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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연,제 멸망과 진시황의 전국통일로 열국지 마무리 └ 열국지관련

한,조,위를 멸국시키고 남은 세나라중 가장 강성한 초나라.. 이에 진나라는 위요의 계책으로 남방의 대국 초나라를 치는데 이게 쉽지 않다. 바로 초나라의 명장 항연이 버티고 있었기 때문인데.. 항연이 누구던가 바로 초한지의 주인공 항우의 조부다. 이런 초를 치기 위해서 진왕 정은 왕전에게 출전케하자 왕전이 초는 대국인지라 최소 60만이 필요하다고 하니.. 진왕 정은 그렇게까지 많이 필요할것 없다며 이신과 몽무에게 20만을 대군을 이끌고 초나라를 공격케 한다. 하지만 명장 항연에게 대패당하니.. 이때서야 진왕 정은 항연을 가볍게 본걸 후회하고 왕전을 다시 중용해 그의 말대로 60만 대군을 주어 몽무와 함께 초나라를 다시 치게 한다. 이때 왕전은 예전에 염파가 장평대전에서 왕흘과의 1차 전투에서 지리한 장기전을 한 것처럼.. 1년 가까이 군영만을 지켜며 공격하지 않는 지구전을 쓰면서 초나라 군사를 안심시킨후 기습 공격하여 대승을 거둔다.

이에 곧바로 초나라 수도 수춘을 함락시킨 후 초왕 부추(負芻 : 초애왕의 서형으로 애왕을 죽이고 왕위에 오름)를 포로로 잡고 초나라를 멸망시켜(B.C.223년) 진의 골치거리가 해결된다. 이후 항연은 부추의 동생 창평군을 수호하여 옛 오나라 땅이었던 난릉성으로 들어가 끝까지 저항했으나.. 창평군이 사망하고 성이 함락되자 그도 스스로 자결하고 만다. 이런 초나라 역사를 돌이켜보면 주환왕 16년에 초무왕은 왕이라 자칭하더니.. 5대를 지나 초장왕때 천하 패권을 잡았으며.. 다시 5대를 지나 초소왕은 손무와 오자서의 오나라에게 멸망당할뻔 하다가 6대를 지나 초위왕은 오와 월이 무너진 틈에 무찔러 천하의 반을 차지한 대국을 이루었다. 그 후 초회왕이 간신 근상의 말만 믿다가 굴원을 내쫓고 진나라 장의에게 속임수에 놀아나 진땅에서 죽었으니.. 초경양-고열왕때 사군자 춘신군 황헐로 명백을 유지하다가 초왕 부추대에 이렇게 망하고 만 것이다.

이후 진은 초나라의 남장 영토였던 강남, 백월 지역들까를 모두 평정해 회계군을 설치하고.. 진의 장수 왕분으로 하여금 저번에 요동으로 도망친 연왕 희를 사로잡고 연나라를 멸망시킨다.(B.C.222년) 연문왕 시절 소진의 계책으로 육국의 합종을 이루더니 연역왕때 왕호를 쓰고 연소왕때 악의 장군이 제나라를 물리치며 나라를 재흥시켰으나 4대 만인 연왕 희 때에 망하고 만 것이다. 이에 진은 회군하는 도중에 저번 조나라 멸국과정에서 대땅으로 도망친 대왕 가도 사로잡아 대도 멸망시키니 조왕 천의 서형 가도 자결하고 만다.

이제 남은건 마지막 제나라.. 왕분은 여세를 몰아 제나라 수도 임치를 공격하니 40여년간 아무탈없이 무사안일에 빠진 제왕 건은 정승 후승이 항복하라는 간언에 싸울 의사도 없이 성문을 열어주니 무협입성해 제왕 건을 포로로 잡고 제나라를 멸망시킨다.(B.C.221년) 마지막치곤 허무하게 먹혔다는거.. 이런 제왕 건은 공성 땅에서 압송돼 궁핍해진 신세 한탄에 아사해 죽고마니.. 전씨가 다스린 전국시대의 제나라는 전화가 제강공을 몰아내고 임금 자리를 빼앗아 제나라를 만들어.. 다시 3대를 지나 제위왕때 왕이라 자칭하고 사군자 맹상군이 보필했던 제선왕과 송을 멸국시킨 제민왕때 나름 패권을 다투었는데 제양왕에 이어 제왕 건에 이르러 망한 것이다. 

이로써 마침내 진나라가 육국을 모두 병탄하고 천하를 통일하여 중국 최초의 통일 제국(B.C.221~206)을 수립한다. 이때부터 진왕 정은 천하를 통일한 자신의 공적을 영원히 기리기 위해서 왕(王), 제(帝)등의 호칭을 거부하고 전설상의 성군들인 삼황오제(三皇五帝)에서 한 글자씩을 따와 황제(皇帝)라는 호칭을 만들어 쓰게한다. 이어 시법(諡法 : 일국의 군주가 서거한 후 신료들이 생전의 업적을 평가하여 합당한 시호를 붙여주는 전통적인 관례)를 불경하다고 폐지한후 자신의 후계자들을 차례로 2세, 3세, 4세 황제라고 칭하게 해 진제국이 만세(萬世)로 이어지기를 간절히 염원했는데.. 하지만 2세 호해에서 그쳤다는거..ㅎ

이후 승상 이사의 건의를 받아들여 전국을 36군(郡)으로 편성해 중앙 집권적 전제 군주제를 확립하고 이를 위해 화폐, 도량형, 도로등을 통일하는등 각국의 12만호를 함양으로 강제 이주시켜 철저히 감시하고.. 천하의 모든 무기를 거둬들여 녹여서 12개의 철인상을 제조한다. 또, 북방 이민족을 방어하기 위해 만리장성을 대대적으로 축조하는 한편 다수의 이궁과 최대 규모의 아방궁을 짓는다. 마침내는 모든 서적을 불태우고 왈가왈부하는 학자들을 산채로 구덩이에 묻는 초유의 분서갱유를 단행하니.. 진시황의 횡포와 독재는 갈수록 심해지면서 그도 등극한지 37년만에 50세 죽고(B.C.210년) 2세 황제 호해(胡亥)가 등극했지만 학정은 더욱 더 심해져 진시황의 손자 자영대에 이르러 진나라도 망하고 만다. 이리하여 열국의 시대는 끝나고.. 염선이 『열국지(列國志)』를 다 읽고 나서 그 소감을 시로 읆은 것이 있으니 이렇다.

주(周)나라 800여년 일을 돌아보니     사람의 힘과 하늘의 힘이 반반씩이었도다.
근 천년을 꾸준히 지속한 것은 충후(忠厚)한 신하들에게 힘입은 바 컸으나
모진 세상 물결에 휩쓸려 엎치락뒤치락 무상하도다.
마침내 육국도 다 진(秦)나라에 아첨하고 신하 노릇을 했으니
주 왕실이 망할 때 옛날에 도읍을 동쪽으로 옮겼던 일을 그 얼마나 원망했겠는가?
아아, 자고로 흥하고 망한 나라를 살펴보아라.
모든 원인은 당시에 어진 신하를 등용했느냐, 아니면 간신을 등용했으냐에 따라서 판가름이 났도다.



덧글

  • 새로운나 2009/04/30 15:52 # 답글

    진나라는 참 허망해요. 500년간의 혼란을 잠재우나 싶더니 얼마 안가 망해버리고. 역시 통일도 힘들지만 유지하는 것도 그에 못지않게 힘든가 봐요.
  • 엠엘강호 2009/04/30 16:05 #

    그쵸.. 전국시대 들어서 강국의 진나라가 백여년 넘게 패권을 잡았지만.. 사실상 진시황 이후에 2세 호해는 막장급이라.. 이넘이 한게 아무것도 없죠.. 환관 조고에 놀아놨으니.. 결국 자신도 조고에게 죽고.. 그래서 놓고보면 진(秦)시황이 전국통일후 20여년도 못갔죠.. 초의 항우에게 망했으니 말이죠..ㅎ
  • 뽀도르 2009/04/30 17:55 # 답글

    진나라가 천하통일의 陳吳가 된 셈이지요. 진나라 말기의 진승 오광의 반란처럼 짧게 끝나고 말았지만, 그 후로 중국은 몇몇 짧은 분열시기를 제외하고는 통일을 이어갔으니까요.
  • 엠엘강호 2009/04/30 18:10 #

    삼국으로 치면 그렇지만.. 느낌은 진의 임팩트가 강하긴 하죠..ㅎ 진말의 진승 오광의 농민군 반란이 대표적으로 진의 형국을 말해준 것이니.. 오래 지속하긴 힘들었겠죠.. 더군다나 항우와 유방도 들고 일어섰으니..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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