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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황후, 역사 왜곡으로 점철된 퓨전사극의 극치 └ 사극관련들



방송 전부터 숱한 화제를 낳으며 이래저래 주목을 끈 MBC 새 월화드라마 '기황후'가 어제(28일) 첫 방영됐다. 단연코 화제가 된 건 드라마의 외피가 아닌, 바로 내용에 가지고 벌이는 설전 등이었다. 사극이라면 거쳐야 할 역사적 고증에 관한 문제가 대두된 것. 그전에 한국 사극에서 외국의 인물을 주인공으로 그리는 작품을 만날 줄이야 누가 알았을까. (이러다 측천무후도 나올 판) 그것도 어느 정도 알려지고 나름 후세에 칭송받는 인물이라면 모를까. 중국 역사에서도 내놓는 악녀열전에서도 빠지지 않는 기황후를.. 단지 고려 공녀 출신에서 황후에 자리에 올라 30여 년간 원나라 몽골제국을 쥐락펴락했다는 기개에 감복해 그려 보겠다는 기획의도가 대단하게 보일 정도다. 극본을 맡은 부부 작가는 물론 연출자부터 출연진 배우까지 드라마는 드라마로 봐 달라며 앓는 소리를 했다. 그러고선 우린 허구를 추구하며 픽션이 70% 이상 되니, 그냥 편하게 재밌는 드라마로 보시면 된다고 너스레까지 떨었다. 그럼, 이것을 사극이라 할 수 있는가. 엄연히 역사적 인물을 주인공을 두고 그리면서 온갖 치장하고 미화만 시킨다면 그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대륙을 품은 철의 여인"이라니..



공식 홈페이지 : http://www.imbc.com/broad/tv/drama/empress/

우선, 기황후만 보더라도 사실 그에 대한 기록은 거의 없다. 생몰년이 없어 어디서 나고 자라 원나라에 끌려가 어떤 고초를 겪었으며, 황후 자리에 올라 통치를 했는지 세세한 사항은 없다. 다만 그녀가 황후 자리에 있을 때, 오라버니 기철이 고려에서 권신으로 악행을 저지르는 동안 방관만 하다가, 공민왕에게 척살당하자 도리어 고려를 정벌하고자 군대를 일으킨 장본인이다. 고려인의 피가 흐를지언정 조국에 칼을 겨눈 여자였다. 더군다나 자신의 신분적 트라우마로 인해 오히려 공녀나 환관 조공을 면제시키지 않는 등, 끊임없이 고려 조정에 영향력을 행사하며 괴롭혀 왔다. 이런 단선적인 기록만 보더라도 기황후는 고려와는 견원지간에 놓인 인물이다. 그러다 보니 제작진 측에선 이런 기황후의 활약상(?) 대신, 완전 픽션으로 재구성해 황후의 자리에 오르는 과정까지만 그리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즉, 황후 이후에 얘기는 하지 않겠다는 거. 집권 이후를 그리는 데 어느 정도 부담을 느낀 건 확실하다. 그렇다면 제목 '기황후' 의미가 있는 것일까. ;;

기실 이런 역사적 역할이라면 누가 뭐래도 예전 <신돈>에서 김혜리가 보여준 악녀 포스의 기황후가 제대로였다. 오빠 기철 역 이대연의 연기도 깔맞춤된 권신이었고. 그러다 보니 이번 기황후는 위의 캐릭터 설명을 보더라도, 완전 픽션으로 재구성한 무협지 수준에 가깝다. 어머니를 죽인 원수에게 복수하고자 신분을 숨기고 남장여자로 활약하면서 원나라 황태제를 구하기도 하고, 원 조정에 끌려가 계략에 휘말리다가 구사일생으로 사는 등, 한마디로 '기황후 리즈의 재구성'이라 할만하다. 그래서 1회부터 한국 여전사 급의 액션과 비주얼로 각인된 여배우 하지원은 남장여자로 변신해 등장했다. 원나라 황후의 자리에 오르고 먼 발치에서 즉위식을 쳐다본 왕유에게 눈길 한 번 주고 눈물을 머금으며 과거로 회귀. 그녀의 파란만장한 픽션은 그렇게 시작된 것이다.  



사실 본 드라마에서 뭇매를 많이 맞은 건 기황후도 그렇지만, 더 큰 문제는 남자 주인공에 있다. 고려 왕들 중에 막장 중에 막장으로 손꼽는 치마 두른 여자라면 새엄마든 이복동생이든 자기 여자로 만드는 신기를 발휘한 충혜왕 '왕정'. 원나라에서 온갖 갖은 고초와 시련을 겪은 부왕 충숙왕의 맏아들이기도 한 그는, 날마다 계집질에 노는 데만 정신이 팔려 원나라에 붙잡혀 가 따끔하게 혼쭐이 나는 굴욕을 맛보고, 충숙왕을 다시 왕위에 앉히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원에서도 손을 놓을 정도로 막장 군주였던 것. 도무지 나랏 일에 관심이 없어, 부왕의 후궁을 자기 후궁으로 되삼거나 관리의 부인들을 욕보이는 등 천하의 난봉꾼에 폭군이었다. 막장 권신 기철조차도 이를 못 봐주고, 충혜왕을 폐위시켜 달라는 건의문을 원나라에 보낼 정도였으니 말이다. 이로 인해 그는 원나라에서 파견된 사신들에게 체포돼(?) 끌려가 귀양 가는 도중 30세 나이로 목숨을 잃었다. 아마도 독살된 것으로 추정되지만 정확한 건 아니다. 그러나 확실한 건, 이 소식을 들은 고려 사람들은 아무도 슬퍼하지 않았고 오히려 기뻐 날뛰는 사람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그만큼 충혜왕 왕정이 후대에 남긴 건 아무 것도 없으며, 오로지 패륜과 불륜 그리고 악행 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이런 충혜를 '기황후'에서 자주적인 국권을 회복하며 고려를 위해 애쓴 왕으로 그린다 해서 난리가 났었다. 도대체 작가는 간단한 자료 조사라도 한 것인지, 드라마 전개상 불가피한 왜곡이 있을 수 있다손 치더라도, 엄연히 폭군으로 기록된 충혜왕을 그렇게 그린다는 자체부터가 대놓고 역사 왜곡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그러다가 너무 뭇매를 맞으니까, 방송 바로 전에 캐릭터를 둔갑시켜 버렸다. 왕정이 아닌 가상의 왕유라는 인물로 바꿔 버린 것. 그럼 왕유가 충혜란 말인가. 물론 그건 아닐지다. 그러나 허구의 왕세자 왕유로 대치시키면서 문제는 더 커져버렸다. 애초에 기획한대로 기승냥과 왕정의 로맨스 자체도 문제지만, 한쪽은 엄연히 존재한 역사적 인물이고 한쪽은 허구 인물로 그려 놓으면서 반쪽자리 구도로 전락해 버린 것이다. 왕유는 말 그대로 투명인간 모드. 고려 왕세자지만 허구의 인물이라서 기황후 기승냥과 이야기는 신빙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어차피 제작진에서 허구로 점철됐다고 못을 박고 있으니 상관은 없겠지만..

그럼 역사적 인물 원나라 순제는 뭥미?! 무사 백동수에서 원나라 황제 타환으로 돌아온 지창욱만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될지도. 원나라 황실마저도 왜곡이 또 들어갈지 모르겠지만, 고려 역사의 왜곡을 피하고자 급조된 가상의 왕 왕유로 인해 왕실의 권력투쟁은 물론 흔한 삼각구도도 애초부터 깨져버렸다. 그러다 보니, 충혜의 부왕인 충숙왕이나 그의 할아버지 충선왕은 언급조차 되질 못한다. 왕유라는 놈은 애초에 고려사에 존재하지 않은 인물이기 때문이다. 이래저래 부메랑이 된 꼴이다. 이로 인해, 왕유가 병맛으로 설정되면서 역할을 맡은 주진모는 아쉬운 필모를 기록하게 될지도. 영화 <쌍화점>에서 공민왕 역을 맡으며 애완소년들 중 조인성과 므훗한 브로맨스를 보이더니, 이젠 막장 군주에서 허구의 한량 군주로 갈아타며 사극 배역에 있어서도 재미난(?) 오점을 남기게 됐다. 나중에 어떤 평가가 내려질지 참...

왕세자 왕유와 대척점에 선 인물 '왕고'를 유심히 볼 필요가 있다. 이 인사는 역사적 실존 인물이다. 오랜만에 이재용이 자신의 악역 아우라를 내뿜을 수 있는 제 역할을 맡은 듯 싶다. 왕고는 한마디로 기철과 같은 친원파이자 권신이다. 충렬왕의 손자이자 충선왕의 조카다. 특히 충선왕은 왕고를 아들처럼 길렀으며 정이 각별했다고 한다. 그래서 충선왕은 왕고를 자기 아들 충숙왕 다음으로 왕위에 오를 세자로 책봉하기도 했다. 그게 바로 본 드라마의 시점이다. 여기서 충숙왕은 나오지 않았지만, 그의 측근들이 '저하'로 부르며 사사건건 고려 조정에서 입지를 넓히고 있다. 자신을 총애하던 충선왕 덕에 심양왕에 된 왕고는 충숙왕을 없애고 하루빨리 고려 왕이 되고자 야욕을 드러낸 것. 기록엔 원 조정과 결탁해 영종에게 보고해 고려 국왕을 몰아내는 데 앞장서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왕이 되지 못했다. 생을 마감하는 순간까지 국왕을 대신해 끊임없이 권력을 휘두르며 충숙왕을 따르는 신하들을 귀양 보내는 등, 고려 최고의 권력자로 권세를 누렸다. 이재용이기에 더욱 기대되는 역사적 고려 권신 '왕고'. 허구로 내세운 왕유랑 어떤 대결을 펼칠지가 유일한 관전 포인트가 될 터. 하지만 앞서 언급했듯이, 천하의 폭군 충혜왕을 없애 버리면서 이야기는 애초부터 먼산으로 가버렸고, 안이하게 접근한 역사 왜곡과 허구로 점철된 퓨전사극의 극치로 내달릴 판이다. 그렇게 하지원 특유의 캔디형 캐릭터는 사극에서도 시동을 걸고 있다. 과연 호불호의 극단으로 내몰린 상황에서 선전할지는 두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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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안젤라 2013/10/29 09:47 # 답글

    차라리 충혜말고 충숙왕과 기황후를 역고 그대신 왕고,충숙,기황후,충숙왕의 아내인 몽골공주를 나이대를 비슷하게 역사왜곡하는것이 나을 것같은데....
  • 엠엘강호 2013/10/30 01:50 #

    이미 역사적 연표나 생몰년을 무시하는 경우라면 그게 가능할 수도 있겠으나.. 일단 충혜가 공중분해된 이상, 그것도 의미가 있을지 모르겠네요...
  • 을파소 2013/10/29 09:56 # 답글

    이 드라마 초기에 나온 보도자료에 작가를 '뛰어난 역사고증'의 전력이 있는 양 소개하다가 역사왜곡 비판이 커지니 슬그머니 그 수식어를 빼버렸죠. 그걸 보면 역사왜곡이 여론화되니 70%가 허구니 하지 아님 재해석 타령하고 있었을 겁니다.
  • 엠엘강호 2013/10/30 01:54 #

    아니 뛰어난 역사고증이라고 운운한 그 부부작가는 충혜왕에 대해서 구글 검색도 안해봤나보죠.. 고려왕 중에 손꼽는 폭군이었는데.. 그걸 미화시켜 기황후와 벌인 최고의 로맨틱가이로 만들려 했다니.. 그걸 모르고 맡은 주진모도 참.. 그런데 이젠 가짜 왕세자가 됐으니 마음대로 둘이 은애하면 되겠네요..
  • 셰이크 2013/10/29 12:24 # 답글

    인물에 대한 기본적인 사실도 전부 창작으로 하고 시대배경도 사실상 원제국이라 볼 근거가 하나도 없을때 굳이 사극의 탈을 계속 쓰고 있는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기황후라는 역사인물의 이름만 제거해버리면 욕먹지 않는 무협물이 될 텐데 말이죠.
  • 엠엘강호 2013/10/30 01:57 #

    그러게 말이죠. 굳이 사극이 아니더라도, '해품달'처럼 완전 픽션으로 가도 괜찮을텐데. 역사적 인물 기황후 존재 때문에 딱 막혀버린 느낌이랄까요. 왜곡을 넘어선 지멋대로 기황후 리즈의 재구성이 될 듯..
  • 힘세고강한왈도 2013/10/29 14:47 # 답글

    웬만한 건 좋게 봐 주시는 강호님이 깔 정도면
  • 엠엘강호 2013/10/30 02:00 #

    ㅋㅋ.. 그런가요. 제가 웬간한 건 좋게 봐 주었나요..ㅎ 기황후를 언플이 빨아줄 때 저라도 까줘야 나름 대비와 평행을 이루죠. 너무 칭찬 일색이면 그게 더 이상한 거라는...
  • Real 2013/10/30 01:03 # 답글

    뉴스에서 결국 제작진이 역사왜곡문제때문에 픽션으로 바뀌는걸로 논란종결을 했다고 하더군요. 저는 안본다고 선언한 입장이라 안보고 있지만.. 아예 사극을 빙자한 페럴월드가 되었다고 봐야하지 않을까요?^^
  • 엠엘강호 2013/10/30 02:06 #

    아니 픽션으로 바꾸면 능사인지 되묻고 싶을 정도네요. 논란이 종결됐으니 이젠 그만 하라는 모드인지.. 어차피 내년 4월까지 갈 50부작 대작이기에.. 왜곡은 간간히 터져나올 겁니다. 그쪽 원나라도 그렇고.. 여튼 전 이 사극이 '기황후 리즈 시절의 재구성'이라 명명 짓고 싶네요. 충혜가 아닌 왕유와 원 순제 사이의 파격의 초특급울트라파워판타스틱무협액션퓨전사극삼각로맨스드라마.. 없는 게 없다는.. ㅎ
  • 듀얼코어 2013/10/30 23:18 # 답글

    역사적 고증 잘된 드라마임 -> 욕먹음 -> 이거 픽션 ㅎㅎ

    이거 어디서 많이 보던 패턴인데..
  • 엠엘강호 2013/10/31 09:57 #

    사극이라면 어쩔 수 없는 피할 수 없는 숙명적인 패턴. 근데 기황후는 좀 노골적이라는 게 문제.. ㅎ
  • 유현 2013/11/24 09:57 # 삭제 답글

    기황후 기승양은 빠이엔티무르,즉 공민왕에게 원한이 있는 존재이기도 하고요.공민왕은 기황후의 친오빠 기철과 다른 가족들을 함께 죽인 원수이자 원한의 대상이면서 노국공주라는 평생의 연인이 있었지만 노국공주는 공민왕의 아기를 낳다가 병이 들어 세상을 떠났다고 해요.
  • 엠엘강호 2013/11/25 08:20 #

    위 글에도 언급했다시피.. 이런 역사적 에피소드는 이미 사극 '신돈'을 통해서 제대로 나왔었죠.
    공민왕과 노국공주, 기황후와 기철. 하지만 여기 사극에선 기철이 나오지 않는다는 거. 왕고가 대신하죠..
  • 유현 2013/12/23 21:02 # 삭제 답글

    배우 하지원이 연기하는 기승냥의 오빠 기철은 자기의 다른 가족들과 함께 공민왕의 손에 죽었고,타환(지창욱)과 왕유(주진모)는 기철의 여동생을 두고 삼각관계(삼각 스캔들,삼각로맨스)를 형성하면서 서로 연적으로 맞서게 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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