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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제왕의 생애>, 가상의 역사 속 인생무상을 말하다. ☞ 북스앤리뷰

여기 '제왕의 생애'를 다룬 소설이 있다. 그렇다면 이 소설은 역사소설이라는 느낌이 단박에 온다. 하지만 이 소설을 읽게 되면 그 어떤 역사적 사실이나 사건을 바탕으로 쓴 이야기가 아님을 알게 된다. 하지만 이 속에는 우리가 보통 동양사로 대표되는 중국역사나 우리역사를 통해서 만나본 그 어떤 황제나 군주에 대한 삶이 오롯이 나와 있다. 이미 TV 사극 드라마를 통해서 많이 접해보거나 아니면 인문역사서나 역사소설 등을 통해서 접해본 그림들이 일목요연하게 그려져 있는 것이다. 그래서 재미는 물론이요, 갖가지 이야기들이 씨날처럼 구성돼 흐름을 좇는 흥미를 유발시킨다는 점에서 이 소설은 참 매력적이다.

중국작가 '쑤퉁'의 대표적인 초현실 가상역사소설 <나, 제왕의 생애>

바로 이 작품은 중국을 대표하는 젊은 작가 '쑤퉁'이 쓴 역사소설로, 그는 이것은 진정한 역사소설이 아닌 한 편의 꿈같은 이야기이자 초현실적인 가상의 역사적 이야기라 말했다. 그러면서 이 속에서는 궁정의 사건과 비빈들, 옛 악기와 음악, 강호를 떠도는 예인들의 삶을 조망하며 인간의 희로애락이 갈마드는 삶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강호는 이 한 편의 소설을 설날 연휴 동안 틈틈히 읽으며 나름 새로운 기분에 젖어들기도 했는데, 과연 여기서 보여준 '제왕의 생애'는 어떠했는지 간단히 이야기를 정리해 본다.



여기 고대 중국의 여러 나라 중에 가상의 나라인 섭국(燮國)이 있다. 섭나라라니 중국 역사에서 그런 나라가 있을까 싶지만, 기원전으로 파고 들어가 정말로 가열했던 춘추전국시대를 보면 없을 것도 없다. 어찌됐든 이 섭나라 섭국의 이야기가 이 소설의 플롯이자 매개체다. 즉 섭국에서 펼쳐지는 각종 사건들이 이야기의 뼈대인데, 어느 왕조들이 그러하듯 여기서도 부왕이 죽고 그의 아들들이 권좌를 잇게 됐다. 순서대로 단문-단헌-단무-단명-단백 순이었는데 장자 단문을 제치고 열네 살의 단백이 권좌를 이어받은 거. 이 소년이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제왕의 자리에 오르게 된 것이다. 수줍고 생각이 깊으며 때로는 결단력을 보이는 소년 제왕 '단백'은 부왕의 후궁을 제거하는 등 나름 권위를 보이려 하지만, 매 항상 불안하고 위기다. 주위의 형들 때문에 권력다툼이 잦아지고, 자신의 할마마마인 황보부인과 모왕후인 맹부인이 서로 대립각을 세우며 섭정을 하려 하는 등, 단백에게 있어 이 제왕의 자리는 마뜩찮게 불편한 것이다.

어린 나이에 제왕에 오른 섭왕 '단백'의 삶, 그는 광대를 꿈꿨다.

하지만 스승 '각공'을 통해서 자신을 다스리며, 어린 내시로 입궁해 제왕을 보좌하게 된 환관 '연랑'과 친해지면서 그의 제왕적 생애도 차츰 면모를 찾아가게 된다. 그러면서 변방에서 고생하는 군사들을 위무차 순행길에 올랐다가 생고생을 하는 등, 하지만 그런 길에서 연랑과 몰래 저잣거리를 활보하며 나름의 자유를 만끽한다. 그러다 어느 광대패를 보면서 무언가 자기 안의 끓는 열정을 보게 되는데, 아무튼 우여곡절이 많았던 순행을 마치고 돌아와서는 장자인 단문을 강제로 장가보내고 변방으로 성이나 지키라며 쫓아버린다. 이때부터 그만의 세상인양 단백은 제왕의 변모를 더 갖추어 갔지만, 아직도 할머니와 어머니 등쌀에 괴롭긴 마찬가지다. 더군다나 자신의 정비인 팽황후를 비롯해 여러 비빈들이 서로 암투를 벌이며 자신이 총애하던 순수하고 아리따운 '혜비'를 궁지로 모든 등, 궁정내 여인네들의 시기와 질투의 비사가 가열하게 펼쳐진다. 이에 단백은 그녀를 지키기 위해서 노력하는데 그만큼 혜비를 사랑했던 단백은 끝내 그녀를 지키지 못하고, 연랑의 고육지책으로 궁에서 내쫓는 것으로 일단락 짓는다.

한편 섭국의 위협이 되고 있는 팽국의 침략이 계속되는 가운데, 품주 지역에서 서왕 소양이 위세를 떨치며 단문과 결탁했다는 소문이 자자해지고 '머지않아 섭국의 재난이 닥칠 것이다'라는 예언이 계속 들어맞으며 섭국은 위기에 빠진다. 더군다나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제천회라는 농민반란군까지 일어나 이 반역사건을 제압차 변방으로 내쫓았던 단문을 불러들여 그들을 진압케 한다. 이것이 바로 호랑이를 키운 격으로 단문은 그들을 무찌르고 보무도 당당하게 서왕 소양과 섭궁으로 들어오게 된다. 이때 이미 단백의 할마마마 황보부인은 저 세상으로 떠났고, 광유대장군 단무가 서왕 소양과 짜고 역모를 꾸며 섭국을 접수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단백은 그 자리에서 기어가듯 쫓겨나 섭국을 떠나게 된다. 바로 여덟 해 동안 제왕의 자리에서 한 순간에 권위를 박탈당해 쫓겨난 것인데, 그나마 다행이다. 다른 이들은 모두 참살돼 처참히 죽었지만, 단백과 그의 내시 연랑은 목숨만은 부지한 채 빠져나왔으니 말이다.

이때부터 단백의 정처없는 유랑 생활의 시작이다. 전혀 알지도 못했던 가렴주구에 빠져 피폐해진 백성들의 삶을 몸소 체험하며 일개 평민으로 전락한 그는 연랑과 인생의 쓴맛을 제대로 보게 된 것이다. 그러면서 연랑의 집까지 찾아갔지만 구차해진 자신을 본 단백은 연랑을 놔두고 몰래 빠져나와 홀로 여정을 떠난다. 그러다 자신이 예전 순행길 저잣거리에서 본 광대패를 찾아가며 그만의 자유로운 삶을 꿈꾼다. 하지만 그 광대패를 찾지는 못했다. 그런데 그 와중에 예전 궁에서 내쫓긴 '혜비'가 기녀가 된 사연을 접하며 만나게 되고, 다시 찾아온 연랑과 어린 소녀 옥쇄를 알게 되면서 이들 셋은 스스로 광대가 되기로 결심한다. 결국 연습해 연습을 거듭하더니 자기 안의 끼를 발산해 예인 광대로써 단백은 줄타기의 왕으로 등극한다. 그 어떤 제왕이 아닌 이제는 줄타기의 왕으로 변모한 그에게 있어 이것은 새로운 삶이자 열정이었다. 하지만 이런 삶의 또 다른 열정은 섭국이 멸망하는 그 자리에서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게 되는데.. 그것이 단백이 꿈꾸던 진정한 삶이 아니었을까?

가상역사소설 '나 제왕의 생애', 우아하고 환상적인 인생무상 이야기

이렇게 이 이야기는 한마디로 제목처럼 어느 제왕의 생애를 다룬 이야기다. 10대 때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올랐던 제왕의 자리가 못내 싫었지만 살아남기 위해서 버텨온 그 제왕의 삶이 어느 순간 광대패를 보면서 자기 안의 삶의 열정을 보며 그는 끊임없이 그것을 좇았다. 결국 나라가 망하는 그 순간에도 그 끈을 놓지 못한 단백의 이야기가 바로 이 소설의 플롯인 것이다. 그러면서 이 소설 속에는 보통 우리가 익숙하게 알려진 궁정내 이야기들인 음모와 배신, 후궁들의 암투와 시기, 반역과 처단 등 이런 그림들이 생생히 펼쳐진다는 점에서 복기한다. 그런데 이 소설은 다소 특이한 점이 있다. 역사적 배경이나 사실에 기반한 이야기는 아니지만 분명 옛 군주의 삶을 이야기하며 꽤 몽환적이면서 우아하게 환상적으로 이야기를 펼친다는 것이다.

그런 느낌은 다소 수사적인 표현들이 많아 한 편의 운치있는 문학소설을 읽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로, 이 작품은 나름 우아하다는 점에서 이채롭다. 그렇다고 그런 표현들이 와 닿지 않는 게 아니라, 우리말의 수사적 극치를 보듯 마음의 눈으로만 그릴 수 있는 보석같은 이미지로 투영시키며 읽는 이로 하여금 빠져들게 만들었다. 바로 이것이 이 소설이 보통의 역사소설과는 다른 맛이자 색다른 매력인 셈인데, 결국 소설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이 책의 저자 쑤퉁이 말했듯이 주인공 단백의 일생은 "비 오는 밤에 놀라 깨어 깨어났을 때의 꿈결 같은 것"이라는 언급처럼 그것은 오늘날 우리의 삶과 통하는 그 어떤 인생무상에 대한 성찰이자 한낱 꿈같은 이야기가 아니었을까? 바로 인생의 쓴맛과 단맛이 교차되는 그 순간을 여기 제왕의 생애을 통해서 지켜보며 우리는 또 다른 꿈을 꾸고 인생의 무상함을 말할지 모른다.

그것이 쑤퉁의 <나, 제왕의 생애>가 보여준 이야기자 우리네 삶의 한 단편이다. 


나, 제왕의 생애 - 10점
쑤퉁 지음, 문현선 옮김/아고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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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하늘엔별 2011/02/07 14:44 # 삭제 답글

    한 번 읽어 보고 싶은 책입니다. ^^
  • 엠엘강호 2011/02/07 19:10 #

    네.. 역사소설적 재미와 함께 인생의 삶과 무상을 느끼기에 충분한 소설입니다.
    문학적 수사도 많고, 나름 꽤 임팩트한 게 '쑤퉁'작가의 스타일이 그려지는 작품입니다. 강추요~~
  • 절제 2011/02/07 19:10 # 답글

    꼭 읽어보고 싶은 책 중 하나였는데 강호님이 리뷰 써주셨네요. ^^ 잽싸게 읽고 갑니다. 저도 겨울이 가기 전에 꼭 읽어봐야겠어요.
  • 엠엘강호 2011/02/07 19:28 #

    네.. 저번에 '쑤퉁'의 작품들을 컬렉하면서 설 연휴동안 그중에서 첫 번째로 읽게 된 소설입니다.
    첫 선택이 나쁘지 않게 역사적 재미도 있고 너무나 의미깊게 읽었던 작품인데..
    언제 시간 되시면 꼭 한 번 읽어 보시길 바랍니다. ~~
  • 아묘M 2011/02/08 23:35 # 답글

    작년쯤에 굉장히 재밌게 읽은 책인데 (재밌는 상황은 아닌 스토리지만요^^;)
    리뷰쓰신 거에 제목만 보고도 반가워서 눌렀네요. 리뷰 잘 읽고 갑니다~
  • 엠엘강호 2011/02/08 23:55 #

    네.. 역사소설적 재미도 있고, 여기 주인공 '단백'이 '나'로 화자가 돼서 펼치는 게 색다르죠..
    특히나 그냥 이야기만 있는 게 아니라, 그의 심리상태와 상황묘사들이 정말 문학적이라 기억에 남을 만한 소설이었네요. '쑤퉁' 작가의 스타일도 알게 됐고, 지금은 그의 또 다른 작품을 읽고 있답니다. ~~
  • fthero 2011/02/09 09:57 # 답글

    이 작가의 작품을 본 다음에야 중국소설에 대한 관심이 생겼었습니다.
    다만 이 작가의 다른 소설만 읽어보고 아직 다른 작가의 소설을 접해보진 못했지만요. ^^;

    참 어두운 내용이 많은데도 전개가 답답하지 않고, 몰입해서 읽게 되는 재미가 있었습니다.
  • 엠엘강호 2011/02/09 12:05 #

    네.. 사실 다른 나라와 달리 중국문학이 국내에 많이 안 알려졌는데.. '루쉰'은 대표성이고..
    그외 중국 현대문학을 이끄는 기수로 '쑤퉁'이 대표적입니다만.. '위화'도 빼놓을 수가 없죠..
    위화의 세 작품 '인생, '형제', '허삼관 매혈기'는 대표작으로 인기가 많은 작품인데, 꼭 읽어보시고요.. 그리고 '쑤퉁'은 저도 지금 시작 단계라.. 분명 '위화'와는 다른 매력이 느껴지는 그만의 필력이 돋보이는 게 있습니다. 다분히 문학적이면서도 와 닿는 그 느낌.. '쑤퉁'을 더 파야겠습니다. ~~
  • fthero 2011/02/09 17:40 #

    루쉰과 위화라.. 바로 검색해서 읽어봐야 겠네요. 추천 감사드립니다.

    저는 '쌀'로 처음 접했는데, 참 어둡고 답답한 내용이었는데도 재미있다는 것이 신기해서 쑤퉁의 소설은 나오기만 하면 구입하고 있네요.
    단편집인 '이혼지침서' 는 한편한편의 내용은 짧아서 아쉬웠지만, 스토리와 배경이 참 인상에 깊게 남아서 읽은지 꽤 되었는데도 머릿속에 소설속 등장인물들이 생생하게 떠오르네요. 꼭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
  • 엠엘강호 2011/02/10 00:12 #

    먼저 루쉰은 중국문학의 아버지라 불린다죠.. 대표적인 '아Q정전'과 '광인일기'등이 유명한데, 국내에 출간된 그의 문학집이 많은데.. 대표성으로 한번 읽어봐야 할 분이죠.. 그리고 위화는 현재 60년생의 중국작가로 선봉파의 기수, 그의 대표작 '인생', '형제', '허삼관 매혈기'등은 정말 유명하고 위트와 풍자가 가득한 작품들입니다. 강호는 물론 다 읽어봤는데, 제 블로그에서 검색해 보시면 다 나옵니다. ~~

    그리고 지금은 '쑤퉁'을 파고 있습니다. 이미 컬렉션은 마쳤지만, 좀더 구할 예정이고, 현재는 '나, 제왕적 생애'를 마치고, '이혼지침서'중 두번째 표제작을 읽고 있는데, 이것도 재밌고 의미가 깊네요. 앞에 '처첩성군'은 마지막에 반전까지..ㅎ 이후 이 책을 마치고 대표작 '쌀'과 '눈물'을 읽을 참입니다. 아무튼 봄이 오기 전 쑤퉁을 섭렵할 생각입니다. 서평 때 또 뵙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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