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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조,위 멸망과 자객 형가의 진왕 암살기도 └ 열국지관련

진왕 정이 성교와 번오기의 반란과 노애의 반란을 평정하고 여불위가 자결하면서 그의 집권 후반은 이사가 승상으로 중용돼 전면에 나서면서 전국 육국 정복전쟁의 박차를 가한다. 시대순으로 애기한다면 삼진(三晉)중 한과 조가 먼저 멸망하는데.. 먼저, 한나라는 한비자를 통해서 진의 사정을 하러 갔다가 이사가 한비자를 참소하면서 한나라는 위기에 빠지며 첫주자로.. 곧바로 진의 장수 내사등이 10만 대군을 이끌고 한을 공격해 한왕 안을 포로로 잡고 영천군을 설치하니.. 그 예전 진(晉)의 정권을 잡았던 한궐의 후손들은 이렇게 멸국된다.(B.C.230년) 이어 진나라는 조를 치기위해서 조의 대신 곽개에게 황금으로 매수하니 곽개의 꾀임에 속아 조도양왕은 노장군 염파를 쓰지않고 초나라로 망명케하니 염파는 초나라에서 생을 마감한다.

이때 진은 조나라에 국상(조도양왕 훙거하고 조왕 천이 즉위)난 것을 틈타 대장 환의로 하여금 조나라 수도 한단으로 총출동한다. 이때 조나라는 야전의 명장 이목과 조총, 안취등이 응전하여 진군을 대패시키며 한숨을 돌린다. 이에 진나라는 쉽지 않음을 간파하고 진의 백전노장 왕전과 양단화로 조나라를 쳐들어가게 하고.. 조나라 승상 곽개를 또 매수하여 명장 이목에 대한 이간계를 써서 위나라로 출분케하고.. 조도양왕이 이목을 소환하는 과정에서 곽개가 역사들을 고용해 술을 권해 이목을 결박후 목을 끊어 죽였으니.. 사신이 시로써 이 일을 탄식한 것이 있다.

일찍이 이목이 진나라 군사를 물리치고 대 땅을 지켜 이름을 드날렸으니
그후로도 혼자서 조나라 전체를 떠받쳐왔도다.
그런데 어찌하여 곽개는 사리사욕에 눈이 멀어
하루 아침에 적군을 끌어들려 조나라를 망쳤느냐..


정말 염파와 이목을 내쫓은 곽개는 매국노 신발 넘이라는 .. 결국, 진나라는 명장 이목이 망명해 죽은것을 기회로 삼아 진의 백전노장 왕전과 양단화는 조나라 수도 한단을 다시 짓쳐들어가.. 조의 대장 조총과 부장 안취는 쉽게 무너지며 조왕 천(조도양왕의 서자)을 사로잡는다. 이때 조왕 천의 이복형 공자 가(조도양왕의 적자)는 조나라의 인근의 대땅으로 도망가 대왕(代王)으로 자립하는데..

이로써 조나라는 사실상 멸국된 것이다.(B.C.228년) 진문공 시절 고굉지신이었던 조쇠와 그의 아들 조돈(조순)은 진양공-성공-경공을 보필하며 패업을 유지했고.. 조삭에 이르러 멸문지화에 살아남은 조무가 조씨 집안을 계승해 조앙에 이어 조양자가 조나라를 세운 이후.. 7대를 지나 조무령왕때 호복을 입고 기마술로 패업을 일으키더니 효성왕-도양왕-천에 이르러 망하고 만것이다.

결국, 나라의 망조를 보면 곽개같은 매국노가 항상 있다는거.. 예전 장평대전에서
염파가 중간에 빠지면서 조괄을 써 대패한 것처럼.. 이번에도 그나마마지막 보루 염파와 이목을 빼놓고 나라를 지키려했으니 매국노 곽개가 조나라의 멸망을 가져온 것이다. 하지만 곽개의 말로도 조나라 멸망후 진왕을 따라 진나라 함양으로 들어갔다가.. 자신이 한단에 모아놓은 황금을 안가지고 온것을 잊고서 다시 가서.. 황금 보물을 챙기고 진나라로 돌아오는 길에 도적떼를 만나 뺏기고 그도 쳐죽임을 당했으니.. 나라를 판 자의 말로치곤 약하지만 정말 신발 넘이라는..

이어서 멸국의 정복전쟁 과정중에 또 하나의 암살 사건이 있었는데.. 이른바 자객 형가의 진왕 정 암살 사건.. 미수로 그쳤지만 만약에 성공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형가의 암살 사건을 간단히 살펴보면은.. 먼저 진나라에 볼모로 잡혀있던 세자 단이 수년간 고생끝에 탈출해 연나라로 돌아오면서 그가 진에 대한 복수심은 하루도 잊을 날이 없었으니.. 더군다나 한과 조를 멸망시킨 진왕의 정복전쟁에 사태가 더욱 급박해오자 세자 단은 전광 선생의 추천으로 형가(荊軻 : 원래 본관은 경씨(慶氏)로 제나라 대부 경봉의 후손이다)를 알게된다.

이때부터 형가와 지내며 암살 계획을 세우는데.. 이때 형가는 쉽지 않겠다며 대신 지금 연나라에 도망쳐온 진나라의 역장(반역을 일으킨 장수)번오기의 목이 필요하다고 하니.. 번오기는 그자리에 진왕 정 암살이라면 서슴없이 목을 베어 주는 대인배 기질을 보여준다. 

그리고, 독항(督亢 : 연나라에서 가장 비옥한 지역)땅의 지도를 들고 진왕 정을 암살하려고 한다. 이에 진나라로 온 형가는 진왕 정을 알현하는 자리에서 번오기의 목을 먼저 받치고 지도를 펼쳐보이는 과정에서 진왕 정의 옷소매를 잡아 끌여 오른손으로 칼을 가슴에 찔렀지만.. 옷자락만 찢어지며 진왕 정이 뒷걸음치며 도망치다가 칼을 뽑고 무신들이 형가를 잡아내 그 자리에서 즉결 처형하니.. 형가의 암살 기도는 실패하고 만다.(B.C.227년) 염옹이 시로써 이 일을 읊은 것이 있으니 이렇다.

홀로 비수를 품고 진나라 도읍 함양으로 갔으나
어찌하리오, 형가의 신용은 대단했지만 검술이 서툴렀도다.
장사는 돌아오지 않고 큰일마저 망쳤으니
죽은 번오기가 자기 머리를 돌려달라고 하게 되었구나!

이런 형가의 암살 미수 사건으로 죽다 살아나며 대노한 진왕 정은.. 연나라 수도 계를 공격해 연왕 희는 세자 단과 요동으로 우선 도망친다. 이어서 연나라를 멸국 지경까지 친 진왕은 이번에는 진 장군 왕전의 아들 왕분으로 하여금 위나라 수도 대량을 포위 공격하게 하고..때마침 닥친 장마를 십분 활용해 대량성 주위에 저수지를 파 물을 대량 저장한 뒤.. 그를 한꺼번에 떠뜨리는 수공법을 써서대량성을 침몰시켜 위왕 가(假)를 사로 잡고 위나라도 멸국시켰으니..

그 옛날
진문공을 모셨던 용장 위주의 후손들이 전국시대 위문후로 첫패권을 열고.. 위안리왕때 위기의 조나라를 구하며 활약했던 신릉군 공손 무기로 위세를 떨치더니 위왕 가대에 이르러 위나라는 이렇게 멸망한 것이다.(B.C.225년) 이후 남은건 세나라.. 이 애기는 다음장에서.. ㅎ






덧글

  • 새로운나 2009/04/30 15:51 # 답글

    곽개는 정말 죽어도 싼놈이네요. 조의 명장들이 저놈 때문에 다 쫓겨나니. 그래도 최후에는 죽어서 그나마 다행이려나.
  • 엠엘강호 2009/04/30 15:54 #

    곽개 정말 욕나오더군요.. 매국노 중에서 아주 상급이라는.. 신발넘..
  • candycat 2009/04/30 15:52 # 삭제 답글

    저는 개인적으로 형가하면 역수의 시가 마음에 들어서 한참 입에 달고 살았던 기억이 있네요^^

    역수의 찬바람은 아직도 가지지 않고
    떠나간 장사는 돌아올 줄 모르네

    맞게 기억하는지 모르지만.....뭐랄까 자신의 실패와 역사를 되돌릴 수 없다는 것을 예상하면서 떠나는 형가의 마음을 그대로 이야기하고 있는 것 같아서, 한참 감수성 예민하던 시기에는 이 대목을 보면서 약간 눈물을 찔끔했었던.....ㅋ
  • 엠엘강호 2009/04/30 15:59 #

    그게 형가의 술친구 고점리가 형가를 진으로 떠나보내며 지은 노래라죠..ㅎ

    바람이 쓸쓸하구나
    역수의 강물은 차다!
    장사가 한번 떠나감이여
    다시는 돌아오지 못하리!

    형가 애기는 아주 유명한 지라.. 역사물로 중드 '형가전기' 찾아보시면 있는데.. 전 나중에 볼 참입니다.. 거기서 고점리 역이 진왕 이세민에서 이세민역 하고 이번 신 삼국에서 여포역을 맡은 하윤동입니다..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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