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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화가족, 극단과 해학 사이의 가족 솔루션 └ 한국영화들



이젠 '고령화'라는 단어가 낯설지가 않다. 작금의 백세 무병장수 시대를 거창하게 열어젖힌 이 사회적 매카시즘은 우리시대의 위기처럼 다가왔다. 그런 위기는 나이가 많아지는 노령 인구의 비율 증가로 따른 사회병리학적 측면으로 대변돼, '고령화 사회'라는 신조어(?)까지 양산하며 지금의 세태를 반영한다. 그런데 사회의 축소판이라 할 수 있는 '가족'에 고령화가 들어가면 어떻게 될까. 어디 저기 강촌 시골 촌구석에서 90살의 노모를 모시고 사는 환갑의 아들을 생각할 것인가. 뭐, 틀린 말도 아닐 지다. 부모 자식 간의 나이 차이를 30살 전후로 봤을 때 이런 갭은 낯선 게 아니다. 그런 점에서 영화 제목이 아닌 사회적 고령화 가족은 그냥 단순한 가족 구성원일 뿐이다. 문제는 구성원들 나이가 2~30대가 아닌, 40대 설정에 있는 게 아닐까. 대학까지 공부 시키고 직장 잡고 결혼해서 애 낳고 분가해서 지들끼리 알아서 잘 살면서 부모 걱정 안 끼치며 살아야 한 기본 코스에, 이들 삼남매는 그렇게 하지 못하고 과년한 나이들로 70을 바라보는 엄마 집에서 얹혀살면서 평균 연령 급상승화를 자초하며 그 안에서 지지고 볶으며 사네 못사네 하고 있다. 한마디로 이런 철부지도 없다. 그들을 보며 나이 값 못한다는 소리가 절로 나오게 만드는 영화 <고령화가족>. 결국엔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또 다른 꽈리를 틀고 앉은 이들의 행동거지는 조금은 상식을 벗어나는 극단과 해학을 오가며 종국엔 단란한 아니, 그저 각자 위치에서 평범하게 사는 게 무엇인지 조망하며 가족 솔루션을 제시한다. 그것이 지금 우리시대 가족의 모습인 것이다.



인/생/포/기/ 40세 ‘인모’  결/혼/환/승/전/문/ 35세 ‘미연’
총/체/적/난/국/ 44세 ‘한모’  개/념/상/실/ 15세 조카 ‘민경’  자/식/농/사/대/실/패/ 69세 ‘엄마’ 
 
평화롭던 엄마 집에 나이 값 못하는 가족이 다시 모여들기 시작한다. 엄마 집에 빈대 붙어 사는 철없는 백수 첫째 ‘한모’(윤제문), 흥행참패 영화감독 둘째 ‘인모’(박해일), 결혼만 세 번째인 뻔뻔한 로맨티스트 셋째 ‘미연’(공효진). 서로가 껄끄럽기만 한 삼 남매와 미연을 쏙 빼 닮아 되바라진 성격의 개념상실 여중생 ‘민경’(진지희)까지, 모이기만 하면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는 이들의 속사정이 공개된다!
 
평균 연령 47세, 극단적 프로필, 나이 값 못하는 {고령화가족}이 온다!

영화는 둘째 인모의 내레이션과 그의 상황 묘사로 시작한다. 한강 고수부지 같은 곳에서 인모가 한 남자를 죽도록 패고 있다. 왜? 영화감독이었지만 쫄딱 망한 탓에 몇 년을 허송세월해 인생 끝자락까지 몰리고, 아내의 외도까지 겹쳐 이혼 수속중인 인모는 자살을 결심하지만, 갑자기 울리는 핸드폰 너머의 엄마 목소리를 듣고 엄마 집으로 기어 들어간다. 그곳에서 따스하게 먼저 맞이한 건 엄마가 아닌 바로 위의 큰 형 한모. 단순무식형에 몸 쓰는 걸 좋아하는 형 앞에서 인모는 깨갱 모드. 그렇다고 인모도 지지 않는다. 형 앞에서 찰진 욕지거리를 매번 내뱉으며 40살과 44살은 어린아이처럼 방바닥에서 매번 뒹군다. 이런 두 형제 사이에 막내 여동생, 이혼만 벌써 두 번 경험한 결혼환승전문녀 미연이 들어오면서 두 남자는 위기를 맞는다. (아니 너까지)

여기에 미연의 딸이자 할머니랑 같이 살고 있었던 중딩 민경도 만만치 않다. 이들 넷이 엄마 집에서 모여 살기 시작하면 일은 벌어진다. 서로가 아껴주고 위하는 게 아니다. 나이도 먹을 만큼 먹은 다 큰 어른들이 서로가 못 잡아먹어 안달인 살풍경은 계속되며 매일 저녁 삼겹살을 구워 먹는다. 지겹게도. 엄마는 그저 새끼들 고기 구워서 잘 먹이는 게 소원일 정도로, 자유 방임형처럼 이들이 치고 박는 걸 불구경 하듯 지켜만 본다. 조근하게 싸우지들 말고 같이 모여서 밥먹는 우린 식구(食口), 가족이니까. 그런 한모네 가족의 위기는 민경이 가출하면서 찾아온다. 이 사건을 계기로 이들은 나름의 치유와 화해를 하게 된다. 그렇다고 그리 거창한 것도 아니다. 각자 위치로 그냥 돌아갔을 뿐이다. 그것이 우리네 가족의 평범한 모습이 아닐까. (아래 글에서 스포일러가 내포돼 있으니 참고하시길)



극단과 해학 사이를 오간 가족 솔루션 '고령화 가족', 가족영화의 뉴패러다임

영화 <고령화가족>은 색다른 재미를 추구하는 가족무비는 아니다. 기실, 한국형 '가족영화'로 대표되는 신파와 감동의 메시지적 장치에서 벗어나 있어 사실 큰 울림조차 없다. 다만, 자연스럽게 묻어나는 이들 가족사를 통해서 느낄 수 있는 건, 가족애의 한 단상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혈연관계로 맺어진 가족이기에, 모든 걸 용서하고 화해하며 살아가야 할 것 같은 강박에서 벗어나, 영화적인 극단과 비약을 통해서 해학을 곁들인다. 보편적으로 봤을 때, 그렇게 못 잡아먹듯 치고 박는 형제 사이가 어디 있으며, 오빠 앞에서 쌍욕을 하는 여동생과 그런 삼촌들을 보며 혀를 끌끌 차는 되바라진 조카 모습에서 다소 '비정상'이라 느낄 정도. 이 가족에서 정상처럼 보이는 건 '엄마' 뿐이다. 우리시대 어머니들이 해온 것처럼, 자식 뒷바라지에 모든 것을 걸며 그렇게 키웠지만, 커서도 못난 짓을 하더라도 그저 자식이기에 보듬는 착한(?) 어머니상이 그대로 투영된다. 그런데 이런 어머니의 과거사가 이들 가족의 갈등 국면을 야기 시키며 위기로 치닫는다. 사실, 이들 삼남매는 아버지가 다르거나 어머니가 다른 이른바 콩가루 가족사가 있었던 것. (자세히는 언급하지 않는다. 동명의 원작소설 책표지 뒤편에도 나와 있는 설정) 그래서 그런가, 서로가 닮지 않았다?!

천명관 작가의 원작소설 <고령화가족>은 영화 보다 내용이 어둡고 세다고 한다. (소설 속 큰 형 '오함모'는 강간 전과까지 있다고 함) 필자는 읽어 보질 못했다. 그 이후에 나온 장편소설 <나의 삼촌 브루스 리>를 읽고서 이 소설을 알게 됐고, 영화 내내 스타일이 '나의 삼촌 브루스 리'와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성적 표현과 폭력성도 나오는 게) 어쨌든 원작의 무게감을 덜어내고 이야기 속 망한 영화감독 인모 역에 남 얘기 같지 않아서 연출하고 싶었다는 송해성 감독에게 나름의 성과가 있는 영화가 아니었을까. 2001년 <파이란> 이후 <우행시>, <역도산>과 <무적자>가 영화적 성과를 이루지 못한 채, 이번엔 오롯이 배우들에게 모든 걸 맡기 듯 그려낸 앙상블은 이 영화의 힘이기도 하다.

지질하면서도 욕과 몸으로 티격태격하는 두 형제의 통통 튀는 모습은 이 영화의 백미다. 배우 박해일과 윤제문이 아니면 나올 수 없는 그림을 제대로 보여주며 영화적 재미를 끌어 올렸다. 초중반에 나름 빵빵 터질 정도로. 패션니스타지만 걸걸한 역에도 잘 어울리는 공효진의 찰진 이혼녀 모습도 제격이고, 빵꾸똥꾸에서 훌쩍 커버린 진지희양도 요즈음 왕싸가지 타입의 청소년을 보듯 제대로다. 그간 영화상에서 진보적이고 속물적 어머니상에서 탈바꿈한 그저 착한 어머니상을 보여준 윤여정의 변신(?)은 극의 중심을 잡아준다. 이런 배우들 조합이 아니었다면 이 영화는 화제가 될 수도 없을 터. 그럼에도 영화는 이야기의 흐름상 초중반의 코믹에서 후반으로 갈수록 의도된 설정의 화해 국면의 이질감까지 선사했지만, 그마저도 배우들의 호연으로 잘 갈무리됐다. 극중 화자이기도 한 인모를 통해서 엄마가 햇살을 받으며 환하게 웃은 것처럼. 



개인적으로 이 영화를 통해서 인상 깊었던 씬은 위의 두 가지 장면이다. 예고편에서 나온 것이기도 한데, 매일 저녁 삼겹살을 구워먹는 통에 질리기도 한 찰나에, 바람 한 번 쐬러 가고 싶다는 엄마의 제안에 온 가족이 미연의 새 남친 차에 낑겨서 가까운 바다 구경을 하러 간 씬. 그곳에서 다소 어색하지만 웃음을 짓는 모습은 이 가족이 유일하게 행복해하는 장면으로 남는다. 물론 후에 결혼식 장면도 있었지만. 바닷가에서 찍은 가족사진이야말로 그나마 한모네가 단란해질 구석을 엿보이게 만든다. 그런데 그 단란함은 여지없이 무너진다. 저녁에 조개구이와 회를 거하게 먹는 식사 장면에서 여동생 미연이 오빠 인모의 속을 긁어 놓으면서 분위기는 험악해지고, 옆 테이블의 남자들과 싸움이 일면서 한바탕 소동을 일어난 것. 한 자리에서 그러지 말던지 애먼 소주를 들이키는 엄마의 모습에서 영화는 나름의 미적 성취를 이룬다. '다 사는 게 그런 거지'하는 보편적 그림이 관통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현실적인 데 기반 하면서도 극단과 해학을 오간 가족 솔루션일지라도, 케케묵은 느낌의 식구란 단어를 다시금 떠올리게 만들며 의미 있게 그려낸 '고령화가족'은 가족영화의 계보에서 꽤 중요하게 회자되지 않을까. 가족 얘기라서 낯설지 않고, 뻔해 보이면서도 캐릭터가 확실해서 잔재미가 많은 그래서 더 와 닿는, 각자 위치에서 오늘도 화이팅이다. 어떻게, 당신의 식구는 안녕하신가.

예고편 : http://movie.naver.com/movie/bi/mi/mediaView.nhn?code=97693&mid=20360#tab

ps : 이 영화의 관람 등급에 대한 얘기가 있는 것 같다. 분명 가족영화긴 한데. 캐릭터 상 워낙 거친 삼남매라서 그런지, 티격태격하면서 욕설 난무에 담배 피는 장면이 많고, 대화들조차 다소 걸쭉한 측면이 있다. 큰 형의 변태 짓까지. 떡영화 찍는 것에 고심한 인모가 마지막에 떡씬을 찍는 것도 그렇고, 15세 관람가지만 청소년 관람불가라 해도 무방. 그래서 초딩들은 보여주기가 애매하다. 지희가 실제로도 15살이구나..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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