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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성현 공자의 나라 노(魯)나라 삼환씨 전정(專政) └ 열국지관련

춘추시대의 대철학자이자 대성현 또는 소왕(素王: 제왕의 지위는 아니지만 제왕 못지 않은 영향을 후세에 남긴 성현을 지칭하는 말로 유가에서는 공자를 도가에서는 노자를 소왕이라 지칭)이라 불리는 공자(孔子 B.C 552~479).. 그가 춘추시대에 각국을 주유천하하며 설파한 수많은 주옥같은 언변들이 있음을 누구나 알고있다 . 뭐.. 공자 가라사대~~ 라는 말도 현시대에 인구의 회자어가 됐으니 그가 끼치는 영향은 사뭇 크다. 하지만.. 그가 노(魯)나라에서 어떻게 태어났고.. 또 주목을 받기 시작하면서 당시 노나라가 삼환에 의해서 정치가 좌지우지 되며 내분에 휩싸일때.. 그가 한 역할에 대해서 자세히 아는 이는 많지 없다. 이에 공자의 출생과 당시, 노나라 정권에 환멸에 느껴 주유천하 하기전에 그의 내력을 간단히 살펴보면 이렇다.

먼저, 공자는 알다싶이 노나라에서 태어났는데.. 그의 아버지는 노나라의 장군 숙량흘(叔梁紇)로 추읍의 대부로 있으면서 힘센 용사였던 사람으로 처음 시씨랑 결혼해서는 딸만 낳고 아들을 못낳자 첩에서 맹피를 낳았지만 그는 불구였다. 이에 그는 늦지막히 안씨 집안의 막내딸 징재와 결혼해서 중니산에서 기도 드려 아들을 낳았으니 그가 바로 공자다. 공자는 태어나면서부터 용모가 매우 비범해 입술은 소 입술 같고, 손바닥은 범 발바닥 같고, 어깨는 원앙새 같고, 등은 거북같고, 정수리는 쟁반을 엎어놓은듯 생겼다는데.. 이건 뭐.. 골룸도 아니고 ..ㅎ 하지만 장성해서는 키가 9척 6촌이나 되었다 한다. 이렇게 공자는 중니산에서 기도 드려 얻은 아이라해서 이름은 구(丘)라 하고 자는 중니(仲尼)라고 한다. 암튼.. 큰인물의 출생이나 생김새는 무릇 범인과는 틀리다는거..ㅎ

이때 노나라는 권신인 계손의여에게 노소공이 쫓겨나면서 삼환(三桓)이라 불리는 계손씨, 맹손씨, 숙손씨의 삼가들의 세력이 커져 노나라는 세조각으로 나누어지는 망조를 보인다. 물론 이 삼환은 예전 노환공의 세 아들인 경보, 숙아, 계의 후계자 가문으로부터 출발했는데.. 노희공 초년에는 공자 경보의 난으로 삼환씨를 각각 성읍(맹손씨), 후읍(숙손씨), 비읍(계손씨)에 분봉해주면서 삼환의 단초가 된 것이다.

이후 삼환씨 세력이 강성해 지더니.. 저렇게 노소공이 계손씨에 의해서 국외로 추방되는 사태까지 발생한 것이다. 이후 삼환의 세력이 더욱 커져 능히 제어하지 못할 지경이 되자.. 노나라 공실의 위엄은 땅에 떨어지고 노나라 안에서의 하극상의 풍조는 비일비재했으니.. 이때부터 삼환씨 수하의 가손들도 득세한다. 특히 노소공을 쫓아낸 계손의여가 죽고 그의 아들 계손사가 계손씨를 이으면서 삼환은 각각 자신의 땅에 성을 쌓고 가신들을 세운다. 계손씨의 계손사는 불뉴, 맹손씨의 맹손무기는 염양, 숙손씨의 숙손주구는 약묘라는 가신들이 있었는데.. 이중 계손씨의 불뉴말고 또다른 가신중에 양호(陽虎)라는 인물이 있다.

양호는 노나라에서 반란을 일으켜 삼환씨 전권에 도전하고 나라를 위태롭게 만든 인물로 그는 누구인가? 계손사의 가신인데도 많은 재물과 인력을 자기 휘하에 끌어모아서 강력한 세력을 구축하더니.. 그 위세를 믿고 자신의 일당인 계오(계손사의 아우), 공서극(계손씨 일족), 공산불뉴(계손씨의 가신), 숙손첩, 숙중지(숙손씨 일족)등을 선동해 삼환가에 도전해 정권을 통차지하려고 반란을 일으킨 인물이다. 이에 삼환씨가 총력을 기울여 양호의 반란군을 격파하는 도중에 노정공의 신망을 받던 공자에게 신랄한 비판을 받고 거사가 실패하자.. 제나라로 도망가 제경공에게 구원요청 했다가 안영의 중재로 거부당하고..

또 송나라로 도주하다 다시 진나라로 도주해 조앙의 가신이 되어 진나라 삼분에 일조하게 된다. 또 양호의 반란이 진압되는 과정에서 권신 소정묘라는 인물이 있었는데.. 그 또한 공자의 신망을 시기하며 숙손가의 서출인 숙손첩과 작당하며 다른 가신의 세력과 공자에게 도전했다가.. 노정공 앞에서 공자의 으름장같은 분언에 그만 목이 잘리고.. 이를 지켜본 삼가 또한 온몸이 오싹해 졌다한다. 공자의 새로운 포스와 당시 공자의 무소불위 권세?를 엿볼 수 있음이다..ㅎ
이런 소정묘가 죽은 후로 공자의 뜻이 정치에 반영되면서 노정공과 삼가도 공자의 말이라면 사심없이 듣고.. 이에 공자는 기강을 세우고 예의를 가르치고 염치를 알게하면서 백성들은 안정되고 나라는 차츰 안정을 찾게된다. 하지만 이미 커질대로 커진 삼환씨의 전횡과 발호의 결과 노나라는 이삼류의 약소 국가로 전락하니.. 전국시대 이후 제나라의 부용국처럼 되다가 전국말 초나라에게 멸국당하고 만다. 암튼.. 이때 공자는 노나라의 혼미한 정치 현실과 삼환씨의 어지러운 전횡에 적잖은 실망과 환멸을 느낀 나머지 노정공마저 제경공이 보낸 선물과 미녀에 빠져살자.. 노나라를 떠나 B.C 498~484년까지 10년넘게 천하 열국을 두루 유람하며 각국 군주들에게 치국의 도를 설파하고 다닌다. 이때 제후들에게 문전박대하며 상가집 개라는 일화도 생긴거고..ㅎ

암튼.. 다시 고국으로 돌아와 남은 여생을 천하의 인재들을 모아 교육하는데 바쳤으니.. 그때 육경(六經: 시(詩), 서(書), 예(禮), 악(樂), 역(易), 춘추(春秋))을 정리하고 인의(仁義)와 효제(孝悌), 충서(忠恕)등을 근간으로 하는 인간 도덕질서의 회복을 지속적으로 설교하며.. 유교의 핵심 교조를 집대성 하게 된다. 물론, 공자와 그 문하 중 가장 뛰어난 72제들의 문답과 교훈 내용을 담은 논어(論語)가 저술되어.. 공사 사상의 진수가 오늘날까지 살아서 전해지고 있음은 두말하면 잔소리다. 그런데.. 논어 다 읽어 보신분? ㅎ 암튼.. 공자가 있어 노나라가 안정을 찾아갈때 백성들 사이에 다음과 같은 노래가 유행했단다.

거룩하신 성인이 마침                           哀衣章甫
우리에게 강림하셨도다                         來適我所
거룩하신 성인께서                               章甫哀衣
공평이 우리를 위로하시는도다.              慰我無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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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L江湖.. : 공자 춘추전국시대 - 적벽대전류의 영화는 절대 아니다. 2010-02-12 00:27:37 #

    ... 제지하고 노나라를 떠나 10여년간 주유천하 한 일은 유명하다. 이에 대해서 내가 예전에 공자에 대해서 정리한 것이 있는데 참고해 보시길.. http://mlkangho.egloos.com/9529051 결국, 영화는 어디를 선택했나면 바로 후자쪽이다. 즉, 천하의 지략가로 그려서 오버하지도 않았고, 그의 삶중 수 많은 제자들을 거느린 ... more

덧글

  • SKY樂 2009/04/16 10:56 # 답글

    인간 도적질서라니요... 왠지 절묘한 오타가..

    논어는 예전에 한번 읽어보긴 했는데 나중에 공자가 살던 시대적 상황을 이해하게 되었을때 많은 이해를 하게되었지요.
  • 엠엘강호 2009/04/16 10:58 #

    ㅎㅎ.. 들켰네요.. ㅋ 그래도 수정해야놔야죠..ㅎ

    음.. 읽어보셨군요.. 저두 언젠가 읽어봐야 할텐데.. 공자님 가라사대의 원전을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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