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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1 근초고왕, '비류왕'은 정말 독살인가? └ 사극관련들

먼저 단도직입적으로 말해서 아니, 우리나라 사극에 나오는 왕들은 왜 주로 '독살'로 처리하는 것일까? 하는 의문이다. 물론 독살로 죽은 왕들이 있을 수 있다. 대중역사서의 본좌로 통하는 '이덕일' 선생이 쓰신 <조선 왕 독살사건>만 보더라도 조선왕조 500년의 역사에 소현세자를 포함해 무려 8명의 왕이 독살 당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제시하고 있다. 그만큼 봉건적 전제군주 시대에는 왕의 죽음이라 불리는 '흉거'는 분명 임팩트한 면이 있다. 그 어떤 정치권 권력 구도에 의해서 반대파의 계략과 음모로 암살과 독살을 당해 죽었다는 것은, 분명 이는 후세 사람들에게 좋은 역사적 소스이자 이야깃거리가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이런 왕들과 관련된 이야기는 책이나 드라마 영화로도 많이 나오면서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게 다반사다. 


(사진출처 : KBS1 근초고왕, 백제 13대 근초고왕을 맡은 감우성)

대하사극 '근초고왕', 이야기의 전개는 전형적인 권력다툼 구도

그중 이번에 KBS가 야심차게 준비한 총 70부작의 대하사극 '근초고왕'을 보면 여기서도 그런 장치를 비켜가지 못했다. 강호는 나름 역사물을 좋아해서 이 역사 드라마도 챙겨서 보고 있는데, 삼국시대 4세기를 배경으로 고구려와 백제가 패웅을 다투는 역사적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물론 정통 사극은 아닌 것 같다. 저 중국의 요서지방을 경략한 환서대백제를 꿈꾸었다는 다소 역사적 판타지가 가미된 드라마로 '백제의 광개토대왕'이라 불리는 13대 근초고왕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데 현재 10회까지 진행됐다. 내용은 사실 별거 없다. 거의 영웅들 일대기의 클리셰를 그대로 답습한 그림들, 맏아들은 아니고 4번째 왕자인 부여구(감우성, 훗날 근초고왕)가 그냥 자연에 묻혀 소금장수로 살아갈려다, 부여찬을 위시한 배다른 형제들의 압박이 가해지자 꿈틀거리며 권좌 자리에 도전하는 게 이 사극의 뼈대다.

그러면서 이 사극은 두 가지 갈등 축이 있다. 바로 위례궁주 부여준(한진희, 12대 계왕)쪽에 있는 해씨 가문 '해녕'일파와 비류왕(윤승원, 11대) 부구태쪽에 있는 진씨 가문 '진정'일파가 있다. 물론 이 해씨와 진씨는 백제의 명문 귀족가문으로 앙숙 관계이지만 그렇다고 마냥 그렇지도 않다. 더군다나 문제는 이게 크로스돼서 비류왕쪽 왕실은 진씨 가문을 칠려고 한다. 그것은 비류왕의 2왕후인 '진비 사하'(김도연)가 낳은 자식이 바로 부여구(감우성), 부여몽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1왕후는 해씨 가문의 '해비 해소술'(최명길)이고 그녀가 낳은 부여찬, 부여휘, 부여산 이렇게 세명의 왕자가 바로 부여구를 미워하며 칠려고 계속 쏠라닥질을 해대고 있다. 안봐도 뻔한 전형적인 왕자들의 권력 다툼의 그림들인 것이다.

그래서 비류왕계 왕후와 왕자들은 진씨의 수장 '진정'과 그의 아들 '진승'(안재모)을 마땅찮게 본다. 더군다나 진승은 부여구를 모시는 책사 역할을 하니 더욱 그렇다. 그렇기에 이 사극의 갈등은 해씨와 진씨 가문이 보좌하는 부여준 계왕과 부구태 비류왕이 정적 관계에 놓이면서 서로 권력 다툼을 벌인다. 물론 이런 틈바구니 속에서 고구려의 고국원왕 사유(이종원)는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며 백제를 옥죄여 오는데.. 결국 비류왕은 여러 위기를 맞이하면서 부여준의 계략에 빠져들어 지난 주 방영분 9회에서 독살로 죽게 된다. 그런데, 정말 독살일까? 독살로 안 그리면 이야기가 안 되는 것일까? 물론 부여준과 부구태는 오랜 정적 관계임은 맞다.



위 도표에서 보듯 백제 왕위 계승권의 지형을 보면 부여준의 계왕은 '고이왕계', 비류왕은 '초고왕계'로 이들의 출발은 엇갈리고 있다. 더군다나 부여준 입장에서는 자신이 왕위를 이을 뻔한 자리를 비류에게 빼앗겼다는 그런 울분이 작용했다. 10대 분서왕의 맏아들이 부여준 계왕이었는데, 그가 왕위에 오르지 못하고 11대에 비류왕이 즉위한 것은 기록에는 그가 어렸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사실은 왕실 내 세력다툼의 결과로써 초고왕계인 비류왕의 즉위는 바로 이런 세력교체기에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즉 분서왕과 계왕은 고이왕의 후손으로, 초고왕의 후손인 비류왕과는 서로 다른 계파였고, 비류왕의 즉위는 분서왕이 낙랑의 자객에게 피살된 급박한 상황에서 이루어지면서 이후부터 고이왕계가 몰락하고 초고왕계가 집권하며 왕실계파간의 세력교체가 이루어진 것이다.
그러니 위례궁주 부여준과 비류왕은 해씨와 진씨 가문을 앞세워 정적 관계를 유지하는 가운데, 결국 비류왕이 독살로 죽음을 맞이한다. 드라마상의 나레이션은 비류왕의 죽음에서 대해서 이렇게 설명한다.

서기 344년, 백제 제11대 어라하인 비류왕은 숨을 거둔다. 고이계 분서왕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지 41년 만이었다. 비류왕은 재위기간 중 백제 국력을 키우기 위해 노력했다. 고구려 미천왕과 함께 한사군의 마지막 군영인 대방군을 몰아내며 백제의 영토를 예성강 유역까지 확대하고자 했고, 백제의 내부로는 백년 이상 지속해오던 초고왕계와 고이왕계의 왕위 계승권 다툼을 종식시켜 왕권을 강화하고자 했으나 끝내 그 뜻을 이루지 못했다. 비류왕이 백제 내부에 분열을 근본적으로 치유하지 못한 채 갑작스런 죽음을 맞이하게 됨으로써 백제의 통합과 고구려에 대한 견제는 근초고왕에게 남겨진 미완의 과제가 되었다.  

비류왕이 '독살이냐 아니냐' 보다 극적 재미를 위한 요소인가?

그래서 강호도 '비류왕'에 대해서 찾아봤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하지만 비류왕의 독살에 대해서는 나오지 않는다는 거. 우선 그는 구수왕의 둘째아들로 태어났는데, 성품이 너그럽고 인자하여 백성들을 사랑하였으며 또 힘이 세고 활을 잘 쏘아 사람들에게 인기가 있었다고 한다. 분서왕이 전사하자 전왕에게 비록 아들이 있었으나  모두 나이가 어려 왕으로 세울 수가 없었으므로 신하들의 권유로 비류왕이 즉위하게 되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비류왕은 바로 해씨세력을 등에 업고 권력을 장악한 게 정설로, 이것은 즉위 9년 해구를 병관좌평에 임명한 사실로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비류왕의 등극과 집권은 순탄치 않았다. 앞선 두 왕인 책계왕과 분서왕이 북쪽으로 영토확장에 나서며 중국 군현세력에게 피살되었다는 사실은 당시의 백제가 한군현과 대적할 만큼 성장했음을 의미하기도 하는데, 그러면서 이 두 왕이 연속 피살됨으로써 고이왕계가 몰락하고 초고왕계가 다시 부상하는 계기가 된 것이다. 그래서 비류는 책계, 분서 두 왕이 잇달아 피살당하자 움츠리고 있던 초고계의 세력을 규합하여 분서왕의 어린 아들을 제치고 왕위를 계승 한 것으로 보는 게 정설이다. 그리고 그의 재위 기간은 304~344년까지 무려 40년이나 된다. 

아무튼 그 비류왕이 드라마 10회 만에 정적 관계인 부여준의 독살로 죽고 말았다. 독살로 죽었다는 근거는 찾아보기 힘들지만 분명 둘은 정적 관계였기에 가능할 수도 있다. 그리고 그것은 사극이 지향하는 극적 재미적 요소로 왕위찬탈의 소스로써 활용한 셈인데, 그래서 현재 부여구와 그의 측근들은 부여찬에게 아비를 시해했다는 역적 모의로 잡혀와 모진 고초를 격고 있다. 과연 부여구를 이 위기를 어떻게 모면할 것인가? 앞으로 이런 위기 모면은 물론 비류왕 다음으로 부여준 위례궁주가 11대 계왕으로 등극할 것이다. 그 집권은 2년 밖에 안 됐기에, 아마도 권력의 불안정 속에서 부여구가 전면전으로 뛰어들 가능성이 높다.

어찌됐든 비류왕의 독살 처리로 극적 재미를 추구한 '근초고왕', 아직 갈 길은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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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온누리 2010/12/07 12:28 # 삭제 답글

    점심시간에 잠시 들립니다^^
    나중에 찬찬히 보겠습니다. 행복하세요
  • 엠엘강호 2010/12/07 13:00 #

    네.. 맛나는 점심 되시고, 강호도 먹고 와야 겠습니다. ㅎ

    글고 이런 류의 역사 이야기는 찬찬히 뜯어 보는 게 좋긴 하죠~~
  • 지니 2010/12/07 13:26 # 삭제 답글

    제가 요즘 재미있게 보는 드라마입니다.
    드라마에서 이름이 너무 많아 헷갈리더라구요.
    이 글이 도움이 되네요.
  • 엠엘강호 2010/12/07 15:05 #

    네.. 물론 저도 챙겨보는 역사물입니다. 정통은 아니어도 볼만하죠..
    그런데 역사물에는 보통 인물들이 많이 나오는지라 좀 익혀둘 필요가 있습니다.
    관련해서 이미 제가 포스팅한 적이 있는데, 참고하시고요.. 물론 KBS 홈피에도 나와 있습니다.

    http://mlkangho.egloos.com/10611759

    아무튼 도움이 되셨다니 다행입니다.
  • 3456 2010/12/07 18:51 # 삭제 답글

    삼국사기에는 비류왕이 구수왕의 아들이고 사반왕의 동생이라고 나오는데 비류왕이 구수왕의 아들이 아닐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 물론 구수왕의 후손은 맞는데 구수왕 사후 70년이 지난 뒤에야 왕위에 올랐고 그 뒤로 40년을 했다는 소리이죠!! 그래서 흑강공이라는 가상의 인물을 비류왕의 아버지로 놓은 부분은 칭찬할만하다고 봅니다. 또한 개루왕의 아들인 초고왕 고이왕이 갈라지는데 초고왕과 고이왕이 형제 지간이 아닐 수도 있다고 합니다. 연대차이도 많이나고 일각에선 초고왕이 온조계이고 고이왕이 백제 설화에서 나오는 비류를 조상으로 하는 비류계일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고 합니다. 백제 설화에선 온조와 비류가 형제이지만 실제론 왕위 다툼의 라이벌이었고 온조가 결국 비류에게 승리해서 백제를 세운 거 아니냐라는 해석도 있습니다
  • elfflswj 2011/11/13 16:26 # 삭제 답글

    비류가 독살을 당했다는 기록은 없지만 1왕자도 아니고 2왕자(부여구는 실제로 2왕자라고 합니다.)도 아닌 다른 왕실의 일원이 왕이 12대 계왕이 되었다는 걸 가지고 쿠데타가 있었을 것이라고 추측하는 학자들도 있다고 합니다.
  • 1234 2012/05/19 14:16 # 삭제 답글

    최근 백제의 요서 경략설은 정설로 인정받는 중입니다.
    교과서에서도 백제가 요서 및 산둥반도에 진출했다고 나와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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