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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언론이 백인 남성 교수에게 유독 약한 이유? ☞ 시사와사회

이런 전제도 어찌보면 언론의 저급한 받아쓰기 저널리즘(stenographic journalism, 논쟁을 그대로 뉴스화할 뿐, 각 논쟁에 대한 사실 검증이나 비판을 게을리 하는 언론의 관행을 비판하면서 나온 말)에 기반하며 '사대주의'같은 대외의존적 성향을 띄는 언론들의 작태에서 비롯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가 싶다. 그래서 여기 강호가 얼마전 읽은 <9시의 거짓말>에서 여러 주제중 이런 아젠다를 던지며 그 이유에 대한 해석이 있어 강호식으로 재구성해서 정리해 보았다. 한번 읽어보며 고찰해 보자.

우선 결과론적으로 말한다면-(부끄럽지만 그대로 인정할 수 밖에 없는)-한국 언론은 백인 남성, 이들 지식인의 말을 거의 '숭상'하는 경향이 뚜렷하다는 것이다. '숭상' 말 그대로 떠받들어 모신다는 건데.. 왜 신문이나 방송에서 외국의 대석학이라고 해서 초빙한 사람들의 면면을 보시라.. 그 사람들 가운데 혹시 혹인 남성을 보신적이 있는가? 백인 여성 교수도 사실 흔지 않다. 그만큼 백인, 남성, 지식인은 한국 사회에서는 '우상'에 가까운 존재인 것이다. 거디가다 하버드나 예일대 등의 간판을 달고 있으면 금상첨화요, 그 타고난 종자와 학벌이 곧 '명성'이 되어 우리 사회의 한 자리를 크게 지배하고 있다.

그것은 한국 언론들이 이들의 말을 매우 비중있게 다루면서 뉴스 소비자들인 대중들도 그런 기사와 소식에 눈이 가게 만드는 것이다. 정말 강호조차도 그러니 이 부분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어느 백인 교수 석학이 올해의 지구촌 화두는 무엇이고, 지구촌의 미래를 조망하는 세계의 정치사회 문제와 환경 문제를 거론할때 그들의 말은 신의 계시가 되어 우리네 생각을 지배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언론들은 이들의 말을 무작정 인용만 해서 전달하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인용이 아니라 인용하는 태도에 있다. 배워서 올바로 적용해 보려는 노력은 고사하고, '맹목적인 추종'만이 있을 뿐이다.



백인 남성 지식인들은 정말 우월하다?!

예를들어, 서울대학교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은 한국인 대학교수와 하버드 대학을 나와 노벨 경제학상을 탄 시카고 대학의 백인 남성 교수 가운데 누가 더 한국 경제에 정통하다고 볼 수 있을까? 정말 시카고 대학의 백인 교수가 한국인 교수보다 한국 경제에 대해 훨씬 많은, 또 깊은 고민을 했을거라 믿어 의심치 말아야 하는 것일까? 우리나라에 살고 있는 한국인 교수가 고민한 양의 백만분의 1이라도 고민했을까? 이런 단순한 의문들, 물론 고민의 양이 아니라 질의 문제이겠지만 그 질은 또 무엇으로 증명할 수 있을까? 세계적 명문 대학의 학위로? 전제와 가설에 바탕을 둔 이룬으로? 노벨 경제학상으로? 아니면 그저 백인 남성의 생김새로? 이렇게 이런 조금은 찌질해? 보이는 고민들은 조금만 생각해보면 쏟아지는 의문이다. 즉 '왜 유독 그들이어야만 하는가?' 말이다.

그런데 바다건너온 미국이나 유럽의 백인, 남성, 지식인 가운데 이런 저명한 학자들, 그래서 우리 신문과 방송에 꼭 1년에 한 번씩은 초정하는 세계적 지식인들은 1년에 강의와 컨설팅만으로도 수백억 원을 넘게 번다고 한다. 정말 어마어마한 돈이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런 사람들이 나오는 'XX신문사 주최 포럼' 참석차 한국에서 1박 2일간 체류하며 연설한 내용을 보면 사실은 일주일 전 홍콩, 한 달 전 뉴욕에서 했던 말을 다시 반복하는 경우가 태반이라고 한다. 즉 새롭게 한국 상황에 맞게 나온 이야기가 아니다. 그들은 연설문대로 그저 읊고 전달했을 뿐이다. 12시간 넘게 비행기를 타고와 시차 적응도 안 된 나이 든 백인 남성 교수가 자신의 한정된 경험을 바탕으로 철저히 자신들의 사회에 맞추어진 가설과 이론에 따라 한국 경제를 비판하는 것이.. 과연 우리에게 무슨 큰 의미가 있는지 반문하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다.

즉 어떤 이론이나 사상과 철학도 능동적, 비판적으로 수용하지 못한다면 모두 헛소리일뿐이자 공염불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그 백인 남성 지식인이 어떤 특별한 예지능력을 가진 것도 아니요, 오히려 그들 상당수가 자신의 문화와 경제, 정치 체제가 우월하다는 생각에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고 자신들의 과거 경험만을 강조할 수 있다는 일종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한국의 언론들은 이름 난 백인, 남성, 지식인에 아주 제대로 숭상하다 못해 '환장'을 하며 그들의 말은 종종 신의 계시와도 같은 '권위적 언명'으로 천명되어 우리네 사회 지배적 언사로써 향유되고 있다는 점이다.



그들은 복화술사였다.

이러 행위를 언론사회학 의미론(Semantics)에서는 복화술(Ventriloquism)이라 설명한다. 여기서 복화술은 마치 자신속에 다른 사람의 영혼이 깃든 것처럼 웅얼거리는 것과 같이 점집에서 점쟁이가 마치 귀신 씌운 양 웅얼거리며, 그것을 신의 목소리라고 사기 치는 형태와 같은 것이다. 즉 사회학적으로는 우리의 운명을 좌지우지하는 거대한 복화술사들은 판사, 성직자, 지식인, 선생, 부모 등으로 그들은 마치 자신이 법, 신, 절대 지혜, 절대 선처럼 말한다며 명징하고 있다. 그리고 그런 복화술에 대중들은 심취돼 빠져들며 이런 기세는 한국 같은 나라에서는 기세가 더 등등해 우리네 심상까지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네 작금의 현실이 검찰의 말이 법이고, 정부의 발표는 한치의 의심의 여지가 없으며, 그에 대한 일체의 비판을 가하면 소위 '빨갱이'가 되버린 현상.. 그리고 그 빨갱이는 복화술사에 의해 중세시대에 '마녀 재판'처럼 단죄의 대상이 된다. 사실 중세시대 봉건사회의 복화술사들은 대개 인간으로서는 예측이 불가능한 미지의 영역, 즉 미래의 일에 관해 자신 있게 떠벌이는 수준이었지만 봉건사회에서 그들의 말은 바로 언론으로서 지엄한 하늘의 명령처럼 숭배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오늘날 외국의 백인 남성 지식인들은 복화술사로 변모돼 우리 사회에 메시지를 지엄하고도 지배적으로 던지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쪽의 폐단은 가령 감사원이 KBS의 정연주 전사장의 배임 혐의가 드러났다고 단언하면 언론은 의심의 여지없이 그를 배임죄를 저지른 범죄자로 규정한다. 또 검찰이 한명숙 전총리가 뇌물수수 혐으로 조사를 받아야 한다고 예단하면 언론에게 이는 곧 '사실'로 드러나게 된다. 이렇게 한국 언론이 떠받드는 존재들 '대통령, 검찰, 감사원, 법원, 교수, 백인 남성 지식인, 해외 유명 언론'등이 모두 현대의 복화술사에 점쟁이들인 것이다. 그런데 아무리 타고난 점쟁이로 소문났다고 할지라도 이런 점쟁이의 말은 매번 검증이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언론은 매번 그 권위를 의심하지 않고 오히려 그 권위를 이용해서 대중을 협박하려 든다는 사실이다. 아니 때로는 그들의 말을 슬쩍 바꿔치기하거나 짜집기해서 스스로의 정치적, 경제적 '이익의 물타기'를 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이들 즉 언론들이 대중을 소위 '가지고 놀' 방법은 많다. 다양한 인종, 다양한 정치 세력, 다양한 이익이 제각기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법적, 경제적, 문화적 토대를 갖춘 선진 민주 사회에 비해 한국 사회는 그 이질적 다양성(즉, 잡종성)이 크게 떨어진다는 것이다. 즉 한국의 대중은 비교적 단일하고, 균일한, 게다가 권위주의 문화에 익숙한 집단이라는 분석이다. 그래서 언론이 소위 '장난'을 치기에 용이한 조건을 갖추고 있다. 그리고 미국에서 언론학이나 커뮤니케이션을 공부하는 한국의 학생들은 이런 말을 가끔 한다고 한다.

한국은 참으로 매체 효과(midia effects)를 실험하기 좋은 곳이다. 미디어의 영향이 단시간에, 광범위하게, 또 비교적 균질적으로 나타나고, 게다가 큰 변이도 없다. 미디어가 대중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기는 최적이다.

이게 무슨 말일까? 어떻게보면 참 좋은 말처럼 들린다. 우리 대중들이 실험대상으로 최적화되어 좋다니 말이다. 그런데 자세히 아니 몇번 생각해보면 한국의 대중들에게 '맹목적 쏠림 현상'이 지배적으로 자주 나타난다는 말이 내포되어 있다. 하지만 그 말 속에는 '한국 대중은 멍청하고 바보다'라는 생각이 들어있음을 간파하게 된다. 그렇다. 소위 쪽팔리게 한국 사회의 대중들은 외국에서도 이렇게 홀대를 받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어찌하랴.. 백인 남성 지식인들 이른바 현대판 복화술사들이 무대에서 쏟아내는 언사들, 또 그것을 받아쓰기 저널리즘에 의해 그대로 퍼나르는 한국의 언론들, 또 그것을 비판적 견지하에 거르지 못하고 받아들이는 바보같은 대중들, 이 삼위일체는 아직도 진행중이고 우리 사회를 아직도 잠식하고 있다.

그리고 오늘도 내일도 우리네 정보의 홍수속 바다를 헤험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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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닉쑤 2010/10/01 08:14 # 삭제 답글


    좋은글 잘 봤습니다.

    씁쓸하네요..
    사대주의가 아에 뿌리가 박힌듯합니다.
  • 엠엘강호 2010/10/01 08:30 #

    아.. 네.. 좋은 글까지야.. 사실 예전처럼 이런 의문?과 현상에 대해서 직시하고 있었죠.. 왜 유독 그들이어야만 하는지 말입니다. 그러다 이 책을 읽고서 이렇게 정리하게 됐는데.. 여튼, 요지는 그런 지식인들에게 쏠림현상이 심하다는 것과, 그것은 어떤 비판도 없이 맹목적인 추종이라는점..

    결국 이런 현상이 사대주의적으로 보이더라도 또 이것은 '받아쓰기 저널리즘'으로 고착화된 한국 언론들의 폐단으로 인한 병폐라는 점.. 뭐.. 요원하지만.. 그래도 대중들이 비판적 견지의 자세로 수용하는 수 밖에 없다고 봅니다. 그것이 공고화된 무지라 일컫는 '아그노톨로지' 되지 않는 방법이기도 하고요..
  • 홈월드 2010/10/01 09:17 # 답글

    여기 오면 정말 많이 배워가는군요. 맹신만큼 무서운 것도 없죠. 과거 의사들이 미국에서 배운것만 가지고 우리나라 국민들도 채식을 해야된다는 이야기를 했었던 것 같은데 채식이 나쁜건 아니지만 정보의 근거가 충분치 않다는 점에 문제가 있는듯 합니다.
  • 엠엘강호 2010/10/01 10:45 #

    많이 배우긴요.. 책을 통해서 이렇게 같이 배우는거죠.. 여튼, 이런 백인 지식인들 선호현상은 근저에 깔린 사대주의는 물론 그 이면의 내막도 없이 오로지 '맹목적인 추정'만이 존재하는 맹신이라는 점에서 아주 고질적인 병폐입니다. 그것을 바르게 해석하고 전달할 본분을 망각한 한국의 언론들.. 또 그것을 아무런 비판적 견지없이 수용하는 대중들, 이제는 둘다 깨여야 합니다.
  • 카큔 2010/10/01 10:07 # 답글

    생각할 거리가 남는 좋은 글이군요. 잘 봤습니다.
  • 엠엘강호 2010/10/01 10:48 #

    네.. 나름 던진 물음도 그렇고 내용도 그렇고.. 생각거리가 충분하죠..
    또한 이런 물음에 대해서 한번 쯤은 다들 생각한거라 낯선것도 아니고요..
    여튼, 한국의 언론들과 대중들 서로 윈윈하는 전략이 필요할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 블랙체링 2010/10/01 17:32 # 삭제 답글

    항상 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한국인은 돈 좋아하고, 멍청하고, 생각이 짧다구요
    받아적기에만 급급한 언론과 비판적 사고없이 불러주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대중들에게 항상 한심함을 느끼고 있습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 엠엘강호 2010/10/01 18:43 #

    네.. 그렇죠.. 자주 듣던 우리 국민성에 관한 이야기들로.. 씁쓸한 거죠..
    그와 같이 언론들도 자유언론의 사명을 잊은채 '이익의 물타기'로 자기 살길 찾아나서고, 이런 물타기에 비판없이 수용하는 우리 대중들.. 요원하지만 노력해야겠죠.. 여튼, 어필이 돼 잘 읽으셨다니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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