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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해, 왕이 된 남자 '이병헌' 사극의 품격을 품다 └ 한국영화들



사극연기 첫 도전 치고는 가히 성공적이라 할 수 있다. 20년 가까운 배우 생활에서 정극이 아닌 시대상이 반영되는 역사성과 그 시대의 아픔을 고스란히 거머쥘 모습과 분위기, 그리고 말투에 특히 예민하게 신경써야 하는 장르인 사극. 그래서 배우들에게 '사극'이란 만만치 않은 영역이자 나름의 고난도의 연기력이 필요한 부분이다. 하지만 여기 '이병헌'의 첫 사극 도전은 그런 걸 불식시키며 단박에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연기력이 엄청난 배우 이전에 그만의 카리스마가 있고, 무엇보다 극중 전달력이(?) 남달랐던 배우였던지라, 우려 보다는 찬사에 가까운 호평이 개봉 이후로 쏟아졌다. 그것이 이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 속 이병헌 연기력에 대한 중론이다. 아닌가?!

단순히 위엄있는 군주의 모습이 아닌, 알다시피 조선판 '왕자와 거지'를 모티브로 한 이 영화에서 이병헌은 1인2역을 맡으며 극과극을 달렸다. 하나는 팩트로써 조선의 15대 비운의 군주 '광해군' 역을, 픽션으로써 그런 광해군으로 행세한 가짜 광해군 역에 하선을 연기했던 것. 분명 외견은 같았으나, 둘의 모습과 분위기는 사뭇 다르게 극을 이끌며 나중엔 혼연일체가 되는 예측가능한 대중적 합의에 도달하며 종지부를 찍었다. 역사가 기록한 '광해군'의 기치를 오마주 하듯이, '이병헌의 이병헌에 의한 이병헌을 위한' 광해는 그렇게 사극의 품격을 품으며 중심에 섰던 것이다.



역사에 기록되지 않은 또 한 명의 광해, 왕이 되어선 안 되는 남자, 조선의 왕이 되다! 

왕위를 둘러싼 권력 다툼과 당쟁으로 혼란이 극에 달한 광해군 8년. 자신의 목숨을 노리는 자들에 대한 분노와 두려움으로 점점 난폭해져 가던 왕 ‘광해’는 도승지 ‘허균’에게 자신을 대신하여 위협에 노출될 대역을 찾을 것을 지시한다. 이에 허균은 기방의 취객들 사이에 걸쭉한 만담으로 인기를 끌던 하선을 발견한다. 왕과 똑같은 외모는 물론 타고난 재주와 말솜씨로 왕의 흉내도 완벽하게 내는 하선. 영문도 모른 채 궁에 끌려간 하선은 광해군이 자리를 비운 하룻밤 가슴 조이며 왕의 대역을 하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광해군이 갑자기 의식을 잃고 쓰러지는 엄청난 사건이 발생하고, 허균은 광해군이 치료를 받는 동안 하선에게 광해군을 대신하여 왕의 대역을 할 것을 명한다. 저잣거리의 한낱 만담꾼에서 하루아침에 조선의 왕이 되어버린 천민 하선. 허균의 지시 하에 말투부터 걸음걸이, 국정을 다스리는 법까지, 함부로 입을 놀려서도 들켜서도 안 되는 위험천만한 왕노릇을 시작한다. 하지만 예민하고 난폭했던 광해와는 달리 따뜻함과 인간미가 느껴지는 달라진 왕의 모습에 궁정이 조금씩 술렁이고, 점점 왕의 대역이 아닌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는 하선의 모습에 허균도 당황하기 시작하는데...



역사 속 광해군의 재위기간은 15년이다. 영화는 그것의 절반인 시점 광해군 8년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임진왜란 등 나라 안팍으로 고초를 겪으며 제대로 조선을 말아드신 선조 때부터 시작된 당쟁의 씨앗이 갈수록 격화된 시점에서 광해는 중심을 못잡고 이리저리 휘둘리며 폭군의 왕으로 등극. 어찌보면 이것 또한 살기위한 방책이었을지 모르나, 진짜 광해는 자신을 대신해 그들의 위협을 피할 대역을 도승지 '허균'에게 명하고, 자신은 절치부심 장고에 들어간다. 저잣거리 광대짓이나 하며 놀던 공길이 아니 '하선'을 데려다.. '어허 이놈 봐라.. 나랑 똑같은 게 그래, 니가 이제부터 왕이 돼서 나의 몸빵이 되거라.' 천민 하선은 그렇게 졸지에 가짜 광해군이 되었다. 운이 튼거라 봐야될까. 하선도 처음엔 잠깐 왕 코스프레를 한 댓가로 두둑한 은냥이나 챙기면 그만이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건 일종의 늪처럼 빠져나오기 힘든 곳이었다. 왕 노릇을 대충했다가는 목숨도 부지못할 판. 도승지 '허균'이 그때부터 군주의 도리와 행태, 대신들에게 어떻게 대하고 말해야 하는지 등, 일목요연하게 쪽집게 과외식으로 하선을 광해군처럼 변모시킨다. 이에 하선도 싫지 않은 듯 광해군 코스프레에 빠져들며, 자기안의 또 다른 모습을 발견하게 되는데.. 역사 속 명과 후금 사이에서 실리외교를 폈던 그런 광해와 애민했던 그의 모습이 제대로 막판 테크를 타며 보는 이들의 가슴을 뭉클하게 만든다. 과연 가짜 광해군 하선은 이 15일간의 왕 노릇을 무사히 마치고, 진짜 광해에게 바통을 잘 이었을까.. 역사에서 사라진 그 며칠간의 기록은 그렇게 팩션으로 승화돼 한 편의 꿈결같은 왕의 이야기를 펼친 것이다. 그게 바로 왕이 된 남자 '광해'가 그린 제왕의 생애가 아니였나 싶다.



보시다시피 이병헌은 두 얼굴을 연기했다. 하나는 진짜 광해로 하나는 가짜 광해로. 진짜 광해가 보여주는 예민과 영민을 오가는 군주의 위엄은 당시 광해군의 포지션을 반증하듯 짧지만 인상깊은 모습을 보였다. 반면 저잣거리 광대 출신의 하선이 보여준 광해는 따뜻함과 인간미가 물씬 풍기는 그런 광해로 달리며 극을 이완시켰다. 그로 그럴 것이, 피폐했던 백성들의 삶을 제대로 보고 느꼈던 하선에게 있어서 이딴 왕 노릇은 일종의 겉치레에 가까운 일. 하지만 날이 갈수록 그런 하선의 광해군은 변모를 꾀한다. 자신이 그간에 느꼈던 스타일이 그대로 쏟아지며 조정과 구중궁궐을 뒤숭숭하게 만들었다. 아니 광해에게 저런 면이.. 개혁성과 애민 사이에 고민하며 때론 인간적인 면모로 다가와 왕의 위엄을 덜어낸 진정한 제왕의 자격을 보여주려 했다. 이런 극과극을 달린 이병헌의 연기는 호평을 받을만큼 디테일했고, 그가 진짜 '광해'가 아니였을까 착각이 들 정도로 극에 몰입감을 높였다. 이병헌, 정말 첫 사극연기가 맞는 것인가. 올 연말 영화제 수상을 기대해도 좋을 듯..



그리고 이병헌과 함께 류승룡을 이 영화에서 빼놓을 순 없다. 전작 <내 아내의 모든 것>에서 보여준 전설의 카사노마 '장성기'는 이젠 잊어라. 그가 바로 교산 대감 '허균'이다. 익숙한 <홍길동전>의 저자로 후대에게 알려진 문인 쯤으로 알고 있지만, 그는 광해군 시대에 나름 열심히 살다간 '칠서의 옥' 사건을 필두로 종국엔 역모죄로 죽임을 당한 문신이자 혁명적인 면모도 갖춘 문필가였다. 말년엔 정3품 형조참의에 제수되는 등, 여기선 그전에 맡았던 일종의 비서실장 '도승지' 관직을 통해서 왕을 그림자처럼 보필하는 역을 선보였다. 특히 진짜 광해가 아닌 가짜 광해를 진짜처럼 보이기 위해서 그가 펼친 과외수업은 재미난 볼거리를 제공했다. 이젠 저에게 그만 하대하셔도 좋다고 하다가다, 하선광해가 제대로 못할시에는 저렇게 손부터 올라가는 다혈질의 허균이었다. (아래 사진ㅎ) 그가 바로 광해군의 오른팔답게 하선의 광해와 진짜 광해 사이를 잇는 가교 역할을 하며 제대로 호연을 펼친 것이다.





정통사극의 무게감과 대중적인 사극의 품격을 품은 '이병헌', 그가 바로 '광해'였다.

물론 이런 두 배우 이외에 조내관을 연기했던 장광 옹(영화 '도가니'에서 그 미친 교장 역)은 그 목소리 만큼이나 분위기 파악을 잘하는 내시의 모습으로 주목을 끌었고, 전작들 중 '방가방가' 같은 색깔에서 일대 변신을 꾀한 호위무사 도부장 역을 맡은 '김인권'이 다소 무게를 잡으며 색다른 면모를 과시했으며, 드라마 '동이'의 한효주가 이번에도 그 색깔 그대로 광해군의 중전 역을 맡아 역시 '한효주'스런 자태를 뽐냈다. 실제 그녀가 맡은 역사 속 광해군의 왕비는 '폐비 유씨'로 광해군의 실리적 중립외교 정책에 반해서 대명사재정책을 주청하기도 했던 인물이었다.

어쨌든 이런 조연들의 호연 속에서 역시 빼놓을 수 없는 건 광해군과 허균이라는 역사 속 인물에 대한 이야기다. 류승룡이 분전한 허균은 광해를 그림자처럼 보필하며 가짜를 진짜처럼 만들려는 노력에서 충신의 모습을 엿볼 수 있었고, 이병헌은 가짜와 진짜를 오가는 1인2역 광해군의 극과극을 보이면서 제대로 호연을 펼쳤다. 고뇌하고 번민으로만 일관하는 게 아닌, 하선의 광해를 통해서 자연스런 코믹사극의 면모까지 갖추며 다소 무거운 사극의 위엄을 덜어냈다. 여기에 교과서적인 '제왕의 자격'의 질답을 중반 이후에 던지며 종국엔 백성들이 바라고 꿈꾸는 군주의 모습까지 품으려 했다. 정통사극이면서 대중적인 합의에서 모나지 않게 때론 담백하게 무리없는 전개를 통해서 왕이 된 남자 '광해'를 제대로 조명했던 것. 그리고 그 속에서 '광해'는 '이병헌'을 통해서 생생히 살아 움직였다. 사극의 품격을 품은 '이병헌', 그의 배우 인생에 손꼽는 필모그래피에 이 작품을 올려도 좋을 듯 싶다. ~

예고편 : http://movie.naver.com/movie/bi/mi/mediaView.nhn?code=83893&mid=18405#ta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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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여강여호 2012/09/21 10:36 # 삭제 답글

    오래도록 봐 온 눈의 습관 때문일까요..
    어째 이병헌에게서 사극의 느낌은 전혀 생소한 경험같기도 합니다.
    아직 영화를 보지 못해서....사진 속 조선 왕의 분장이 여전히 어색해 보이고요...
    이런 편견을 깨기 위해서라도 직접 봐야 하는데....또 마음만 있고 발은 늘 다른 곳에 머물러 있습니다.
    잘 보고 갑니다.
    행복한 시간 보내시고요...
  • 엠엘강호 2012/09/21 12:32 #

    기존에 고착화된 그런 부분이 없지 않아 있기에.. 처음엔 이병헌이 웬 사극에 출연이라며 말들이 많았죠. 하지만 그런 걸 불식시킬 정도로 호연을 펼쳤다는 게 중론입니다. 저 또한 그런 느낌을 받았고요. 하선의 광해와 진짜 광해를 오가는 감정선의 디테일도 좋았고. 사극 자체가 꽤 깔끔한 편.. 여하튼 이병헌의 광해 모습이 당장 어색할지 몰라도, 영화를 보시면 "음.. 오호" 이런 평가가 절로 나올 수도 있을 겁니다.

    그럼.. 또 다른 강호님도 즐주되세욤.. ~
  • 동사서독 2012/09/21 12:44 # 답글

    진짜 광해군의 히스테리컬한 부분이 후반에 좀 더 나왔으면 싶었는데 그 부분이 좀 아쉽더라구요.
    진짜왕 컴백 기념으로 허균이 가짜 광해, 하선의 손이라도 하나 잘라 바쳤으면 훗날 허균이 역적으로 몰리지 않았을텐데 하는 상상도 해보게 되었습니다.

    백성을 하늘처럼 섬기는 왕, 진정 그것이 그대가 꿈꾸는 왕이라면 그 꿈 내가 이뤄드리이다!

    이 말 자체가 진짜 광해 대신 가짜 광해, 하선을 왕으로 모시겠다는, 말그대로 역모의 메시지가 담긴 말이었으니 말이죠. 엔딩 장면에서 하선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하는 허균의 모습에서 이미 진짜 광해가 아닌 가짜 광해 하선에게 동조된 허균의 속마음을 알 수 있었고 두 임금을 섬긴, 그리고 그 마음이 한쪽으로 기운 허균은 그 몇 년 후, 하나를 얻으려면 하나를 내줘야하는 정치 논리에 따라, 중전의 오라비 윤정호를 역도의 수괴로 몰아 치죄하듯 서인에 맞서던 허균을 반란을 기도한 자로 몰아세워 치죄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해보게 됩니다.
  • 엠엘강호 2012/09/21 19:35 #

    그런 진짜 광해군의 히스테리컬한 부분까지 담기엔 전체적인 배분의 문제.. 좀더 하선이 분한 인간적인 광해군에 초점을 맞춘 게 아니였나 싶네요. 그게 또한 이 영화의 메시지이기도 하고 말이죠. 정말 류승룡의 카리스마는 영화마다 뿜으니, '내아모'의 장성기 이후 허균 또한 제대로 제 역할을 했다고 봅니다. 충신불사이군이라 하듯이 두 임금을 섬기지 못하는 딜레마.. 그러면서도 하선광해에 동화돼 가는 과정이 흥미로왔죠.

    저 위의 짤처럼 손찌검을 할 뻔한 장면은 다들 뿜었죠..ㅋ 그리고 허균을 역모로 몰은 건 그를 주선한 이이첨에게 결국 당하고만 아이러니가 있었으니.. 그때 광해군은 허균의 죽음을 몹시 안타까워했다는데.. 아무튼 영화 자체는 의외로 군더더기없이 웰메이드 사극답게 잘 뽑아져 나왔습니다. 물론 이병헌의 호연을 빼놓을 순 없겠죠. 다음엔 이런 여세로 TV 사극에서도 보기를 기대해 보면서.. 쉽진 않을꺼야.. 워낙 몸값이 나가는지라..
  • 온누리 2012/09/21 13:02 # 삭제 답글

    광해는 꼭 보려고 마음을 먹고 있습니다^^
    덕분에 미리 귀한 내용을 알고 갑니다
  • 엠엘강호 2012/09/21 19:41 #

    요즈음 장안의 화제인 영화라죠.. 이병헌의 연기가 우려보단 기대 속에 호연을 펼치면서 관객몰이중인데.. 벌써 200만을 넘겼다니 다음주 추석특수로 더 많이 볼겁니다. 온누리님 그 연휴에 맞춰서 함 보세욤. 정말 재밌게 볼만합니다~
  • 말없는작가 2012/09/21 21:48 # 답글

    좋은 내용 잘보고 갑니다 ㅎㅎ, 정말 광해를 보았지만 다들 연기가 좋았습니다 이병헌도 다시보게 되었구요 저도 많은 지인에게 추천 해드리고 싶은 영화네요 ㅎㅎ
  • 엠엘강호 2012/09/22 12:01 #

    좋은 내용까지야.. 영화가 좋은 내용을 컨셉으로 잘 만든 사극물이 아닌가 싶네요.. ~
    물론 두 얼굴의 광해 역에 이병헌의 호연을 빼놓을 순 없죠. 여튼 의외로 기대 이상의 작품이었습니다.
  • 설리 2012/09/24 17:04 # 삭제 답글

    100%공감하는 내용입니다. 이병헌의 연기력과 주조연 가릴 것 없는 완벽한 캐스팅에 박수를 보냅니다.
    그리고 영화적 재미와 역사적 호기심을 충족시켜 주는 정말 좋은 영화입니다.
    좋은 글 모셔가도 될까요?
  • 엠엘강호 2012/09/25 11:52 #

    그래요. 이렇게 완전 공감까지 하시다니.. 그만큼 영화의 연출이나 연기 메시지까지 삼박자가 맞아 떨어지게 잘만든 대중사극이 아닌가 싶네요. 물론 이병헌의 호연을 빼놓을 순 없죠. 흥행몰이가 만만치 않아 5백만은 훌쩍 넘을 것 같고.. 여튼 재밌게 잘 본 영화로 느낌대로 적은 것인데, 출처를 밝혀주시면 퍼가셔도 좋습니다. ~
  • 2012/10/31 17:47 # 삭제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2/10/31 17:48 # 삭제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엠엘강호 2012/10/31 23:44 #

    올해 대종상을 휩쓴 '광해'로 인해 말들이 많던데..
    그것에 대한 스틸 사진 등의 정보는 주요 포털인 네이버와 다음 등의 영화 채널을 이용하시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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