죽고 만다. 얼마 살지 못한 둘째 아들의 죽음앞에 두 부모는 망연자실한다. 하지만 이런 자식들의 불운은 계속 된다.

셋째 아들 윌리가 10살 되던 해 1862년.. 링컨의 집권시절로 남북전쟁중에 그가 가장 아끼고 자신을 제일 많이 닮은 아들 윌리는 장티푸스에 걸려 세상을 떠났다. 이때 메리는 식음을 전폐하고 링컨은 한동안 집무실에서 두문불출했다고 한다. 그리고 링컨이 암살되고(1865년 4월) 6년후 1871년 막내아들 태드도 18살의 꽃다운 나이로 세상을 뜬다. 그의 시신은 스프링필드 묘역에 아버지 링컨과 두 형이었던 윌리와 에디켵에 묻힌다. 이후 이들 어머니 메리는 1882년 63세의 나이로 링컨 묘역에 들어가며 사랑하는 세 아들 켵에 나란히 눕게 된다.

그렇다면 남은 자식은 바로 하나.. 맏아들 '로버트 링컨'.. 그만이 유일하게 남아 20세기를 맞이했고, 그는 결혼해서 자녀 세 명을 낳고 대통령 두 명(제임스 가필드, 체스터 A. 아서)을 모셨다. 그는 특히 아서 내각에서 전쟁 장관으로 일하고, 1926년 버톤트의 자택에서 향년 82세로 만수를 누려 평화로이 눈을 감았다. 이렇게 링컨의 네 명의 자식은 링컨이 살아 생전 두 아들을 먼저 보냈고, 사후에는 태드와 부인 메리가 죽은 가족의 생존사였다.



이 장면은 남북 전쟁이 한창이던중.. 당시 분명히 북부 연합이 전세가 유리함에도 불구하고 남부군의 '로버트 E. 리' 장군 부대를 짓쳐 들어가 일망타진 하지못한 '조지 B. 맥클레런' 장군에게 링컨이 막사로 찾아와 담소?를 나누는 장면이다. 사실, 학벌과 배경이 좋은 맥클레런은 링컨을 깔보고 무시했던 사람이었는데.. 여기서 링컨은 한방 날린다. "당신 뭐하는 사람이야.. 왜 전쟁을 오래 끌려고 하는거지.. 죽는다.. 조심해라.." 으름장을 놓았다는 후문이다. ㅎ 그리고 한달 후 맥클레런은 바로 직위 해제됐다.


링컨이 뱀파이어 헌터로서 활약을 쓴 판타지 소설답게.. 남북전쟁의 중심에도 당시 뱀파이어들의 활약이 있었다고 저자는 믿고 있다.ㅎ 특히 남부군에는 뱀파이어가 그들과 협약해 북부군에 맞서는 전투씬이 간혹 나오는데 영화같은 그림이 아닐 수 없다. 어찌됐든 북부 연합의 승리로 끝난 남북 전쟁이었지만.. 그 전쟁의 참상은 위처럼 이로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잔혹했음은 두말하면 잔소리다. 이 책에서도 그런 참상이 리얼하게 나온다. 포탄의 포화속에서 두개골이 빠개지고 으스러지고 갈라지는등 말이다.



그 유명한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연설이 나온 1863년 11월 19일 게티스버그 연설이다. 이때 링컨은 3일 동안 계속된 전투에서 목숨 바쳐 북부연맹의 승리를 이끌어낸 8천여명 병사들의 넋을 기리며 추모 연설을 이곳 게스티버그에서 했다. 사진은 연설이 끝난 후 링컨의 절친이자 오른팔이었던 '워드 힐 라몬'이 경호를 맡았는데.. 혼자 경호를 했다는 점에서도 놀랍지만 라몬은 이때 받았던 엄청난 스트레스로 워싱턴으로 돌아간 뒤 링컨에게 경호직을 사임하겠다 말했다고 한다. ㅎ



바로 이 포스팅에서 말하고자 하는 '암살의 추억'의 주인공이자 링컨을 암살한 범인 '존 윌크스 부스'다. 사진에서는 좌측에 모자쓴 인물이다. 옆에 서 있는 사람은 바로 링컨의 정적이자 남부 연합의 수장으로 '제퍼슨 데이비스'이다. 특히 데이비스는 남부에서 가장 뛰어난 업적을 남긴 정치가로 그는 웨스트포인트를 졸업하고 멕시코 전쟁에서 용맹을 떨쳤으며..

미시시피주 지사와 프랭클린 피어스 내각의 장관을 역임하고, 상원의원을 두 번씩이나 지낸 굵직한 거물이었다. 물론, 그는 노예제를 노골적으로 지지하는 인물로서 전쟁 장관이었던 적도 있기 때문에, 남부를 이끌기에 안성맞춤인 인물이었다. 그리고, 이 사진은 1863년경 리치몬드에서 촬영되었다고 하는데..

어찌해서 둘이 같이 찍게 된 것은 데이비스의 전력을 보듯이 지레 짐작할 수 있음이다. 먼저, 링컨의 암살범 '존 윌크스 부스'(이하 부스).. 그는 정치인도 군인도 아닌 일종의 딴따라 연극 배우 출신이었고, 당시 포드 극장에서 잘 나가는 인기 만점의 배우이자 꽃미남의 섹시가이였다고 한다. 저 모습이 당시에는 섹시가이였다니..



그런데, 이 사람은 어째서 링컨을 암살하게 된 것일까.. 책에서도 자세히 언급을 안하고 심지어 그와 같이 암살을 모의했던 동료들 헤롤드와 파월, 애처롯도 몰랐다고 한다. 하지만 다큐등에서는 링컨이 남북전쟁의 승리로 흑인들에게 참정권을 일부 허용한다는 방침에 그가 발끈했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단지 그런 이유만이었을까..

암튼, 자신의 동료들과 남북전쟁 승리 자축연으로 포드 극장에 링컨 내외가 공연을 보러 온다는 소식을 듣고 암살을 모의한다. 그러면서 자신의 동료들은 각자 국무장관 수어드와 부통령 앤드루 존스까지 암살을 모의하지만 이것은 실패로 돌아간다.

하지만, 귀빈석에서 <우리 미국인 사촌>이라는 연극을 즐겁게 보고 있던 링컨을.. 부스는 뒤에서 총탄을 날리고 만다. 때로 바야흐로 1865년 4월 14일.. 하지만 링컨은 곧바로 죽지 않았고 23살의 젊은 군의관 '찰스 릴'이 매우 신중하고 침착하게 응급으로 대통령을 모시며 치료했다. 그런데, 링컨은 후두부를 관통한 치명상으로 생과 사를 오가며 끝내 일어나지 못하고.. 9시간을 버텼지만 마침내 숨을 거두고 만다. 사망시각은 공식적으로 1865년 4월 15일 오전 7시 22분..



이렇게 19세기 초 중반의 역사를 관통하며 두번째로 17대 대통령으로 당선되고 오개월 후 미국을 하나로 묶으려는 노력은 꽃이 만발하기도 전에 이렇게 예기치않게 '미국 역사상 최초의 대통령 암살'이라는 족적을 남기게 되었다. 이때 총살 직후 부스는 라틴어로 "Sic semper tyrannis!"라 외쳤다고 하는데.. 뜻은 "독재자의 끝은 이렇게 되기 마련이다!'라고 한다. 이후 부스는 미국 전역에 긴급 수배되었고, 근 2주일 가까이 북부군의 추격을 피해다녔지만 어느 농가의 헛간에서 목에 관통상을 입고 사망했다고 한다.

이후 미국 전역으로 링컨의 거대한 장례식이 열렸고, 링컨의 장례열차는 위성턴을 출발해서 그의 정치적 고향인 스프링필드로 가는 여정동안 13일에 걸쳐 북부의 이곳저곳을 순례했으며 열차의 이동 거리는 장장 1,700마일에 달했다고 한다. 특히 장례열차는 이동 중에 미리 지정된 도시마다 장례식을 치렀으며 필라델피아에서는 30만 명의 군중이 모여들었고, 뉴욕에서는 50만 명의 시민들이 운구 행렬을 지켜보며 그중에는 당시 여섯 살의 테오도어 루즈벨트(미국의 26대 대통령)도 포함되어 있었다.

특히 시카고에서는 "선(善)의 수호자, 정의의 순교자"라는 글자가 아로 새겨진 제단을 설치하고 그 위에 링컨의 시신을 전시했는데., 수 십만 명의 시민들이 제단 주위에 모여들었다. 그는 이렇게 예수로 빗대면서 바로 '속세의 성자'로 추앙받았다. 결국 링컨의 장례식은 미국 시민 2천만 명이 선로 변에서 장례열차를 지켜보았으며, 백만 명 이상의 시민들이 관 속의 시신을 직접 알현했다고 한다.

그리고 링컨은 1865년 5월 4일 백마 여섯 마리가 끄는 마차에 실려 스프링필드 근교의 오크리지 묘지에 묻혔다. 그곳에 자신의 두 아들 에디와 윌리와 함께 말이다. 그런데, 남북전쟁 후 링컨의 시신을 탈취하려는 시도가 여러번 있었고, 다행히 모두 미수에 그쳤지만, 1901년 맏아들 로버트의 요청으로 링컨의 관은 시멘트로 봉해지면서 도굴꾼들이 링컨의 시신을 훔치는 것은 불가능해졌으니..

영원한 안식을 누리게 된 것일까.. 링컨 스스로 자신의 삶을 지배해온 어머니에 대한 유년 시절의 상념과 하느님에 대한 은총을 매사 새겼듯이 말이다.
 어찌됐든 그가 만약에 암살당하지 않고 계속 17대 대통령직을 수행했다면.. 또 남북전쟁 후 미국의 역사가 어떻게 바뀌었을지 모르는 일이다. 그래서, 이 책에서는 그는 다시 부활한다고 한다. 후속편에서 말이다.ㅎ







덧글

  • 2010/05/18 16:07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엠엘강호 2010/05/18 18:07 #

    네.. 반대라뇨.. 저도 학벌좋고 배경좋은 맥클레런 장군이 링컨을 깔보고 무시했다고 썼는데.. 잘못 읽으신데 한데요.. ㅎ 암튼, 이 장군이 민주당 지지자였군요.. 후에 대통령 후보로 나서고 말이죠.. 그런데, 전장에서 그런 추태까지 보일 정도로 링컨을 개무시하다니 대단했군요.. 그만큼 그의 위치와 활약이 있었음인데.. 사실 그 '앤티텀 크리크' 전투가 중요하긴 했습니다.

    패주하는 남부군을 적극적으로 추격하지 않았으니까요.. 그런데, 그것이 아나콘다 계획을 버리는 결과였고.. 조기 종전의 길이었다는 반증이었다. 암튼, 맥클레런 장군이 똥배짱으로 버틴 전투 이후에 링컨은 "반란주(rebel states)로 지정된 모든 지역에서 노예들을 해방한다."고 전격 선언했는데.. 여러모로 중요한 사건이자 인물이었네요.. 음...
  • 2010/05/18 16:19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엠엘강호 2010/05/18 18:29 #

    네.. 맏아들 로버트는 사업가이자 변호사로 나름 성공의 길을 가며 80대까지 길게 살았죠.. 그런데, 모시는 대통령들의 암살 현장에 모두 있었다. 가필드는 암살이지만 아서도 암살이었나요.. 찾아보니 아니던데.. 그냥 역사상 3번째로 뚱뚱한 대통령이었다고..

    암튼, 아버지 링컨을 그렇게 보내고나서 아들은 많이 힘들었겠지만.. 대체역사 소설은 좀 깨게 그렸군요.. 그리고 링컨과 부인 메리 사이도 사실 안 좋은 것으로 비춰지더군요.. 특히 부인 메리는 정신병 증세가 있었다고 하던데.. 아들들을 연거푸 잃기 시작하면서 말이죠.. 부부 사이도 그렇고요..

    그나저나, 링컨의 암살 현장에 있던 사람들의 기이한 괴담같은 운명이라.. 밤에는 읽지 못할 정도로 ㄷㄷ.. 찾아봐야겠군요.. ㅎ 그리고 이 포스팅의 주인공 부스 이넘.. 그런데, 저 사진이 합성이다. 데이비스 공식 사진에 부스를 붙인 거라고요.. 음.. 그런데, 부스는 정말 한낱 보잘것 없는 그런 딴따라였는데 여기서도 원대한 꿈을 얘기하듯 과대망상이 있었죠..

    암튼, 링컨의 암살설에 데이비스와 음모설이 있었지만 그냥 감옥에서 보내고 집에 갔다.. 그런데, 링컨의 정적이면서도 당시 링컨 내각의 국방장관을 맡았던 '애드윈 스탠턴'이 배후라는 설도 나올만 하겠는데요.. 링컨을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긴팔원숭이'라 힐난했던 그였는데.. 그런 이때 링컨 죽음의 부고를 급하게 알린자도 스탠턴이었죠.. 뭔가 있지 않았을까요.. ㅎ

    그리고 뭐.. 역사속 반역의 무리들이 마지막 생을 마감하기 전에 외치는 그런 유의 말들이겠죠.. 물론, 당시 우왕좌왕한 상황에서 그게 들릴지도 만무하지만.. 뭐.. 그래도 좀 더 극적으로 그릴려는 포장일 수도 있겠죠.. ㅎ 암튼, 링컨의 예기치 않은 암살은 어찌보면 그를 더욱더 위인으로 만들어준 효과가 있지 않았나 싶습니다.
  • 2010/05/18 18:29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엠엘강호 2010/05/18 18:47 #

    음.. 존 부스 이넘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유언을 남기고 죽다니 아이러니 하군요.. 음모론의 산실답군요..ㅎ 그나저나 '불고지죄'라면 이주일간 도망다닌 부스를 치료해준 의사도 있었고.. 특히 여기 책에서도 그 하숙집 여주인이 '메리 서랫'으로 그녀는 남부 연합의 열렬한 지지자였고, 부스와는 열네살 차이에도 내연관계에 있었다고 합니다.

    물론, 그녀가 제공한 하숙집과 선술집에서 암살을 모의하고 말이죠.. 부스에 대한 사랑이 파멸로 끝나 3개월후 교수형에 처해졌다고 여기서도 언급하는데.. 미국 행형상 최초로 사형선고를 받고 처형된 여자였군요..

    그나저나 링컨 암살과 그후 수사과정을 주제로 한 영화가 로버트 레드포드 주연이 아니라 감독으로 연출한 영화가 나온다. 기대되는군요.. 여기 이 책 '뱀헌링컨'은 현재 '색채의 마술사'라 불리는 팀 버튼이 영화화 하기로 했는데.. 나오면 볼 만 하겠네요.. 뱀파이어 헌터 링컨의 포스를.. ㅎ
  • 2010/05/18 18:36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엠엘강호 2010/05/18 18:59 #

    로버트가 아버지 사후에 두 대통령 모신게.. 20대 가필드와 21대 아서만 언급이 됐는데.. 25대 매킨리 대통령도 있었군요.. 암튼, 아버지 링컨의 암살 트라우마가 참 길게도 가네요.. 유일하게 살아남은 아들이라는 점 때문에 암살의 악령이 따라다녔을지도 모르죠.. >.< 이래저래, 암울한 미국의 대통령 암살史네요.. 그 유명한 1963년 존 F. 케네디까지 말이죠..

댓글 입력 영역


통계 위젯 (화이트)

17114
1024
12003760

예스24 영화7기 엠블럼

리얼센스 세로 긴 광고

2011 이글루스 TOP 100

2011알라딘 서재의달인

구글 애드센스 긴 거

yes24 영화 블로그 위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