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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오기, 노애의 반란과 여불위의 말로와 이사와 한비자 └ 열국지관련

여불위가 조나라에서 구출해 진나라 권좌에 앉힌 자초 진장양왕이 즉위후 삼년만에 죽고.. 그 뒤를 이어 장양왕의 아들 정(政)이 등극하면서 여불위의 무소불위 권력시대를 연 애기는 바로전에 다루었는데.. 이때 진왕 정 7년때 크나큰 사건이 벌어진다. 여불위가 저번 오국 연합국의 공격에 보복코자 조나라를 공격하는 과정에서.. 진왕 정의 동생인 장안군(長安君) 성교(成嶠)가 출전하게 되었는데..

이때 성교를 휘하에 모시고 있던 장수 번오기(樊於期)가 평소 여불위 권세의 비행과 전횡에 불만을 가져 오던차에 장안군 성교에게.. 지금 진왕 정은 여불위 자식인지라 정통이 아니다. 그래서 진왕 정에게 복종할수 없고 진정한 영씨인 장안군 당신만이 권좌를 이어받아 왕통을 바로잡아야 한다고 설득한다. 이에 둘은 조를 치다 말고 말머리를 돌려 둔류땅에서 진왕 정과 여불위에 대해 반란을 일으키게 된다.

하지만, 초반 기세를 잡는가 싶더니만.. 진의 장수 장당과 왕전등이 군사를 이끌고 말장 양단화의 첩보로 둔류성을 포위하자.. 장안군 성교는 진왕이 죽이라는 왕명에 슬피울다 자살하니 이를 왕전이 성교의 목을 끊어 그 일당을 모두 도륙하고.. 번오기는 연나라로 도망친다. 이후 번오기는 연나라의 세자 단(연왕 희가 진에 볼모로 보내서 수년간 잡혀있다 도망감)에게 진왕 정 시해를 위해서 스스로 목을 바치는데.. 암튼, 번오기와 장안군의 난은 평정이 되고 만다. (B.C.239년) 염옹이 시로써 이일을 탄식한 것이 있다.

왕위를 침범한 여씨의 자식을 없애버려야 했을 텐데
세상사는 알 수 없는 일이다. 당시 형편이 어떠했던고?
갖은 고생을 다하며 둔류성을 지켰으나 결국 진나라 영씨 왕통이 끊어지고 말았으니
이젠 여씨의 죄가 한갓 서책으로 전할 뿐이다.

장안군의 반란이 평정되자 진왕 정이 조나라를 쳐서 대장 몽오의 원수를 갚는 과정에서 불현듯 나타난 열두살 소년 감나(소양왕때 정승을 지낸 감무의 손자)의 쩌는 설파력으로 연나라를 가기 싫다던 장수 장당을 설득하고 조나라 도양왕과 담판끝에 하간땅과 다섯 성을 얻어오자 그는 상경으로 중용돼 최연소 진나라 승상자리 기록을 세우지만.. 오래 살지 못하고 곧바로 단명하고 마니.. 지나가는 애기 정도가 되겠다.. ㅎ

암튼, 장안군 반란이후 자신에 대한 헛소문?을 잠재운 여불위는 무사안위에 빠지며 왕태후 조희와 계속 놀아나는데.. 하지만 여불위는 진왕 정이 장성해질수록 영특하고 총명했기에.. 자기의 불륜 행위가 슬며시 겁이 나기 시작하고 왕태후의 음탕한 욕심은 식을줄 몰랐으니.. 자기 대신 다른 사람을 붙여주게 된다. 그는 노대라는 시정잡배로 양물이 크기로 유명해 부녀자들과 놀아나면서 노애(嫪毐)라고 불렸는데.. 이를 여불위가 보고서 그를 사인으로 삼아 궁궐투입에 기회를 엿본다.

하지만 그냥 남자로 붙여주면 탈이 많으니.. 부형(腐刑 : 거시기를 거세하는 형벌)으로 위장해서 거짓환관으로 만들어 왕태후 조희에게 붙여준다. 이에 조희는 노애와 매사 분탕질에 황홀경에 빠지며 여불위와는 차원이 틀렸으니 그럴만도..ㅎ

이에 조희는 노애와 좀더 밀통하고자 함양을 떠나 옹주에서 둘이 칩거하며 자식도 낳고 노애는 장신후의 칭호도 받으며 여불위에 버금가는 권세에 안하무인 방자하게 굴더니.. 차츰 자멸 분위기..ㅎ 결국, 노애는 잔치자리에서 자신이 진왕의 아버지뻘 되는 사람이며 망발을 하더니 이게 진왕 정에 귀에 들어가면서.. 

노애가 가짜 환관으로 모후와 놀아나고 모반까지 계획했다는 사실에 분노한 진왕이
장수 환의에게 군사를 주어 노애를 치고 그가 낳은 사생자 두 아이도 포대에 쌓아 쳐죽이고 노애의 삼족까지 멸족시킨후 왕태후도 역양궁에 유폐시켜 버린다. 이때 태후를 유폐한것은 불효라고 충언한 신료 27인도 처형시키니.. 이때 제나라 출신의 모초라는 사람이 나타나 진왕 정에게 군주가 천륜과 천도를 저버리고 불효불충하면 천명과 민심을 얻지 못해 나라를 지키지 못한다는 논리를 피력함으로써..

진왕을 감복시켜 국가의 존망지계를 일깨워주며 설파하니.. 어머니 장양태후를 다시 함양성으로 모시고 오게 된다. 마치 예전에 정나라 정장공이 동생의 반란을 진압후 모후인 강씨를 유폐시킨뒤 영고숙이 자식의 도리를 설파하자 강씨와 조우한 장면과 흡사하다는.. ㅎ 

이렇게, 이 노애의 난이 평정되자 여불위는 당연 좌불안석 자신이 노애를 천거했으니.. 결국 그는 진왕 정에게 승상 지위와 식읍, 작록을 박탈당하고 쫓겨난다. 하지만 여불위는 계속되는 진왕의 겁박과 지내온 신세를 한타하며 독주를 마시고 자결하며 생을 마감하니(B.C.237년).. 그가 탄식하며 한 말은 이렇다.

"그렇다! 내 원래 상인의 자식으로 진나라를 가로채려고 음모를 꾸렸고, 지난날에 데리고 살았지만 일단 남의 아내가 되어버린 여자를 다시 간음했으며, 왕을 둘씩이나 독살했고, 진나라 진짜 왕인 영씨의 대를 끊고 내 자식을 들여앉혔으니 황천이 이러한 나를 어찌 용납할 리 있으리오! 오늘날 죽는다 해도 도리어 늦은 편이다!"


이후 여불위가 생전에 양성한 삼천여명의 빈객들이 계속 여불위를 추모하자 진왕 정은 그들에게 추방령을 내리고.. 이때 여불위의 문하에 있어 쫓겨나게 된 이사가 이렇게 쫓겨날 수 없다고 생각하고.. 진왕 정 앞에 나가서 모두를 포용해야 천하를 가질 수 있음을 설파하니.. 곧 추방령을 해제하고 이사를 중용하며 전면에 나서게 된다. 

그럼, 이사(李斯)는 과연 누구인가? 그는 전국시대 말기의 대표적이 법가 사상가이자 정치가로써 유가의 집대성자인 순자(筍子)의 문하로 이렇게 진왕 정에게 능력을 인정받아 책사가 된 뒤 법치주의를 정착시키고 성문법 체계를 강화하고자 고군분투하면서..진의 통일과 제국의 승상이 되어 군현제 실시, 화폐, 도로, 도량형 통일과 분서갱유 정책들을 입안하거나 권고했으며..

정치적으로 많은 치적을 남긴건 사실이지만 권모술수에 능하고 시기심이 강하여 동문수학했던 한비자를 자결케 만든 인물이기 하다. 후에 이사는 진시황이 5차 순행길에서 병사했을때 그가 남긴 탁고를 환관 조고와 위조해 2세 호해를 앉히며 진나라를 망국으로 이끌었으니.. 그 또한 조고 손에 무참히 죽고만다. 

그럼, 동문 이사때문에 죽은 한비자(韓非子)는 누구인가? 그는 한나라의 공자로 그도 이사처럼 순자의 문하에서 동문수학하며 법가 이론들을 집대성해서 법가 사상의 통치 이론 확립과 큰 체계를 세우며 법(法), 세(勢), 술(術)을 종합한 '한비자'를 통해서 계통적으로 피력한다. 이때 진시황이 제왕의 학을 차분히 정리한 한비자를 읽어보고 감동하여 흠모했다고 한다. 하지만 한비자는 원래 말더듬이었다는데 설파력은 어떠했을지는..ㅎ

암튼, 이때 한나라의 마지막 군주 안(安)은 진나라가 공격을 해오자 한비자를 진에 사신으로 보내 진왕의 환심을 사서.. 한나라에 대한 공격을 늦추고 대신 조, 위나라로부터 정벌하도록 설득하여 시간을 벌어보자는 계책을 세우는데.. 이때 동문수학했던 이사가 한비자의 재능을 시기한 나머지.. 한비자 공자 비는 지난날의 소진처럼 진과 다른 나라 사이를 이간시키며 우리 진을 위해서 맹상군, 평원군처럼 힘쓰지 않을 것이니 후환이 있기전 참소하라 간하니..

한비자는 감금당하고 옥중에서 목을 매고 자결하고 만다. 이로써 한왕 안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가고 위대한 사상가인 한비자도 억울하게 죽음을 당하고 만것이다. 이로써 진의 정복전쟁에서 제일 먼저 멸망한 것은.. 삼진(三晉)중 하나인 한(韓)나라였다는 사실.. 이 애기는 다음글에서..ㅎ





덧글

  • 네비아찌 2009/04/29 14:03 # 답글

    진왕 정의 축객령은 韓 출신의 운하 기술자 정국이 운하를 파면서 진의 지맥을 건드린 사건 때문에 내려졌다가 이사의 변론으로 철회된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여불위 세력의 숙청과도 관련이 있었나 보네요.
    노애의 양물이 그렇게 컸는데 환관으로 위장한다 해도 양물이 옷 위로 드러나서 금방 들통날거 같은데, 또 어떻게 잘 싸맸나 봅니다.^^;
  • 엠엘강호 2009/04/29 14:33 #

    네.. 여불위 세력 추방령을 내린 축객령이 이사의 간언으로 해제됐다고 합니다. 이사 자신도 살아야 했기에..ㅎ 그리고, 노애의 양물은 일화중 거시기로 수레바퀴로 돌렸다는데..ㅎ 암튼.. 노애 사건으로 진왕 정이 여자에 대한 불신과 성정이 포악해졌다고 하더군요.. 다큐에 의하면..
  • 새로운나 2009/04/29 17:31 # 답글

    영정이 자기 출신때문에 꽤나 스트레스를 받았겠어요. 진짜 여불위자식인지는 모르겠지만.
    노애는 어느정도였기에 수레바퀴를 돌리는지^^;;;;
    아..그리고 링크 신고합니다. 요새 고대사에 관심이 많은데 볼거리가 많네요.^^
  • 엠엘강호 2009/04/29 17:54 #

    맞습니다.. 자신의 출신성분을 알게?되면서 고뇌에 쌓이고.. 그게 다른쪽으로 표출되다보니 폭압의 정치를 하게됐다는데.. 사마천의 사기에서도 시황제를 여불위의 핏줄로 기록했는데.. 아마도 시황제가 여씨라는 소문은 당대에 넓게 유포된듯 한데.. 뭐.. 현재로써는 그 진위를 판별할 방법이 없으니.. 영씨인지 여씨인지 하는 문제보다는 진시황이 남긴 업적이겠죠.. 글고, 노대는 정말 대물이었다는 기록이 있던데.. 조희가 뿅갈만 했겠다는..ㅎ

    그리고, 링크 신고까지야.. 종종 들려서 놀다 가세요.. ^^
  • 에드워디안 2010/04/20 17:43 # 답글

    곽말약에 의하면 진시황이 여불위의 사생아란 소문은, 서한초기 권세를 농단했던 여씨들이 유포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합니다. 진시황이 여씨인만큼 자신들의 정통성을 내세워 유씨왕조를 대신하려는 속셈이었다는데, 나름 개연성이 있는 것 같습니다.

    진시황이 누구의 소생인지 진위여부를 떠나 일단, 그가 태어난 곳은 진나라 본국이 아닌 조의 수도 한단(邯鄲)이었지요. 흥미로운것은 장평에서 대승한 진군이 한단을 포위하고 공성전이 한창인 와중에, 성 안에서 영정이 태어났다고 합니다. 그 와중에 영정의 아버지(?) 자초(후의 진 장양왕)는 여불위의 주선으로 처자식을 적지에 내버려둔채 진나라로 돌아갔지요. 8년후 소양왕이 죽고 안국군(진 효문왕)이 즉위해 자초가 정식으로 태자에 책봉되고 나서야, 영정과 모친이 진나라에 갈 수 있었다 합니다.
  • 엠엘강호 2010/04/20 20:10 #

    사실 진시황과 여불위의 친자소송에 관한 이야기는 영원한 떡밥이지요.. ㅎ 더군다나.. 그의 아버지였다면 자초와 여불위 사이에 조나라에서 모색은 유명한 이야기고.. 이런것은 책뿐아니라.. 드라마 사극 '심진기'나 '여불위'에도 자세히 나와 있습니다. 말씀하신대로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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